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가난한 아기들의 작아진 흉선이 불러온 비극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의학연구용 사체의 수요가 급증한 19세기 초의 유럽에서는 사체를 훔쳐 파는 사업이 번창했다. 공동묘지마다 밤이 되면 삽이나 곡괭이를 든 사체도둑들이 들끓어 부자들은 감시인이 지키는 사체안치소에서 며칠을 지낸 후 매장하는 수법으로 사체의 도난을 예방했다. 오래돼 ‘신선도(?)’가 떨어지는 사체는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체를 주로 도난 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러 나라들은 궁리 끝에 연구용 사체의 공급을 양성화했다. 수용소나 공립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의 사체를 전부 해부용으로 넘긴다는 법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의사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생전에 가난했었던 사람들의 사체를 해부하며 사람의 정상 구조를 공부하게 됐다.
세월이 흘러 1903년. 한 의사가 아이들이 호흡곤란으로 갑자기 죽는 병이 흉선(胸線)이 커져서 생긴다고 주장했다(목 아래쪽에 있는 흉선은 인체의 면역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다). 1907년에는 다른 의사가 흉선이 큰 아이들에서 열과 경련, 혼수상태, 또는 갑작스런 사망이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이제 의사들은 호흡장애가 있는 아기들의 커진 흉선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믿게 됐다.
마침 또 한 명의 의사가 위치 상 수술이 어려운 흉선에 방사선을 쪼여 크기를 줄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점입가경으로 1914년에는 개의 흉선을 제거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다는 연구가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흉선이 큰 아이들에게 예방적으로 방사선을 쪼여야 한다는 학설이 등장했다.
갑자기 사망하는 아기의 부모들로부터 소송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의사들은 흉선이 크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의 목에 방사선을 쪼였다. 그리고 수년 후, 이 아이들에게 갑상선암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50년까지 약 1만 명의 아이들이 희생된 이 비극은 흉선 크기에 대한 의사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들이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각종 만성병에 걸려 죽은 가난한 아이들의 사체였고, 그 흉선들은 병 때문에 작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정상 소아의 평균이라고 착각한 의사들은 사실은 정상인 아이들의 흉선이 기도를 눌러서 질식사가 일어난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던 것이다. 20세기 의학의 가장 큰 실패 사례의 하나인 이 비참한 경험은 의학적 기준이 잘못 설정될 경우에는 엄청난 희생이 따른다는 평범하고도 중대한 진리를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