이야기 의학사
나폴레옹도 무너진 그 참을 수 없는 고통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1815년 3월 1일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옛 부하들과 함께 파리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되돌아온 황제의 위용을 보려고 길가에 나온 군중들은 기병대의 선두에서 행군하는 나폴레옹에게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그러나 파리로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황제의 지병인 치질은 악화됐고 항문 밖으로 탈출한 치핵은 극심한 통증을 수반했다. 비록 며칠 동안이기는 했지만 황제는 항문의 통증이 가실 때까지 마차에 누워 행군할 수밖에 없었다. 몇 달 후 워털루에서 전투가 시작됐다. 비록 급조된 군대였지만 프랑스군은 서전에서 프로이센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전 병력을 동원해 프로이센군과 영국군을 따로따로 격파한다는 나폴레옹의 작전이 들어맞은 결과였다.
영국군과 연합하기 위해 전장으로 달려오던 프로이센군은 초반의 패배로 혼란에 빠져 후퇴하고 있었다. “이 때 곧바로 프로이센군을 추격해 괴멸시킨 후 영국군을 상대했다면 워털루의 승자는 나폴레옹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군사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워털루전투의 승리는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게 돌아갔다. 나폴레옹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6월 16일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의 12시간 동안 프로이센군은 충분히 후퇴해 전열을 재정비한 뒤, 엉뚱한 방향으로 추격에 나선 프랑스군을 우회해 워털루에 나타났던 것이다. 젊은 날의 나폴레옹이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었을 이 망설임의 원인은 다름 아닌 치질이었다. 1797년부터 증상이 나타난 치질은 위궤양, 편두통과 더불어 마흔이 넘은 나폴레옹을 꾸준히 괴롭힌 고질병이었다.
6월 16일 하루 종일 말 위에 앉아 전투를 지휘한 나폴레옹은 저녁부터 또다시 항문의 격통에 시달렸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로 극심했던 통증 때문에 그는 다음날 아침 8시까지도 침상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절호의 기회를 침대에서 흘려보낸 나폴레옹은 이미 프로이센군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된 오전 11시가 돼서야 지휘를 재개했다. 그는 뒤늦게 입수된 빈약한 정보를 근거로 북쪽으로 퇴각한 프로이센군이 동쪽으로 갔다고 판단했고, 그에 따른 추격명령이 아군의 분산과 적군의 집결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최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장에서 재발한 항문의 통증. 끊임없이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참을 수 없는 치질이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것이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