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催眠, hypnosis)을 거는 장면을 보면 대개 이렇다.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있는 피술 자 앞에서 최면 전문가가, 듣기만 해도 졸릴 정도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몸이 점점 무거워 집니다. 깊은 잠에 빠져 듭니다. 이제는 눈을 뜨려고 해도 떠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최면을 받는 사람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모습으로 최면술사의 지시에 따라 모든 행동을 한다.
최면은 극도의 의식 집중 상태로 유도되면서 평소의 의지로는 전혀 조절이 불가능한 생리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면을 통해 맥박이나 체온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최면 치료로 담배를 끊었다든가 체중을 줄였다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꽤 많이 있다.
최면은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승려의 들에 의해 치유 행위로 이용된 기록이 있는가 하면 아메리칸 인디언도 최면으로 통증을 치료하던 흔적이 있다. 그러나 근대 의학에서 최면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700년대 말 독일 의사 프란츠 메스머에 의해서였다. 메스머는 최면술을 이용해 다양한 신경 장애를 고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신체로부터 환자의 신체로 자력을 옮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를 돌팔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의학적 목적으로는 보편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마취 기술이 소개되기 바로 직전, 일부 의사들이 최면술을 이용하면 수술하는 동안 환자를 붙들어 매거나 술을 먹이지 않고도 환자의 통증을 덜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에테르 마취가 도입될 때까지 수년 동안 최면술은 마취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그 후 일부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최면술은 나름대로의 위상을 가진 하나의 전문 분야로 발전하고 있다. 대체의학 치료사들은 물론 일부 정통 의사들까지도 각종 신체적 혹은 정서적 장애를 치료하는데 최면요법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30여 년 전에 의학협회로부터 치료의 한 도구로써 공인을 받은 바 있다.
성공적인 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데는 최면을 받는 사람의 민감성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최면에 잘 걸릴까? 이를 알아보는 검사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눈의 흰자위를 이용하는 법이다. 최면을 받는 사람에게 눈의 흰자위를 되도록 많이 나오도록 하라고 했을 때, 눈이 온통 흰자위로 덮일 정도로 검은자위가 눈 뒤로 사라져 버리면 그는 민감성이 아주 높은 사람으로 간주되고 또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아주 쉽게 최면에 걸린다. 반대로 아무리 애를 써도 눈에 검은자위가 많이 남아 있으면 최면 상태에 잘 안 빠지게 마련이다. 최면은 전문가에 의해 비교적 쉽게 유도되는데, 자신이 원하면, 그리고 최면술사를 신뢰하면, 사람들의 90%는 최면에 빠질 수 있다.
최면술이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뇌의 신경 경로를 활성화시켜 엔도르핀과 같은 천연 아편을 분비시키고, 이것이 면역계를 통해 우리의 행동, 통증에 대한 감각, 기타 다양한 주관적 증상들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추론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는 최면술을 연마하는 의료인들의 수도 부쩍 늘고 있으며, 최면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의 수도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불어나고 있다.
현재 최면요법은 불면증, 스트레스, 통증, 천식, 과민성 대장 증후군, 메스꺼움과 구토, 입덧, 분만, 공포증, 강박증, 히스테리, 비만, 야뇨증, 알레르기 반응, 사마귀, 마비 환자, 마취 등에 이용되고 있다. 최면 하에서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숨어 있는 문제점을 찾아내 현재의 병을 고친다는 전생 요법은 의료계에서 찬반의 격론의 쟁점이 되기도 한다.
최면에 걸렸을 때 받은 암시가 최면에서 깨어난 후에도 계속되는 소위 ‘최면 후 효과’가 생길 수 있다. 건망증(催眠後 健忘症)이 최면 후에 저절로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시술자의 암시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는데, 반대로 일상적인 능력을 뛰어넘는 기억 증진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는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부정적 효과는 심신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최면도 제대로 해야 하고, 제대로 받아야 한다.
/전세일 포천중문의대 대체의학 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