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민의 삶과 마음 설명서]
휴가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혹은 학교에 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거우셨던 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행복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비어 있는 듯한 느낌. 어떤 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까닭 모를 한숨이 새어 나왔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휴가 직전보다 오히려 더 피로하고 무기력해졌다고 한다. 이 마음, 그저 휴가가 끝나서 아쉬운 정도의 일이 아니다.
휴가 후 증후군,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여두었다. ‘휴가 후 증후군(post-vacation syndrome)’ 또는 ‘재진입 우울(re-entry depression)’이라고 부른다. 휴가가 끝난 직후 며칠에서 길게는 2주 정도, 의욕 저하와 집중력 감소, 수면 리듬의 교란, 잔잔한 우울감이 함께 찾아오는 일군의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료실에서도 이 호소를 자주 듣는다. 길었던 황금연휴가 끝난 직후, 8월 중순 여름휴가가 마무리된 후에 외래 예약이 평소보다 늘어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이 환경의 큰 변화에 반응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신호일 뿐이다.
여행이 진짜로 주는 선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행복했는데, 일상으로 돌아오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비어 있는 듯한 느낌. 어떤 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까닭 모를 한숨이 새어 나왔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휴가 직전보다 오히려 더 피로하고 무기력해졌다고 한다. 이 마음, 그저 휴가가 끝나서 아쉬운 정도의 일이 아니다.
휴가 후 증후군,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여두었다. ‘휴가 후 증후군(post-vacation syndrome)’ 또는 ‘재진입 우울(re-entry depression)’이라고 부른다. 휴가가 끝난 직후 며칠에서 길게는 2주 정도, 의욕 저하와 집중력 감소, 수면 리듬의 교란, 잔잔한 우울감이 함께 찾아오는 일군의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료실에서도 이 호소를 자주 듣는다. 길었던 황금연휴가 끝난 직후, 8월 중순 여름휴가가 마무리된 후에 외래 예약이 평소보다 늘어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마음이 환경의 큰 변화에 반응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신호일 뿐이다.
여행이 진짜로 주는 선물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풍경도, 음식도, 사진도 아니다. 그것은 ‘잠깐 다른 자기로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의무, 역할, 평가, 누군가의 기대, 이 모든 것에서 잠시 풀려난 자기. 평소에는 ‘○○○ 부장’이고 ‘누군가의 부모’였던 사람이, 낯선 도시의 카페에서는 그저 한 명의 여행자가 된다.
그러한 자기가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휴가 동안 진심으로 행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자기는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자기로 돌아가야 한다. 마치 잠시 벗어두었던 무거운 갑옷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입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갑옷의 무게는 휴가 전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잠시 벗어본 가벼움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는, 그 무게가 이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에 늘 데려가는 한 사람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여행의 기술』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리브해의 한 휴양지로 떠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야자수 앞에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새파란 바다와 흰 모래뿐이 아니었다. 평소 그를 짓누르던 짜증과 걱정과 작은 두통도 함께였다. 풍경은 분명 바뀌었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은 한 발자국도 옮겨지지 않은 채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짚어낸 핵심은 이것이다. 어디로 떠나든 우리는 한 사람을 늘 함께 데려간다.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 자기를 어떻게 다룰지 모르는 한, 풍경만 바꾼다고 마음이 따라 바뀌지는 않는다.
이 통찰은 휴가 후 우울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많은 분들이 휴가 후의 무거움을 ‘여행이 너무 좋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료실에서 오래 관찰해온 결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여행 후 우울은 여행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상이 충분히 회복적이지 않다는 신호다. 평소의 일상 속에 작은 회복의 시간들, 예컨대 편안한 저녁, 가까운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 잠깐의 산책이 자리 잡고 있다면, 휴가 후의 무게가 그렇게까지 압도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휴가가 일상의 부족함을 잠시 덮어주었던 것뿐이고, 그 덮개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일상의 빈틈이 더 또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더 자주 떠나는 것이 답일까
그래서 환자분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그러면 휴가를 더 자주 가면 되지 않을까요?” 마음의 메커니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행복 연구에서 잘 알려진 개념 중에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뇌는 어떤 새로운 자극에도 빠르게 익숙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같은 종류의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할수록 그 강도는 점점 줄어든다. 휴가의 횟수를 늘려간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이 비례해 쌓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답은 휴가의 양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일상이 회복의 기능을 되찾도록 만드는 데 있다. 거창한 변화일 필요는 없다. 평일 저녁 10분의 산책, 주말 한 끼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자기 전 가까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이런 작은 회복 의식들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휴가는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좋은 삶에 더해지는 보너스가 된다.
지난 글에서 ‘집은 회복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휴가에서 돌아온 직후의 무거움이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면, 그 무게를 그저 견뎌내려 하지 말고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시길 바란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보내고 있는 가장 정직한 신호일지 모른다.
그러한 자기가 좋았기 때문에 우리는 휴가 동안 진심으로 행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자기는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자기로 돌아가야 한다. 마치 잠시 벗어두었던 무거운 갑옷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입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갑옷의 무게는 휴가 전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잠시 벗어본 가벼움을 기억하는 우리에게는, 그 무게가 이전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에 늘 데려가는 한 사람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의 책 『여행의 기술』에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리브해의 한 휴양지로 떠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서 야자수 앞에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새파란 바다와 흰 모래뿐이 아니었다. 평소 그를 짓누르던 짜증과 걱정과 작은 두통도 함께였다. 풍경은 분명 바뀌었지만,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은 한 발자국도 옮겨지지 않은 채 거기 있었던 것이다.
그가 짚어낸 핵심은 이것이다. 어디로 떠나든 우리는 한 사람을 늘 함께 데려간다.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그 자기를 어떻게 다룰지 모르는 한, 풍경만 바꾼다고 마음이 따라 바뀌지는 않는다.
이 통찰은 휴가 후 우울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많은 분들이 휴가 후의 무거움을 ‘여행이 너무 좋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료실에서 오래 관찰해온 결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여행 후 우울은 여행이 좋아서가 아니라, 일상이 충분히 회복적이지 않다는 신호다. 평소의 일상 속에 작은 회복의 시간들, 예컨대 편안한 저녁, 가까운 사람과의 따뜻한 대화, 잠깐의 산책이 자리 잡고 있다면, 휴가 후의 무게가 그렇게까지 압도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휴가가 일상의 부족함을 잠시 덮어주었던 것뿐이고, 그 덮개가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일상의 빈틈이 더 또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더 자주 떠나는 것이 답일까
그래서 환자분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그러면 휴가를 더 자주 가면 되지 않을까요?” 마음의 메커니즘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행복 연구에서 잘 알려진 개념 중에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뇌는 어떤 새로운 자극에도 빠르게 익숙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같은 종류의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할수록 그 강도는 점점 줄어든다. 휴가의 횟수를 늘려간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이 비례해 쌓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답은 휴가의 양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일상이 회복의 기능을 되찾도록 만드는 데 있다. 거창한 변화일 필요는 없다. 평일 저녁 10분의 산책, 주말 한 끼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자기 전 가까운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이런 작은 회복 의식들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휴가는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좋은 삶에 더해지는 보너스가 된다.
지난 글에서 ‘집은 회복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휴가에서 돌아온 직후의 무거움이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면, 그 무게를 그저 견뎌내려 하지 말고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시길 바란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보내고 있는 가장 정직한 신호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