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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횟수를 속이고 사적으로 정자를 기증해 600명 이상의 자녀를 태어나게 한 부자가 법원으로부터 영구 기증 금지 처분을 받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증 횟수를 속이고 사적으로 정자를 기증해 600명 이상의 자녀를 태어나게 한 부자가 법원으로부터 영구 기증 금지 처분을 받았다.

지난 29일(현지시각) 외신 피플에 따르면 캐나다 퀘벡주 고등법원은 지난 18일 한 여성의 청구를 받아들여 두 남성의 정자 기증을 전면 금지했다.

네 아이의 어머니인 원고는 정식 난임 클리닉이 아닌 경로를 통해 아버지 필립 노르망과 아들 도미닉 셀로스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각각 최대 10가족, 최대 25명으로 기증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고에 따르면 첫째부터 셋째 아이는 2009년에서 2012년 사이에 노르망의 정자를 이용했고, 네 번째 아이는 그로부터 몇 년 후인 2017년에 셀로스의 정자를 통해 임신했다. 이후 원고는 노르망이 셀로스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으며, 이 정보가 자신에게 고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조사를 진행한 결과, 노르망의 정자로 최소 162명, 셀로스의 정자로 약 451명의 자녀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원고는 두 남성이 제3자에게 정자를 제공하는 행위를 영구적으로 중단해달라는 법원 명령을 요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두 남성이 정자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잠재적 수혜자에게 기증 사실을 알리거나 광고하는 행위 역시 금지했다. 또한 이들이 정자를 제공했던 관련 클리닉에도 판결문을 전달하도록 했다. 사이먼 챔벌랜드 판사는 판결을 통해 “피고인들이 임신한 자녀 수가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한도를 훨씬 초과하며, 이는 해당 아동과 그 가족들에게 위험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정식 클리닉을 통하지 않은 개인 간 정자 거래는 HIV, 간염 등 기증자의 감염병 여부나 유전적 결함을 검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검증되지 않은 생식 세포의 무분별한 사용은 장기적으로 기증을 통해 태어난 아이의 심각한 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암을 유발할 수 있는 희귀 유전적 돌연변이 ‘TP53’을 가진 남성의 정자가 사용돼 유럽 전역에서 최소 197명의 아이가 태어난 사례가 보고됐다.

한 명의 기증자가 수백 명의 생물학적 자녀를 둘 경우, 이들이 서로의 관계를 몰라 근친혼 위험과 희귀 유전 질환 발현 가능성도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을 넘어 지역 사회 전체의 유전적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수백 명의 형제를 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경우 겪게 될 정체성 혼란과 심리적 부담 역시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정자 기증자를 통해 몇 명의 아이까지 태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명확한 제한 규정이 없고, 정자은행별 자율 기준에 맡겨져 있다. 벨기에는 한 기증자의 사용을 최대 6가족으로 제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생명윤리법에 정자 기증 횟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서는 한 공여자당 정자 공여를 출생자 10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최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