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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근로자가 AI 기반 농업 로봇을 운용해 농작물을 재배​하는 모습./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AI 기술 발전으로 자동화가 확산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에게는 AI가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직무는 제조·조립·포장 등 단순 노무직 비중이 높고, 사무보조와 서비스 직무 등이 뒤를 잇는다. 이처럼 기존에는 단순 업무 중심의 일자리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데이터 관리나 콘텐츠 제작 등 새로운 직무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취업 준비부터 업무 수행까지 도와
AI는 발달장애인의 취업 준비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업무 과정에서는 정보 정리나 오류 확인, 아이디어 구체화 등을 지원해 작업을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무개발팀 이지우 팀장은 “실제 현장에서는 AI가 작업 과정을 단순화하고 실수를 줄이며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예를 들어 반복 업무에서는 작업 순서와 단계를 차례대로 안내하고 오류가 발생할 경우 즉시 알려줘 업무의 정확도와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하면 발달장애인 근로자가 단순 보조 업무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생산성을 발휘하며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취업 준비 단계에서도 AI 활용이 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AI를 활용한 자기소개서 작성이나 면접 연습, 정보 탐색 등이 직업훈련 과정에 도입되고 있다. 사회복지사이자 발달장애인 진로직업교육 기업 ‘꿈앤컴퍼니’의 박대수 대표이사는 “현재 발달장애인 직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챗GPT 등 AI 도구를 활용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마인드맵 작성이나 직무 적합 분석 등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직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AI로 확대된 직업군… 농업·문화예술까지
AI 기술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영역까지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로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AI 농업로봇 오퍼레이터’ 직무로, AI 기반 농업 로봇을 운용해 농작물을 재배한다. 발달장애인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전용 인터페이스와 LED 안내 장치, 사진 중심의 매뉴얼이 함께 설계됐다. 작업 단계를 시각적으로 안내하고 오류를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업무 정확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농업은 작업 환경과 날씨, 작물 상태 등에 따라 업무 수행 방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발달장애인이 수행하기 어려운 분야로 여겨져 왔다. 이지우 팀장은 “그러나 AI 기반 로봇과 작업 안내 시스템을 통해 업무 과정을 단계별로 구조화하면서 발달장애인도 참여할 수 있는 직무로 확대됐다”며 “이러한 방식으로 직무를 설계한 결과 발달장애인 8명이 해당 분야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업무 특성과 강점을 반영한 직무도 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반복성이 높고 기준이 명확한 업무에서 강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정리, 품질 확인, 콘텐츠 점검처럼 정해진 절차를 꾸준히 수행하는 업무가 대표적이다. 이 팀장은 “업무 과정에서 AI가 작업 순서를 안내하거나 오류를 보완하면 이러한 강점이 보다 안정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며 “실제로 AI 데이터 라벨링이나 디지털 문서 정리와 같은 IT 기반 업무, AI 도구를 활용한 콘텐츠 기획·제작 분야에서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무가 활발히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AI 데이터 라벨링은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도록 이미지·영상·텍스트 등에 정답 정보를 표시해 주는 작업을 말한다.

문화·예술 분야로도 확장되는 중이다. ‘AI 샌드 아티스트’ 직무가 그 예다. 발달장애인이 표현하고 싶은 장면이나 이야기를 구상한 뒤 AI 이미지 생성 도구로 이미지를 만들면, 이를 바탕으로 샌드아트(모래로 그림을 그려 이야기를 표현하는 공연 예술) 작품을 제작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이미지 구상이나 장면 구성, 스토리 흐름 정리 등을 보조한다. 박대수 대표이사는 “이를 통해 발달장애인 근로자는 복잡한 창작 과정의 부담을 줄이고 자신의 감정과 표현 의도를 작품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며 “AI와 문화예술을 접목한 이러한 직무는 중증장애인의 창작 활동 진입 장벽을 낮추고 문화예술 분야에서 새로운 직무 가능성을 넓히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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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근로자가 생성한 AI 이미지를 바탕으로 샌드아트 작품을 제작하는 모습./사진=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공
◇“AI 직무 확산 기대… 직업훈련·정책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AI 기술 확산이 발달장애인의 직무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실제 고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대수 대표이사는 “사무 영역이나 상품 개발 관련 사업 등에서도 발달장애인의 강점을 활용한 직무 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시범사업 등을 통해 개선된 직무들이 소개되면 유사 업종의 기업에서도 장애인 고용 의지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기반 직무가 현장에 안정적으로 도입되고 지속될 수 있도록 맞춤형 직업훈련과 현장 적응을 돕는 지원 체계, 장애인 고용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한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장애인의 AI 활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AI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은 장애 유형과 직무 특성에 맞는 AI 도구 활용 교육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과정은 기초, 심화, 재직자 과정 등 세 단계로 나뉜다. 기초 과정에서는 AI 이해와 이미지 생성 체험 등 입문 중심 교육이 진행되며, 심화 과정에서는 문서 자동화나 회의 자료 제작, 업무 적용 설계 등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이뤄진다. 재직자 과정은 현재 근무 중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직무와 근무 환경에 맞춰 기초·심화 과정을 선택해 들을 수 있도록 운영될 예정이다.

이지우 팀장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이러한 AI 대전환 시대에 맞춰 기업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기업 수요와 여건에 맞춘 장애인 고용 컨설팅과 AI 직무 개발, 디지털 기반 직업훈련 확대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