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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떤 음식을 먹는 게 좋을까요?”


첫 진료를 마치고 나갈 때마다 환자가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환자가 묻지 않으면 보호자가 꼭 물어봅니다. 환자나 보호자는 마치 요리법을 배우는 사람처럼 쇠고기 30g, 현미밥 100g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먹어야 좋은지, 어떤 것을 먹어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습니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1만 번도 넘게 저는 이런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습니다.


“특별한 음식은 없습니다. 가족과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즐겁게 식사하는 게 보약입니다.”

이병욱박사 작품

음식에 있어 저는 슬로 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천천히 잘 씹어서, 가공식보다는 집에서 직접 만든 신선한 것으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채소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재배한 것(토종과 유기농)을 먹자는 겁니다.


식사에 대해 엄격하게 말하지 않는 데는 이유는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칼로리와 영양을 계산해서 식단을 짜지만, 집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병원 식사도 다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엄격하게 따지고 들면 골치만 아프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먹으려고 해도 먹히지 않으면 못 먹고, 아무리 먹고 싶어 하더라도 보호자가 만들지 않으면 못 먹습니다. 암은 몇 달, 몇 년을 투병하다 보니 엄격한 기준을 세우면 환자나 보호자가 그만큼 지치게 됩니다. 보호자들은 식사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모든 면을 다 보살펴야 하기에 환자만큼 힘이 듭니다.


섭취량 역시 딱히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만큼 다 챙겨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면 식사 자체가 고역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먹을 수 있을 것도 못 먹게 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만큼 식사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너무 기력이 없다 싶으면 조금 더 먹으려고 노력하고, 식사가 가능하면 식사하고, 기력이 없어서 씹지 못할 것 같으면 죽의 형태로 된 유동식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한 숟가락 덜 먹으라고 하는 게 일반인들에게 권하는 식사라면, 만든 이의 정성을 생각해서 한 숟가락만 더 먹으라는 게 암 환자들에게 권하는 식사법입니다. 


한 끼에 다섯 가지 식품군을 만족할 만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이번 식사에 단백질이 좀 덜 들어 있다면, 다음 식사 때 보충하면 됩니다. 될 수 있는 한 골고루 먹는 게 좋지만, 한 끼에 모든 걸 다 먹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준비할 수 있는 보호자도 거의 없습니다.


만약 환자가 항암제 등으로 식욕이 떨어져서 많이 먹지 못할 때 보호자가 계속해서 음식을 권유하기 되면, 그에 지친 환자는 보호자의 선의를 힘들어하게 되며 환자와 보호자 간의 유대감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꼭 지켰으면 하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골고루 먹고, 농약 등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신선한 재료로 바로 조리해 먹는 것입니다. 음식은 냉장고 속에 둔다 해도 변질되기에 늘 신선한 재료로 바로 먹는 것이 좋습니다. 


간혹 엉뚱한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금식을 하는 게 좋으냐’ ‘육식을 금해야 하느냐’ 같은 것입니다. 금식에 대해 견해는 분분하지만, 어디까지나 환자의 컨디션이 좋을 때만 가능합니다. 하루 이상의 금식은 힘든 일이므로, 환자가 힘이 없어 할 때 금식은 곤란합니다.


암세포를 굶겨 죽이기 위해 환자가 곡기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굶으면 암세포를 가는 영양만 차단되는 게 아니라, 정상세포로 가는 영양까지도 차단됩니다. 암세포는 나름대로 메커니즘이 있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암세포를 굶겨 죽이려다가 환자가 먼저 쓰러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육식 역시 특별히 꺼릴 이유는 없습니다. 고기를 먹으면 암세포가 커진다고 안 먹는 사람도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면역 세포를 만드는 모든 원료는 단백질에서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암을 예방하는 데는 채식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암을 치료하는 데는 채식과 육식을 골고루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합니다. 채식과 육식을 골고루 드시는 게 좋습니다. 고기의 용량은 하루에 환자 1kg당 건강한 사람은 0.6g 정도 드시고 암 환우의 경우 저는 1g을 권장합니다. 물론 환자는 소화력이 떨어지기에 갈비를 먹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살코기는 조금씩이라도 먹어야 합니다. 암은 소모성 질환으로 많은 영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장 상식적인 선에서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신선한 것으로, 무엇이든 골고루, 과하지 않게, 무엇보다 즐겁게 잘 먹는 것이죠. 그리고 과식하지 않아야 합니다. 과식하거나 고기를 먹으면 대사과정에서 활성산소가 많이 방출됩니다. 산소는 몸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은 것처럼 활성산소도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먹을 것인가’하는 방법입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관심은 주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집중됩니다. 특별히 건강해지는 식품은 없으며, 한 가지만 먹어서 건강해지지도 않습니다. 형편에 따라 먹으면서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더욱 생각해야 합니다.


환자에게 저는 늘 즐겁게, 꼭꼭 씹어서 식사를 즐기라고 권합니다. 사람의 치아는 모두 32개인데, 적어도 음식을 먹을 때의 치아 수만큼 32번 이상 씹어 먹는 게 좋습니다. 오래 씹을수록 소화효소가 많아지고 흡수가 쉬운 상태가 되어서 영양분을 고루 섭취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대하는 마음도 중요합니다. 음식을 받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음식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고, 음식을 준비해 준 보호자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또한 골고루 먹고, 먹는 즐거움을 느껴야 합니다. 가능한 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전부 동원해 식사하는 게 좋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는 되도록 음식을 먹지 않기를 권합니다. 소화도 안 되고 몸에 부담이 가기 때문이지요. 


과식하는 것 역시 좋지 않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소식이 좋습니다. 특히 아침은 조금 많이 먹고, 점심은 적당히 저녁은 적게 먹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항암 치료로 식욕이 떨어져 있다면 그때그때 식욕이 생길 때마다 잘 먹어 두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매일 적어도 30분 정도의 운동을 하면 소화에도 도움이 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이 모든 것에 앞서,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식사는 가족이 함께하는 사랑으로 가득 찬 자리입니다. 서로 반목하거나 환자 혼자 먹게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혼자 먹는 식사는 없는 입맛을 더 없앱니다. 가족이 둘밖에 없는 상황이라 환자 혼자 식사해야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옆에서 편안한 식사가 되게끔 시중을 들어주는 게 좋습니다. “물 좀 더 마셔라” “꼭꼭 씹어라” 등 옆에 앉아서 해 주는 사랑이 담긴 잔소리 한마디가 오히려 환자에게는 약이 됩니다. 


오늘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이병욱 드림(대암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