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전쟁보다 많은 목숨을 앗아간 '엉터리 치료법'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신학 공부를 하던 중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스코틀랜드의 의사 존 브라운은 18세기 말 남의 이론을 적당히 표절해 만든 “모든 질병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너무 많거나 또는 너무 적어서 생긴다”는 학설과 그에 따른 새로운 치료법을 발표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엉터리 의사들의 교과서가 된 그의 저술은 그러나 출간 당시에는 별반 호응을 받지 못했다. 개업도 잘 안 되고 문하생도 줄어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그는 1786년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으로 진출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브라운의 치료법은 그의 사후 의사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이론 자체가 알기 쉽고 치료법도 간단했기 때문이다. 과잉자극에 의한 병에는 아편을, 과소자극에 의한 병에는 와인을 복용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다량의 아편과 와인을 사용하는 이 치료법은 얼핏 효과가 뛰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당시 유럽을 흔들었던 프랑스 혁명과 그에 이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보다 브라운의 치료법 때문에 사망한 사람의 수가 훨씬 더 많았을 정도였다. 종내는 브라운 본인도 아편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1810년에는 독일 라이프치히의 스위스 출신 의사 사무엘 하네만이 ‘동종요법’이라는 묘한 치료법을 내세우며 등장했다. 이 새로운 방법은 독은 독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열을 나게 만드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약물을 열병 환자에 투여하면 병이 낫는다는 식이었다. 현대의 정통파 의학은 돌팔이 요법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많은 의사들이 이 치료법을 지지했다.

사실 동종요법이 큰 호응을 받았던 이유는 약을 한 번에 한 종류만, 그것도 극히 소량 사용한다는 점에 있었다. 다량의 피를 뽑는 전통적인 치료법이나 아편과 와인을 대량으로 투여하는 브라운의 치료법과는 달리 이 치료를 받고 사망하는 환자는 극히 드물었다. 다시 말해서 효과가 없지만 부작용도 없었던 것이다. 하네만은 파리에서 죽었는데 사망 당시에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다.

이처럼 과거에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제안된 여러 의학이론들은 당연히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논리학에서 흔히 말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의학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간명한 이론으로 포장된 만병통치법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야말로 새로운 의학이론이 나올 때마다 민중들이 피해를 입는 악순환의 원인이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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