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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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간 같은 상황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어머니와 몇 년째 연락을 끊고 지냅니다. 어머니는 저를 한 번도 제대로 인정해준 적이 없어요.”

면담 시간에 이렇게 말하는 환자를 제법 만난다. 막상 그 부모의 얘기를 들어보면 내용은 또 달라진다.

“저는 부모로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없는 살림에도 힘들게 먹이고 공부시키고 악착같이 키웠는데, 왜 그렇게 저를 미워하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이 너무 허무하고 자식에게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껴요.”

같은 관계에서 전혀 다른 기억이 존재한다. 자녀에게는 아픈 상처로 남은 경험이 부모에게는 힘들게 최선을 다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이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 출발점은 대개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쌓여온 관계의 경험 속에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단순히 몇 가지 사건의 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 매일의 표정과 말투, 반응이 쌓이면서 하나의 감정 패턴으로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익숙해서 견디고 가족이니까 참아내지만, 같은 방식의 실망과 상처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 익숙함은 더 이상 안정감이 아니라 고통으로 변한다.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쌓인 감정이 더 이상 감당되지 않을 때이다.

작은 표정 변화에도 쉽게 불안을 느끼는 아이가 있다. 부모는 그런 아이를 까다롭다고 여기고 더 강하게 키우려 하거나 통제하려 한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불안해지고 부모의 반응에 더욱 민감해진다. 반대로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아이는 부모로부터 “속을 모르겠다”는 말을 듣게 되고 아이는 그럴수록 마음을 더 닫게 된다. 이처럼 아이의 기질과 부모의 반응이 서로 좋지 않게 맞물리면 점차 문제가 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렇게 반복된 관계 방식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후의 삶을 해석하는 틀로 남는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갈등이 커진다.

왜 우리는 힘들었던 관계의 감정과 반응 방식을 반복하는 것일까? 익숙한 방식은 힘들었더라도 낯설지 않기에 그런 것일 수 있다. 정신역동적으로는 이러한 경향을‘반복강박’이라고 한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형태를 바꿔 다시 나타나는 현상인데 꼭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늘 차갑고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끌리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애정이 불확실할수록 더 매달리고 작은 관심에도 크게 안도한다. 또 어떤 사람은 관계마다 지나치게 애쓴다. 부탁받지 않은 일까지 떠맡고, 거절하지 못하고,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핀다. 어린 시절 익숙했던‘잘해야 사랑받는 방식’이 성인이 된 뒤에도 반복되는 것이다. 자신을 자주 비난하는 사람 곁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관계가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낯설지 않다. 오래전부터 들어온 말들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것이 부당한 대우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아차린다. 어떤 사람은 늘‘돌보는 사람’이 된다.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감정을 받아주고, 자신은 뒤로 미룬다. 어린 시절 가족 안에서 맡았던 역할이 이후의 관계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이다. 상황과 상대는 다르지만 마음은 익숙했던 자리로 돌아가는 방식이 반복된다.

이러한 반복강박은 같은 갈등을 반복하게 만들고 그 갈등을 통해 오래된 상처를 다시 확인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계속 만나고 대화하는 관계처럼 보여도 안에서는“이번에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이번에도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구나”라는 감정이 계속 쌓인다. 그 반복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면 결국 관계가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모 자식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해결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문제는 순서다. 서로 인정하고 사과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경험이 이해받았다고 느껴야 한다.

자녀는 그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를 스스로 이해해야 하고 부모는 왜 자신이 그 방식밖에 선택할 수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자녀만 피해자이고 부모만 가해자라는 뜻은 아니다. 많은 부모 역시 자신이 배운 방식 안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는 그것이 사랑이고 희생이었지만, 자녀에게는 때로 통제와 비난, 혹은 인정받지 못한 경험으로 남는다. 부모와 자식의 아픔은 서로의 상처가 서로 다른 언어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해의 과정 없이 그냥“우리 둘 다 잘못했다”고 퉁치듯이 말하면, 오히려 각자의 억울함만 남게 된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반응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는 여유가 생기는 순간, 반복되던 악순환의 관계에서 한 걸음씩 벗어날 수 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하나의 사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복잡하게 공존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끝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반복되는 하나의 패턴일 수 있다. 그러나 패턴은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오래된 관계를 단번에 바꿀 수는 없어도, 적어도 같은 방식으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은 조금씩 줄일 수 있다. 그 시작은 비난보다 알아차림에, 단절보다 거리 조절에, 성급한 사과보다 서로의 경험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다.


기고자=이강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정신신체의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