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으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초대합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슬픈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참 좋았지’라고도 하기도 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는 어린 시절 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인데요. 많은 경우 가족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 김태은 교수가 그린 그림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우 소극적이고 자신의 현재 감정 표현에는 무척 어색해하지만, 다음과 같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마루에 앉아 선풍기 틀어놓고 수박이랑 옥수수 먹으며 노을 지는 걸 보고 있으면 엄마랑 낭만적이라고 하면서 같이 마주 보면서 웃었던 게 기억나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편안했어요”
“나는 어릴 적부터 참 많이 아팠어요. 키도 작고 마르고 그러니 또래들이 장난도 많이 쳤지요. 그러면 엄마가 얼른 나를 폭 안아줬어요. 어쩜 그때는 엄마의 품이 그렇게 크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엄마가 아주 커다란 거인 같게 느껴져서 엄마 품에 쏙 숨었던 거 같아요.”
어머니는 대부분 사람에게 최초의 애착 대상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어릴 때의 따뜻한 경험을 다시 느끼게 해줘, 지금의 마음을 안전하게 다독여 주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초기의 따뜻한 기억의 대상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암이라는 위기 속에서 발생하는 불안한 마음, 상실감, 의존성과 자율성의 갈등 등을 탐색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듯합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수다스럽게 시작된 자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때때로 어머니에 대한 서운했던 장면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어떤 엄마를 원했는지, 또 엄마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았겠는지’를 이야기 나누면서 다시 따뜻하고 원하는 모성의 이미지를 구체화합니다.
다들 마음의 품이 넓었던 어머니, 헌신적이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 자신에게 그런 어머니는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일찍 엄마가 돌아가셔서 저는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내 자식들에게는 내가 꿈꿨던 사랑과 모성을 충분히 나눠주려고 노력했습니다”라며 자신이 받고 싶었던 사랑을 자식에게 전했던 환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특별히 사랑받지 못한 것 같아요. 엄마는 항상 할머니랑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밖에 못 본 거 같아요. 항상 오빠들을 더 챙겼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참 서운하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엄마가 항상 내 소풍 도시락에는 돈가스랑 소시지를 더 많이 넣어줬던 게 생각났어요. 오빠들이 뭐라고 하면 나한테 엄마가 윙크를 해줬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참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이처럼 ‘나의 어머니’를 그려보거나 ‘나의 어머니’와 연관된 것을 그려보는 작업은 돌봄에 대한 기대, 사랑과 상실의 기억을 통합적으로 조망하게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감정 표현이 억제되어 있거나 말을 통한 표현이 어려운 환자에게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감정 표현을 끌어냅니다. 특히 기억 속 따뜻한 장면, 상징적 이미지(예: 손, 미소, 요리하는 모습 등)를 그리는 동안 감정이 환기되고, 마음이 안정되며 편안해집니다.
‘나의 어머니’를 그리는 작업은 환자의 기억과 정서, 애착과 관계, 존재감과 회복력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매우 도움이 되는 접근입니다. 특히 암 진단을 받고 삶의 전환기에 있는 분들께는, 내면의 안정과 심리적 통찰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치유적 개입으로 추천합니다.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는지 어떤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봐 주었는지 감사한 마음으로 그 기억을 오늘로 초대합니다.
내가 그런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