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오의 毛나리자(모발 나려면 이것부터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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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진료실 의자에 앉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때로 그 아이의 비밀 일기장을 들춰보는 것만큼이나 조심스럽다. 그것은 세월이 만든 것도, 유전자가 정해놓은 운명도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고통의 자국. 의학적으로 ‘발모벽’이라 부르는 이 증상은 아이의 내면이 지르는 비명이 두피 위로 삐져나온 것이다. 성인 탈모를 매일같이 마주하는 나에게도 아이들의 빈 정수리는 유독 무겁게 느껴진다. 단순한 나쁜 습관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를 좀 봐달라는 마음의 간절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아홉 살에서 열세 살 사이,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는 큰 고민이 있다. 머리카락을 뽑기 직전의 참기 힘든 긴장감이 툭 하고 모근이 뽑혀 나가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거짓말 같은 해방감과 만족감으로 변한다. 이 비극적인 보상 회로가 뇌에 새겨지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로 손을 뻗게 된다. 진료를 해보면 그 손길 끝에는 늘 촘촘한 학원 시간표나 교실 안의 외로움, 혹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좌절감이 있다. 아이는 입 대신 손가락으로 자신의 불안을 두피 위에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발모벽의 흔적은 일반적인 매끄러운 원형 탈모와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경계가 불분명하고 울퉁불퉁하며, 직접 잡아당긴 탓에 끊어진 머리카락 길이가 제각각이다. 어떤 아이들은 머리카락을 넘어 눈썹이나 속눈썹까지 손을 대기도 하고, 심한 경우 뽑은 머리카락을 먹기도 한다. 단순히 미관상의 문제를 넘어 신체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징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행동이 아이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이미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우리 어른들이 먼저 알아야 한다.


치료는 습관 교정법을 훈련하는 데서 시작된다. 머리카락을 뽑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는 순간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하고, 그 손을 주머니에 넣거나 주먹을 꽉 쥐는 식으로 다른 행동을 끼워 넣는 과정이다. 증상이 너무 심할 때는 약물의 도움을 받아 정서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정교한 의학적 처치보다 강력한 것은 아이를 감싸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문제나 학업 압박을 그대로 둔 채 치료에만 매달리는 것은 구멍 난 댐을 손가락으로 막는 격이다. “왜 뽑았니”라는 날이 선 추궁 대신 “얼마나 힘들었니”라는 나지막한 공감이 아이의 손을 머리에서 내려오게 한다.

다행히 아이들의 모공은 정직하다. 자신을 해치던 손길이 멈추고 마음의 안정이 채워지면, 두피에는 다시 정직하게 머리카락이 자라난다. 3개월 정도의 집중적인 치료 후 다시 빽빽해진 아이의 정수리를 확인하게 되면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복원해야 할 것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아이가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소화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다.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거나 두피에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그건 어른들이 개입해야 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결국, 아이의 손가락을 멈추게 하는 것은 아이의 손을 말없이 따뜻하게 맞잡아주는 어른들의 사려 깊은 마음이다.

(*이 칼럼은 뉴헤어 성형외과 김진오 원장의 기고입니다.) 


김진오 뉴헤어 성형외과 원장(대한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수석탈모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