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종희 교수가 신경교종 치료 미충족 수요와 보라니고 출시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사진=구교윤 기자
20년 만에 뇌 자체에서 발생하는 '원발성 뇌종양' 중 가장 흔한 신경교종 치료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동안 수술 후 마땅한 약 없이 경과를 지켜만 보던 방식에서 벗어나 암의 원인 유전자를 직접 공격해 진행을 늦추는 치료가 가능해졌다.

한국세르비에는 12일 서울 더플라자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뇌종양 핵심 원인인 IDH 유전 변이를 억제하는 표적치료제 '보라니고(성분명 보라시데닙)' 국내 출시를 알렸다.

신경교종은 뇌세포를 지탱하는 신경교세포에 생기는 암이다. 뇌 속으로 뿌리를 내리듯 자라기에 수술로 뿌리까지 완벽히 뽑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비교적 순한 암인 '저등급(2등급) 신경교종'은 사회활동이 왕성한 35~42세 젊은 층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암이 자라면서 뇌를 자극해 환자 70% 이상이 갑작스러운 발작(경련)을 겪으며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고통을 겪는다.

이날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장종희 교수는 신경교종 치료 미충족 수요와 보라니고 출시 의의를 발표했다.

장 교수는 "저등급 신경교종 환자 80% 이상에서 발견되는 IDH 변이는 암세포를 계속 자라게 만드는 핵심 스위치"라며 "이 변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나쁜 물질(2-HG)이 뇌 조직을 망가뜨리고 암을 악화시키기에 초기에 이 스위치를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동안 환자들은 수술 후 암이 다시 커질 때까지 경과를 관찰하며 막연히 기다려야만 했다. 방사선이나 독한 항암제는 뇌 손상 같은 부작용이 우려돼 암이 아주 나빠진 뒤에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저등급 신경교종은 완치가 어렵고 결국 재발하거나 고등급으로 진행되기에 환자들은 삶의 중요한 시기에 재발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매우 높다"며 "보라니고는 이런 치료 공백기에 투여해 암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추는 첫 번째 약"이라고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김재용 교수는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인 INDIGO 연구 결과를 통해 보라니고 효과를 설명했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보라니고를 복용한 그룹은 종양 크기가 1.3% 줄어들었으나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그룹은 종양 크기가 14.4% 커졌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미국 종합암네트워크(NCCN) 가이드라인은 보라니고를 가장 우선적으로 권고하는 치료법인 '카테고리 1' 및 '선호요법'으로 올렸다.

김 교수는 "보라니고는 뇌를 보호하는 뇌혈관 장벽(BBB)을 통과해 종양에 직접 도달하는 약으로 암세포 성장 물질을 90% 이상 줄인다"며 "위약 대비 암이 진행되거나 사망할 위험을 65%나 낮췄고 다음 단계인 방사선·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시점도 75%나 뒤로 늦췄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발작 횟수를 64% 줄였고 기억력 같은 인지 기능도 잘 보존했다"며 "환자들이 암 환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나 부모로서 일상을 더 오래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이 약의 가장 큰 가치"라고 했다.

한국세르비에 측은 보라니고가 국내 저등급 신경교종 치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치료 접근성 확대와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구교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