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다빈치 해부노트’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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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한 레오나르도는 당시 다른 화가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인체의 각종 관절이나 근육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양을 그리기 위해, 주로 범죄를 저질러 처형 당한 죄인의 사체를 의사들과 함께 해부했다. 이 때 그는 정교한 해부도를 곁들인 노트를 작성했는데, 존재 자체가 그의 사후 200년이 지나서 알려진 이 노트는 엄청나게 난해한 특이한 문서였다.
근래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글을 거꾸로, 오른쪽에서부터 왼쪽 방향으로 썼을 뿐 아니라,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지 않고 연결해서 쓰다가 자기 멋대로, 예를 들어 단어의 중간에서 불규칙적으로 띄어 썼다. 또 마침표나 쉼표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어낸 알파벳으로 글을 썼으며, 스스로 개발한 속기술을 쓰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어떤 페이지의 한쪽 구석에 글을 적다가 이어지는 글을 엉뚱한 페이지의 다른 구석에 적곤 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가 신비로운 천재의 특징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보다 현저히 뒤떨어지는 인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가 몹시 과묵했다는 기록이나 어린 시절의 라틴어 성적이 남들보다 상당히 뒤떨어지는 편이었다는 사실이 이 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레오나르도는 글이 아니라 연속되는 여러 장의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그의 노트가 당시의 학술 공용어였던 라틴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사용되던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마치 암호 책 같아서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었던 해부 노트는 인체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묘사한 스케치의 원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의학 발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근대적인 해부학 책을 최초로 저술한 것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는 사실만은 역사의 진실로 남았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