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여 년 전부터 시행된 국제적 공인 치료법, 최면치료에 관한 궁금증

취재 김경원 헬스조선 기자|2011/06/07 09:10


최근 최면치료가 SBS TV 수목드라마 〈49일〉에 방영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면치료란 무의식과 의식이 공존하는 최면(催眠, Hypnosis)상태를 만들어 인간의 몸과 마음을 현실상태에서 안정화시키는 치료법이다.

>> 국제 공인 치료지만 국내 보편화 아직 멀어

최면치료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인한 치료법으로, 현재 미국·유럽 등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치료자의 유도에 따라 최면상태가 된 환자는 치료자의 말과 행동을 통한 인지적 치료로 감각·지각·사고, 감정과 행동에 변화를 경험하며 치유된다. 정신과에서 하는 치료법이 최면 상태에서 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쉽다.

최면은 5000여 년 전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대적 치료기법으로 사용된 것은 18세기 무렵이다.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인 메즈머가 환자 치료에 도입한 이후 프로이드, 헐, 힐가드, 에릭슨 등을 거쳐 발전했다. 영국과 미국은 1950년대부터 최면의 치료적 가치를 인정했고,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정식으로 도입해 정신과 의사들 사이에서 주로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 최면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10여 곳 으로 도입 후 거의 제자리 걸음이라 할 수 있다. 대한최면의학회에 따르면 변영돈신경정신과, 건양대병원, 계요정신건강병원, 여수전남병원, 용인정신병원, 구미차병원, 동아대병원 등에서 최면치료를 하고 있다.

최면치료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치료법인데 국내에선 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까?
환자 입장에서 보면 치료비가 1회에 10만~30만원으로 비싸고, 치료자 입장에서는 한 번 치료하는 데 30~60분의 시간이 걸려 일반화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 최면치료의 효과는 현재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으나, 치유 과정은 완전한 과학적 검증이나 설명이 어렵다. 최면 중 뇌파나 호르몬의 변화 등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 무의식 속, 문제의 근원을 파헤친다

최면은 치료의 한 방법일 뿐, 최면 자체는 치료가 아니다. 최면치료는 최면상태에서 무의식 속에 감춰진 문제를 현실적으로 인식하도록 돕고, 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을 의식과 무의식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알려준다. 즉,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무의식에 접근해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억압돼 잊힌 과거(갈등 상황)’를 떠올려, 증상의 근원적 원인을 밝혀낸다. 그때 경험한 감정을 재정립하게 해 신체와 정신 건강, 감정조절, 대인관계 향상 등을 돕는다. 특히 최면 상태에서는 의식이 또렸하지만 현실보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 줄어 잠재의식 속에서 새로운 신념체계를 갖게 하는 것이 유용하므로, 정신의학 문제와 관련된 치료에 유용하다.

그러나 최면치료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다. 최면은 결코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며, 모든 사람이 최면상태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면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 20명 중 1명은 최면이 걸리지 않는다. 보통 최면치료는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가 무엇인지 따져 약물치료나 상담치료, 인지행동치료 등과 같은 일반적인 치료법을 우선 한 후, 치료효과가 거의 없을 때 시도한다. 계요정신건강병원 손인기 수련부장은 “비용 등의 측면에서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치료 등이 최면치료보다 우선 고려된다. 최면치료를 해도 기존 치료를 끊고 최면치료만 받는 것이 아니라, 기존 치료와 병용해 치료받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말했다.

>> 최면치료 잘 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최면은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성향을 갖춘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최면치료 전문가들은 “최면에 잘 걸리는 사람일수록 최면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한다. 최면은 감수성이 높거나 감정적으로 몰입을 잘하는 사람, 현재 상황에 집중을 잘하는 사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좋아하거나 연상을 통해 장면을 잘 떠올리는 사람이 잘 걸린다.

보통 정신력이 강할수록 최면 유도가 잘 안 될 거라 생각하지만 오해다. 건강하고 집중력이 높은 사람이 최면에 잘 걸린다. 성격과 상관 없다. 성격이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신경질적이든 차분하든 최면 유도에는 차이가 없다. 연령에 따라서는 영향을 받는다. 어린 아이나 성인보다 학동기와 청소년기 아이에게 최면 반응이 잘 나타난다. 학동기나 청소년기 아이들이 최면에 잘 걸리는 이유는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는 교육 분위기나 사회적 신념 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면치료에 앞서 최면감수성 검사를 통해 최면에 잘 걸리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최면치료는 치료받는 사람이 기꺼이 응하고 협조적이면서 시술자를 믿어야 효과가 높다.

