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비만이었다. 그는 건강해 보이는 초상화 속의 모습과는 달리 몇 가지 지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변비였는데 그의 편지에는 변비약과 그 효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종교개혁에 관한 아이디어도 그가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떠오른 것이라는 학설이 있을 정도다. 변비에 따르기 쉬운 치질도 평생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요로결석이었다. 1537년 2월 19일, 루터가 자택이 있는 뷔텐베르크에서 150마일 떨어진 슈마르카르덴이라는 마을에 머무르며 프로테스탄트 귀족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을 때의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날 갑자기 심한 복통을 일으킨 루터는 곧 요로가 돌로 막혀 소변이 나오지 않는 결석성 무뇨상태가 되었다. 그는 10년도 넘게 결석을 앓아왔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통증에 익숙했으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보통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 소변으로 작은 돌이 나오면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이번에는 무뇨상태가 6일이나 지속되는 것이었다.

상태가 심각해지자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회의에 참석한 귀족들을 따라온 주치의들이었다. 이들은 루터를 위해 관장이나 방광 마사지 등의 시술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소변을 볼 수 없어 거의 죽어가게 된 루터는 어차피 죽을 바에야 자택에서 죽겠다며 돌아갈 것을 고집했다. 의사들은 할 수 없이 환자를 마차에 태워 뷔텐베르크로 향했다.

그런데 7명의 의사를 동반한 루터의 일행이 얼어붙은 겨울 길을 덜컹거리며 10마일쯤 가 숙소를 정했을 때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다 죽어가던 환자가 갑자기 엄청난 양의 소변을 보았던 것이다. 다음 날의 숙박지에서는 6개의 돌이 소변으로 배출되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2주 동안 루터의 소변에서는 규칙적으로 다수의 결석이 쏟아져 나왔다. 환자는 차차 건강을 회복했다.

요즘 의사들도 요로결석 환자들에게 맥주를 많이 마시고 줄넘기를 하라는 소박한 치료법을 권하는 경우가 있다. 루터의 경우에는 마차가 덜컹거리는 충격에 요로를 막았던 결석들이 점차 방광 쪽으로 내려와 결국은 소변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루터는 인간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며 의사들의 말을 듣지 않는, 의사 기준으로 볼 때는 별로 탐탁지 않은 환자였다. 성직자라서 때때로 금식은 했지만 자기 마음대로 식사를 하며 건강을 위한 절제를 등한시 한 루터는 이 사건으로부터 9년 후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이재담·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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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의학사

[울산 의과 대학교]
이재담 교수

서울대 의과대학
일본 오사카 시립대학 박사
미국 하버드 대학 과학사학교실 방문교수
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의학의 역사를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는 이재담교수의 의학사 탐방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