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정신병 환자들을 해방시킨 피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18세기 말까지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했다. 정신질환은 인간에 악마가 깃들인 현상으로 여겨졌고 환자들은 햇볕도 들지 않고 환기도 안되는 시설에 수용돼 쇠사슬에 묶인 채 몽둥이로 얻어맞기 일쑤였다. 어떤 정신병원들은 입장료를 받고 정신질환자들을 관람시키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이런 시설을 ‘인간 동물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비참한 상황을 개선한 사람이 프랑스의 필리페 피넬이었다. 그는 의학잡지를 통해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하고, 정신병은 질병일 뿐이며 가난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 용기 있는 의사였다.
그가 파리에서도 악명이 높았던 비세트르 병원 원장에 임명된 것은 정부가 그를 혁명 이후의 병원 개혁을 담당할 수 있는 올바른 신념을 가진 유능한 인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임 다음 날인 1793년 8월 26일, 과감하게 정신병 환자들의 쇠사슬을 끊고 감옥에서 해방시켰다. 이는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을 야만적으로 다루던 오래된 전통에 종지부를 찍고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아준 의학 역사상의 쾌거였지만 혁명기의 프랑스에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시도였다. 정신병원을 정적들을 감금하는 수단으로 즐겨 이용했던 권력자들이 병원의 개혁으로 자신들의 음모가 드러나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2년 후 피넬은 또 하나의 수용소였던 살피트리에르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 곳은 약 6000명의 정신 질환 여성을 수용하는 곳으로 매년 약 250명이 새로 수용되어 50여명이 사망할 정도로 위생 상태가 나쁜 시설이었다.

피넬의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는 18년 동안이나 쇠사슬에 묶인 채 어두운 독방에 갇혀 지낸 환자도 있었다. 이 병원 역시 일요일이면 전성기의 비세트르 병원을 능가할 정도로 많은 관람객들이 모여드는 인간 동물원 중 하나였다. 여기서도 그는 인도주의를 강조하며 감옥과 같았던 병원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나폴레옹의 주치의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사양하고 27년간 대학의 교편을 잡았던 피넬은 1826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해방자’의 운구 행렬에는 많은 노부인들이 섞여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쇠사슬로부터 해방시켜준 은인을 기리기 위해 따라나선 살피트리에르 병원의 옛 환자들이었다. 1885년 프랑스 의학계는 끊어진 쇠사슬을 손에 든 피넬의 동상을 살피트리에르 병원 앞에 세워 그의 정신병 환자에 대한 사랑을 기렸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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