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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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교수는 예술 활동은 거창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최소라 기자
“마음 속 캔버스에 좋은 장면을 자꾸 초대해 보세요.”

서울여자대학교 예술심리치료 전공 김태은 교수는 평소 ‘마음 속 캔버스’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누구나 마음에 캔버스가 있는데, 힘들 때 그곳에 행복한 순간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삶을 이어갈 힘이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기간 병원과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환자들이 미술치료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신간 <그림으로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에 담았다. 김태은 교수를 만나 미술치료에 대해 물었다.

◇그림으로 안부를 건네다
-최근 책을 출간했다. 계기가 있다면?
“2022년부터 헬스조선에 연재한 ‘아미랑’ 칼럼이 시작점이 됐다. 병원에서 환자를 만나며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작성했는데,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반응해 주는 경험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특히 2009년 만난 소아암 환자 보호자로부터 받은 문자가 연재를 이어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과거 내가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였고, 지금 자기가 암투병을 하고 있는데 칼럼이 큰 힘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읽는데 소명감이 느껴졌다.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통해 조금 덜 외롭고 힘을 낼 수 있다면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책에 다양한 환자 사례가 등장한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보편성이다. 연령이나 질환 여부에 얽매이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의 이야기를 읽어도 노년층 독자가 공감할 수 있고, 노인의 이야기를 읽어도 젊은 암 환자가 자기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도록 보편적인 사례 중심으로 구성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모든 환자가 기억에 남아 하나를 꼽기 어렵다. 그래도 한 분을 소개하자면 임종을 앞두고 함께 그림책 자서전을 만든 환자가 떠오른다.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에서 가족들과 의료진 앞에서 직접 자신이 만든 그림책을 낭독했다. 마지막 내용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 주세요’였는데, 환자가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어 내려가던 그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단순한 미술 활동이 아니라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남기는 작업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추후 환자 가족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호스피스 병동을 절망의 공간으로만 여기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표현하고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공간이기도 하다.”

◇감정을 표현하면 회복이 시작된다
-미술치료가 생소한 독자들도 많다. 쉽게 설명하자면?
“시각적 예술 활동을 통해 심리적 갈등을 완화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돕는 심리 치료의 한 영역이다. 사람은 중요한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릴 때 글자가 아니라 장면으로 기억한다. 행복했던 순간도 문장보다는 어떠한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나. 그게 바로 자연스러운 감정과 사건 기억 방식이다.”

-언어치료와 비교할 때 미술치료만의 특징은?
“언어치료는 이성적 사고를 먼저 사용하지만 미술치료는 감각과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말을 할 때는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검열하게 되는데 그림은 그렇지 않다. ‘투사’를 가능하게 한다. 같은 이미지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꽃 같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케이크 같다고 한다. 감정이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림이 무조건 내면을 폭로하는 건 아니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주워 담기 어렵지만 그림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표현할 때보다 훨씬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기 쉽다.”


-대표적인 효과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먼저 자기를 통찰하고 심리적으로 통합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감정을 색이나 이미지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복잡하고 혼란스럽던 감정이 정리되고, 스스로 인지하게 된다. 두 번째는 객관화 효과다. 질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환자가 많다. 그런데 슬픔이나 불안을 그림으로 밖에 꺼내놓고 바라보면, 힘든 감정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주도성 회복이다. 암 환자분들은 병원 안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색을 고르고 재료를 선택하는 등 활동 과정에서 하는 작은 선택들이 삶의 통제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서 표현 효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알록달록한 재료만 봐도 기분이 조금 밝아진다. 실제로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뇌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예술 활동으로 정서를 표출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건강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사람에게 특히 도움이 될까?
“연령이나 질환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신과, 암병동, 호스피스, 복지기관, 교육기관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용된다. 특히 암 환자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느낀다. 암 환자들은 억울하고 복잡한 감정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감정을 말로 설명하려고 하면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면 자연스럽게 감정과 생각이 정리된다. 좋아하는 것, 취미 등 자연스럽게 스스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단순히 아픈 사람이 아니라 삶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암 환자가 아녀도, 그림과 거리가 먼 사람도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림 그리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그리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거나 이미지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중요한 건 그림 실력이 아니라 감정을 인지하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과정이다. 눈을 감고 가장 행복했던 장면을 떠올리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떠오르는 영상 역시 하나의 그림이다. 우리 마음 속에는 캔버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은 독자가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미술치료 방법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냥 따라 그려 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활동들로 구성했다. 거창할 필요 없다. 또는 집에 있는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로 하루동안 느낀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거나 다이어리 날짜 옆에 그날 유난히 마음에 들어오는 색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틈틈이 실천하고 싶다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해 짧게 기록하는 것도 좋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모든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땅에 발을 딛고 발바닥 감각을 느끼고, 주변 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사람은 자꾸 과거나 미래로 마음이 가는데 감각을 깨우면 현재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도 도움이 될까? 
“매우 도움이 된다. 특히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을 때는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함께 그림을 그리고 관련 활동을 하다 보면 그림이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가 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종종 내가 환자와 가족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한다고 느낀다. 직접 말로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나 마음을 그림이 대신 번역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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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심리치료 전문가로 오랜 시간 암 환자들의 곁을 지켜온 김태은 교수가 첫 번째 에세이를 출간했다.​/ 사진=비타북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인간에게 예술 활동은 거창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라 굉장히 자연스러운 활동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옷을 고르고, 집 안을 꾸미고, 화분 위치를 바꾸는 것조차 하나의 예술 활동이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는 예술가였다. 의미 없는 낙서를 하고, 음악이 나오면 춤추고, 자기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그런데 자라면서 점점 그 감각을 숨기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어린 시절의 예술성을 다시 초대해보셨으면 좋겠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자기 삶을 통합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예술이라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소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