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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나는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대개 주저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번에는 이렇게 질문해 보자. 나는 인권을 침해당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내 존엄과 자유가 무시된 적이 있었는가? 성별·장애·출신지 때문에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대부분 사람은 이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한다.

조금 더 일상적인 장면을 떠올려 보자. 힘들다고 말했는데 “그 정도는 다 겪는 거야”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는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가 짜증 섞인 톤으로 대꾸하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본 적은 없는가. 이런 경험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타인에게 “나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감정을 남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존중 부족이 곧바로 인권 침해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인권 침해는 존중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존중의 결핍이 일정한 조건을 만나면 그것은 실제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차별이 개입될 때, 권력관계가 작동할 때, 혹은 모욕과 배제가 반복될 때다.

예를 들어 성별·장애·출신지·종교·나이와 같은 이유로 의견을 무시하거나 기회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다. 사람을 특정한 조건 때문에 낮게 평가하고 배제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게 된다.

이러한 인권 침해는 차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권력관계 속에서도 쉽게 발생한다. 직장에서 상사가 지위를 이용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지속적으로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가 그렇다. 권력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무시는 개인의 감정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제 질문을 나에게 돌려보자. 나는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가. 나는 혹시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한 적은 없는가. 나는 무심코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준 적은 없는가. 의도가 없었더라도 내가 던진 말과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꿔 보자. “나는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는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가?”라는 질문이 더 구체적이다.

사람은 본래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자아 중심성이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상대의 자리에서 생각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공자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말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권은 법 이전에 관계의 문제이며,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태도의 문제다. 인권은 거창한 선언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오늘 하루 내가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 말을 상대의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들어보라. 그 말은 여전히 따뜻하게 들리는가. 이 작은 성찰이 반복될 때 존중은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삶의 습관이 되고, 그것이 인권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출발점이 된다.

(*이 칼럼은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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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동국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출처=없음



사공정규 동국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