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어요. 제가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답장이 없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상사가 제 말에 별 반응이 없었어요. 저를 안 좋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짜증을 냈는데, 그날 밤 내내 ‘나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모두 그럴듯하다. 상대가 내 메시지에 답하지 않은 것이 불쾌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대가 단지 바빴을 수도 있고, 상사의 시큰둥한 반응도 피곤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짜증 한 번 냈다고 곧바로 형편없는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울해지면 사람은 여러 가능성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해석을 먼저 떠올리고, 그것을 사실처럼 믿는다. 우울증에 걸리면 기분만 가라앉는 게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까지 바뀐다.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왜곡된 생각의 습관을 일컬어 ‘인지 오류’라고 한다. 이름은 다소 딱딱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생각의 버릇이다. 가장 흔한 인지 오류는 흑백논리다. 완벽하면 성공이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실패라고 여긴다. 작은 실수에도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한다’ ‘모든 게 망가졌다’고 믿는 것 역시 흑백논리에 뿌리를 둔 생각이다.
재앙화 사고도 흔하다. 작은 문제를 곧바로 최악의 결말로 연결하는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가 조금 좋지 않으면 큰 병일 것 같고, 누군가의 표정이 어두우면 관계가 곧 끝날 것처럼 느낀다. 한두 번의 실패를 근거로 ‘나는 원래 늘 이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믿는 것은 독심술이다. 주변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일을 지나치게 자기 탓으로 끌어오는 것은 개인화다. ‘반드시 ~ 해야 한다’고 자신과 타인을 몰아붙이는 ‘해야만 해’ 사고도 흔히 나타난다.
인지 오류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우울증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인지 오류를 갖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반복되고 굳어져 일상 전체를 지배할 때 생긴다. 자신이 자주 빠지는 생각의 함정을 익혀 둘 필요가 있다. 흑백논리, 재앙화, 과잉 일반화, 개인화, 독심술, ‘해야만 해’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런 이름들을 기억해 두면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미끄러질 때 붙잡아 줄 안전장치가 된다.
“지금 내가 또 흑백논리로 보고 있구나” “증거 없이 짐작하고 있구나” “최악의 가능성만 키우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아, 이것이 인지 오류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생각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작은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 덕분에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교정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인지 오류는 대개 혼자 생겨나지 않는다. 그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굳어진 믿음이 깔린 경우가 많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인지 오류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둔 것이 있다. 오래 굳어진 신념 체계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작은 반대나 무관심도 견디기 어려워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것을 삶의 조건처럼 붙들고 있으니, 늘 불안하다. 인정에 대한 집착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하든 성공해야 하며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도 마찬가지다.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고 믿으니, 피할 수 없는 실수조차 자기 존재 전체의 무가치함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고, 새로운 시도 자체를 피하게 된다. ‘모든 일은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좌절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
불안을 키우는 신념도 있다. ‘내가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문제가 생긴다. 나는 늘 걱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걱정이 준비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걱정 자체가 삶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신념 체계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에 의해 형성된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해.”
“나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어야 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해.”
“세상은 언제나 공평해야 해.”
물론 그 바탕에 있는 욕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고, 공평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에서는 늘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백 퍼센트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믿으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게 된다. 결국, 살아갈 힘마저 잃게 된다. 우리가 인지 오류에 자주 빠지는 이유도, 실은 이런 오래된 신념 체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신념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온 삶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규칙이 지금의 나를 더 건강하게 살게 하는지, 아니면 더 괴롭게 하는지는 다시 점검해볼 수 있다. 내가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것이 실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울증 치료는 결국 잘못된 생각의 습관을 알아차리고, 오래된 신념을 점검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믿음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 대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대신 ‘실수해도 괜찮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라고 해보자. ‘올바르게 되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 없다’ 대신 ‘괴로워도 나는 견딜 수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우울증은 일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어두워진 상태다. 치료란 그 렌즈를 조금씩 벗겨 내는 과정이다. 내가 오래 믿어온 생각이 정말 맞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아프게 만들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모두 그럴듯하다. 상대가 내 메시지에 답하지 않은 것이 불쾌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상대가 단지 바빴을 수도 있고, 상사의 시큰둥한 반응도 피곤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아이에게 짜증 한 번 냈다고 곧바로 형편없는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울해지면 사람은 여러 가능성 중에서 가장 부정적인 해석을 먼저 떠올리고, 그것을 사실처럼 믿는다. 우울증에 걸리면 기분만 가라앉는 게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까지 바뀐다.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왜곡된 생각의 습관을 일컬어 ‘인지 오류’라고 한다. 이름은 다소 딱딱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생각의 버릇이다. 가장 흔한 인지 오류는 흑백논리다. 완벽하면 성공이고,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실패라고 여긴다. 작은 실수에도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한다’ ‘모든 게 망가졌다’고 믿는 것 역시 흑백논리에 뿌리를 둔 생각이다.
