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민의 크리미널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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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쩡액 대량학살 센터' 전시관에 있는 크메르 루주 정권 당시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골/사진=연합뉴스
1975년 4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도시 전체가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병원은 문을 닫았고, 학교는 비워졌으며, 사람들은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시민은 도시를 떠나야 했다. 며칠 후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안내가 흘렀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길이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시기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이미 크게 흔들려 있었다. 미군의 폭격으로 국토는 황폐해졌고, 미국의 지원을 받던 정부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1975년, 그 공백을 장악한 세력이 극단 좌익 무장조직 ‘크메르 루주’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독재자 ‘폴 포트’가 있었다.

정권을 잡은 그는 국가의 이름을 ‘민주 캄푸치아’로 바꾸고, 기존의 사회를 완전히 부정하는 급진적 개혁을 시작했다. 그는 이 해를 ‘Year Zero’로 선언했다. 과거를 모두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폴 포트가 구상한 사회는 농업 중심의 완전한 공동체였다. 자본주의는 부패의 원인이며, 도시와 지식은 모두 제거돼야 할 대상이라 선언했다. 그 결과 도시 인구 전체가 농촌으로 강제 이주됐다. 이동 과정에서만 노인과 아이, 환자 등 노약자를 포함해 수만 명이 사망했다. 이후 집단 농장에서의 강제 노동과 기근, 질병으로 수십만 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제거된 대상은 지식인이었다. 교수, 교사, 의사, 법조인, 예술가 등 농업과 직접 관련 없는 직업군은 모두 숙청 대상이 됐다. 기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었다.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 안경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졌다. 심지어 가족까지 연좌제로 제거되기도 했다.

수용소에서는 고문과 강압적인 심문이 반복됐다. 존재하지 않는 죄를 자백하도록 강요받았고, 이후 대부분 처형됐다. 총알을 아끼기 위해 둔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신은 집단으로 매장됐다. 결국, 전국 곳곳에 대규모 매장지가 형성됐고, 캄보디아 전체가 지금도 악명 높은 ‘킬링필드’로 불리게 된다. 이 시기 약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통치 실패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설계된 사회 실험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 기준이 현실이 아니라 이념에 있었다는 점이다. 정책이 실패해도 원인을 정책에서 찾지 않고, 내부의 적과 반체제 인사로 돌렸다. 의심은 곧 처형으로 이어졌고, 공포는 통치의 핵심 수단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폴 포트 개인의 삶이 그가 제거하려 했던 대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수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프랑스 유학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배경을 부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폴 포트는 어떻게 이율배반적인 잔혹한 독재자가 되었을까. 그의 성장 과정에서 몇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위계와 권위가 강조된 환경에서 자라며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졌고, 사회적 불평등을 경험하며 외집단에 대한 불신이 강화됐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는 소외와 차별받는 이방인의 경험을 하며 자신과 집단을 피해자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사회를 ‘우리’와 ‘그들’로 극단적으로 나누는 사고로 이어졌다.

또한 그는 점차 의심이 생각의 중심을 이루는 편집성 성향을 가지게 된다. 내부의 동지조차 잠재적 배신자로 인식했고,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확장됐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겸손한 모습이었지만, 내면에서는 극단적인 통제 욕구와 불신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절대 권력을 장악한 이후 더욱 강화되어 갔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개인의 병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상주의가 절대화될 때 나타나는 사고의 경직성과, 편집성 성향이 권력과 결합될 때 나타나는 집단적 폭력이 결합된 사례에 가깝다. 개인의 공감 능력은 이념 아래에서 무력화됐고,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는 타인은 설득이 아닌 제거 대상이 되어 버렸다.

폴 포트의 집권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1978년 베트남과의 전쟁 이후 정권은 붕괴됐고, 그는 밀림으로 도피했다. 이후에도 게릴라 활동을 이어갔지만 점차 세력을 잃었고, 내부에서도 고립됐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킬링필드’는 한 독재자의 범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이념 체제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명령을 내린 지도자, 이를 수행한 조직, 그리고 이를 막지 못한 환경이 모두 이 사건을 구성한다.

이 사건은 현대사회에 여전히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어떻게 같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이 편협한 이념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잃게 되는가.


이광민 마인드랩공간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