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의학사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나?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영국 왕 ‘조지 5세’ 안락사 시킨 ‘도슨 박사’
도슨 박사는 1928년 폐렴에 걸린 영국 왕 조지 5세의 목숨을 구해 일약 유명인사가 된 의사였다. 그는 왕립의과대학의 학장을 역임했고 두 번이나 영국의사협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던 의료계의 지도적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1945년에 사망한 그의 일기장이 최근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가 명성에 걸맞지 않은 비윤리적 행위를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 동안 비밀로 붙여졌던 조지 5세 국왕의 사망에 관한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왕실 주치의였던 도슨 박사가 8년 전 자신이 목숨을 구했던 조지 5세가 머물고 있던 노포크의 산드링엄 저택으로 불려간 것은 1936년 1월 17일이었다. 이때만 해도 왕은 의자에 기대앉아 큰 고통 없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이후 점차 기력이 쇠약해지면서 의식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슨은 1월 20일 밤에 자신이 한 행동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1시쯤 되자 사망이 임박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그러나 환자 상태로 보아 임종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단지 기계적인 사망을 기다린다는 것은 이미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친지들을 지치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상황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환자의 목 정맥에 모르핀과 코카인을 차례로 주사하였다.”

그는 일기 속에 자신이 취한 행위의 이유를 몇 가지 들었다. 그 중 하나는 국왕의 사망 기사가 다른 신문보다는 영국의 전통을 잇는 큰 신문인 ‘더 타임즈’지의 아침 초판에 실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런던에 있던 부인에게 타임즈 신문사에 왕의 죽음을 알리라며 전화를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임종을 기다리는 왕실 가족들의 고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당시 왕의 임종을 기다리며 고통을 받고 있던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왕이 일찍 사망할 경우에 가장 고통을 덜 받는 것은 도슨 박사였다. 런던에 위치한 자신의 진료소에서 다음날 아침 환자들을 진료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이 왕에게 시행한 처치를 ‘자비심에서 우러난 안락사 혹은 그와 유사한 죽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일기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의사가 협조한 안락사’라기보다 ‘의사의 개인적 편의를 위한 타살’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본 칼럼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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