재앙화 사고도 흔하다. 작은 문제를 곧바로 최악의 결말로 연결하는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가 조금 좋지 않으면 큰 병일 것 같고, 누군가의 표정이 어두우면 관계가 곧 끝날 것처럼 느낀다. 한두 번의 실패를 근거로 ‘나는 원래 늘 이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다.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저 사람은 분명 나를 싫어할 거야’라고 믿는 것은 독심술이다. 주변에서 일어난 부정적인 일을 지나치게 자기 탓으로 끌어오는 것은 개인화다. ‘반드시 ~ 해야 한다’고 자신과 타인을 몰아붙이는 ‘해야만 해’ 사고도 흔히 나타난다.
인지 오류가 있다고 해서 곧바로 우울증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인지 오류를 갖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반복되고 굳어져 일상 전체를 지배할 때 생긴다. 자신이 자주 빠지는 생각의 함정을 익혀 둘 필요가 있다. 흑백논리, 재앙화, 과잉 일반화, 개인화, 독심술, ‘해야만 해’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런 이름들을 기억해 두면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미끄러질 때 붙잡아 줄 안전장치가 된다.
“지금 내가 또 흑백논리로 보고 있구나” “증거 없이 짐작하고 있구나” “최악의 가능성만 키우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아, 이것이 인지 오류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 생각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작은 거리가 생긴다. 그 거리 덕분에 자신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교정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인지 오류는 대개 혼자 생겨나지 않는다. 그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굳어진 믿음이 깔린 경우가 많다. 자동으로 떠오르는 인지 오류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둔 것이 있다. 오래 굳어진 신념 체계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작은 반대나 무관심도 견디기 어려워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것을 삶의 조건처럼 붙들고 있으니, 늘 불안하다. 인정에 대한 집착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하든 성공해야 하며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도 마찬가지다. 완벽해야만 가치 있다고 믿으니, 피할 수 없는 실수조차 자기 존재 전체의 무가치함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고, 새로운 시도 자체를 피하게 된다. ‘모든 일은 내가 계획한 대로 되어야 한다’는 믿음은 좌절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
불안을 키우는 신념도 있다. ‘내가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문제가 생긴다. 나는 늘 걱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걱정이 준비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걱정 자체가 삶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신념 체계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에 의해 형성된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해.”
“나는 언제나 착한 사람이어야 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해.”
“세상은 언제나 공평해야 해.”
물론 그 바탕에 있는 욕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고, 공평한 세상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에서는 늘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백 퍼센트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믿으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게 된다. 결국, 살아갈 힘마저 잃게 된다. 우리가 인지 오류에 자주 빠지는 이유도, 실은 이런 오래된 신념 체계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신념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온 삶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규칙이 지금의 나를 더 건강하게 살게 하는지, 아니면 더 괴롭게 하는지는 다시 점검해볼 수 있다. 내가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것이 실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울증 치료는 결국 잘못된 생각의 습관을 알아차리고, 오래된 신념을 점검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믿음으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생각 대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완벽해야 한다’ 대신 ‘실수해도 괜찮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라고 해보자. ‘올바르게 되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 없다’ 대신 ‘괴로워도 나는 견딜 수는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우울증은 일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어두워진 상태다. 치료란 그 렌즈를 조금씩 벗겨 내는 과정이다. 내가 오래 믿어온 생각이 정말 맞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아프게 만들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