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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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인터넷을 탐험하던 중 숏폼 드라마라는 콘텐츠를 보게 됐다. 유튜브 쇼츠처럼 세로 화면용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한 편에 1~2분 정도의 매우 짧은 분량인데, 전체 50~80회 정도로 구성됐다. 내용은 솔직히 필자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한 편의 분량이 너무 짧다보니 서사가 충분히 진행되기보다는 급발진하는 내용이 많았고, 스토리도 좀 진부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입은 “뭐 이런 게 다 있어? 너무 유치하잖아?”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정주행하고 있는 필자를 발견하게 된다. 중독성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느낌이랄까?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던 점은 극 중 악역, 즉 빌런의 캐릭터였다. 해도 해도 너무 유치하다. 정말 저렇게 1차원적이고 단순무식하게 나쁜 일만 해대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작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 중에는 빌런 캐릭터의 입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빌런에 해당하는 타노스는 나름 매력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가 악행을 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주를 구하고 싶다는 너무나도 선한 것이었다. 비슷하게 영화 <대부>의 주인공인 마이클 콜레오네는 대학 교육을 받은 전쟁 영웅이었고, 마피아 생활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지만 가족을 지키려는 선택들이 그를 괴물로 만들어 갔고, 그 과정 속에서의 입체성은 작품의 수준을 높였다. 이런 빌런들은 선한 영웅보다도 더 깊게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그와 달리 막장 드라마 속 빌런들은 시청자들의 욕받이 기능만을 하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그 빌런을 우리는 눈을 떼지 못하고 본다. 왜 그럴까?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하려는 우리의 동기는 왜 일차원적 빌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걸까?

미디어 심리학에서 많이 언급하는 ‘정서적 성향 이론’에 따르면, 드라마를 볼 때 시청자는 3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최우선적으로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평가한다. 이후에는 해당 인물에 대한 정서적 성향이 생기고, 그 이후의 사건에 대해서는 이 정서적 성향을 만족시키는 대로 반응한다. 즉, 등장인물이 선량한 사람인지 혹은 주인공에 도움을 주는 사람인지 여부를 빠르게 판단한 후, 긍정적 혹은 부정적 정서 성향을 만들고, 그에 따라 긍정적 정서 성향을 갖게 된 인물에겐 좋은 결과가, 부정적인 정서 성향을 갖게 된 인물에겐 나쁜 결과가 발생할 때 가장 깊은 몰입감과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렵게 이야기했지만, 쉽게 줄이자면 결국 시청자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등장인물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싫어하는 인물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새드 앤딩이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시청자들의 원망을 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선량하고 착한 주인공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악한 인물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기쁨은 두 배가 된다. 현실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하지 못한다. 상대의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감정을 절제해야 하며, 지나친 비난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빌런은 다르다. 그들은 충분히 악하고, 충분히 비열하며, 충분히 비난받을 자격이 있다.

도덕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본래 공정성과 배려 같은 도덕규범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약자를 괴롭히거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동은 강한 도덕적 분노를 유발한다. 막장 드라마의 빌런은 이러한 도덕규범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시청자는 그들을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 ‘처벌받아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 순간 빌런을 향한 분노는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당한 감정으로 경험된다. 따라서 빌런의 몰락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도덕 질서가 회복되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지며, 시청자는 강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지적 구두쇠’의 경향을 갖는다. 인간의 뇌는 언제나 과부하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적은 인지적 노력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극도로 복잡한 현대 사회, 정보의 과부하, 시간 압박, 선택의 증가, 멀티태스킹의 요구 강화가 수시로 일어나는 환경에서 인지적 구두쇠 전략은 더 강화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판단과 의사 결정 과정에서 그냥 대충 때려 맞추는 휴리스틱과 단순화 전략을 사용한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잠시의 여유를 즐기는 이 시간에, 굳이 입체적인 빌런을 이해하느라 인지적 용량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대놓고 나쁜 빌런이 더 효과적인 셈이다.

과거의 빌런은 이해의 대상이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를 곱씹게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숏폼 시대의 빌런은 설명보다 반응을 요구한다. 시청자는 그들의 사연보다 악행을 기억하고, 이해보다 분노를 선택한다. 어쩌면 오늘날 빌런이 점점 더 단순하고 악독해지는 이유는 작가들의 상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점점 더 빠른 감정과 즉각적인 만족을 원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훈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