>> 내면에 집중시킨 후 암시로 치료반응 유도

최면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치료자는 먼저 환자를 내면에 집중시킨다. 보통 최면치료할 때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 시선을 어떤 물체에 고정하도록 치료자에게 권유한다. 치료자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라고 암시하면 환자는 긴장이 점점 풀리고 축 늘어지며 심호흡을 하는 등 완전히 이완된 징후를 보이면서 최면상태에 빠진다. 그 다음에는 점차적으로 지각이나 기억을 왜곡시킬 것을 요구하는 암시를 준다.

예를 들면, 환자가 눈을 뜨기 어렵다거나 오른손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는 암시를 준다. 이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지만, 최면감수성에 따라 단 몇 초가 걸리기도 한다. 최면에 걸리면 몸의 감각기관이 이완되고 호흡이 고르게 바뀌는 등 잠잘 때와 비슷해지지만, 오히려 최면상태는 고도로 집중된 상황이다. 이때의 행동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말 그대로 이해하고 행동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

변영돈신경정신과의원 변영돈 원장은 환자는 민감성과 감수성이 매우 높아진 상태에서 “치료자가 주는 자극이나 암시에 대해 매우 광범위한 심리적·감각적·운동적 반응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치료자의 암시를 받아들이면 환자가 말을 못 하거나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환각을 일으키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며, 통증이나 불편한 자세에 무감각해진다. 치료자는 암시를 통해 특정 상황을 제시하고, 환자가 반응하게 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을 밝히고 문제가 되는 인식을 개선하는 등의 접근을 통해 치료한다.

비만 환자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구토를 일으킨다’는 인식을 심거나, 식탐의 원인이 애정결핍인 경우 이에 대한 인식 개선을 통해 식탐을 극복하게 한다. 최면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걸리는 일은 절대 없으며, 최면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조종되지 않는다. 따라서 최면치료는 암시 내용에 따라 간혹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기존 습관이나 행동 양식에 반하는 암시 내용이 있으면 통제력이 강한 사람은 불쾌하게 느낀다.

>> 최면치료, 부작용은 없나?

최면치료는 약물 등을 쓰지 않기 때문에 내성으로 인한 습관성이나 신체적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최면으로 무의식에 접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이 될 수 있다. 유능한 최면 치료자는 편안하고 안전하게 최면의 세계로 안내한다. 반면 최면 후 치료 과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불쾌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으며, 심하면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국내엔 검증되지 않은 최면치료로 환자들을 호도하는 상술이 있어, 잘못된 치료로 증상이 악화될 소지를 배제하기 어렵다.

최면은 치료의 도구이므로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최면치료를 해야 한다. 최면요법을 실시하는 치료자가 그 질병을 다룰 만큼 풍부한 경험과 훈련된 지식이 있는지 철저하게 따져 본다. 최면기법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은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간단하게 할 수 있으나,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가 어렵다는 것과 일정범위 이상의 최면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효과적인 최면을 위해서는 최면 전문가나 권위자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비디오테이프나 CD, 그림책 등 보조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Mini Interview 최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변영돈(변영돈신경정신과의원 원장)
Q 최면상태에서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나?
최면이 아무리 깊게 걸려도 통제력을 잃지는 않는다. 최면상태일 때도 의식이 있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을 수 있다. 최면 상태에서 치료자의 얘기에 따라 환자의 신체적·정신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독서삼매경에 빠진 경우나 재미있는 영화에 빠져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상태 등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최면 상태를 느낀다. 이때 의식은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최면상태라도 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털어놓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일은 없다.

Q 최면에서 못 깨어나는 사람도 있나?
보통 현실이 힘들고 괴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최면에서 깨지 못할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절대 걱정할 필요 없다.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최면에 깊이 걸리면 잠을 자는 경우는 있지만 못 깨어나는 경우는 없다.

Q 최면상태에서 떠올린 기억은 모두 사실인가?
모두가 사실은 아니다. 꿈을 꾸는 것처럼, 최면 상태에서는 환상이나 공상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 영상이 모두 과거의 정확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 최면을 통해 전생의 기억을 찾았다고 하는 경우, 무의식적 내용의 표출일 뿐 정확히 전생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내용도 동서양 혹은 문화적 차이에 따라 확연히 다른데, 전생의 기억 등은 암시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