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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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병변처럼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경과 관찰 과정에서 추가 검사를 통해 질환 진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발열이나 기침 등 비교적 흔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더라도 정확한 진단이 늦어지면 패혈증(감염으로 전신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상태) 등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간 병변처럼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경과 관찰 과정에서 추가 검사를 통해 질환 진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헬스조선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 사례를 토대로, 간농양(간 조직 안에 고름이 차는 질환)이 의심됐던 환자가 이후 장천공과 패혈성 쇼크로 사망하면서 발생한 의료분쟁 사건을 정리했다.

◇사건 개요
70대 남성 김씨는 호흡곤란과 발열, 기침 증상으로 2020년 4월 A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흉부 CT 검사에서는 폐 아래쪽에 염증이 생긴 것으로 보이는 병변과 기관지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기관지확장증이 확인됐다. 복부 CT 검사에서는 간농양이나 악성 종양이 의심되는 여러 개의 간 병변이 발견됐다. 이에 김씨는 입원해 항생제 등 약물 치료를 받았다.

입원 기간 중 위내시경 검사에서는 역류성 식도염과 만성 위염이, 대장내시경 검사에서는 감염성 대장염이 확인됐다. 간 초음파 검사와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에서도 간농양이나 악성 종양이 의심되는 병변이 확인됐다.

의료진은 초음파를 보며 간 조직을 채취하는 간생검을 시행했다. 검사 결과 담즙이 정체된 급성 간염 소견만 확인됐고, 간농양이나 악성 종양을 시사하는 소견은 확인되지 않았다. 환자는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판단돼 퇴원했다.

그러나 약 한 달 뒤 외래 진료를 받던 중 김씨는 다시 호흡곤란 증상을 보여 응급실에 내원했다. 검사 결과, 장에 구멍이 생긴 장천공으로 인해 복강 전체에 염증이 퍼진 범복막염이 확인됐다. 폐렴과 흉막삼출(폐를 둘러싼 흉막 사이에 액체가 고이는 상태), 신부전(신장 기능이 떨어져 노폐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는 상태)도 함께 나타났다.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사망진단서에는 패혈성 쇼크와 간농양 의증(의심되지만 확진되지 않은 상태)이 사인으로 기재됐다.

◇유족 “간농양 의심됐는데 적극적 검사·치료 없었다” vs 병원 “적절한 검사·치료 후 경과 관찰”
이에 김씨 유족은 “초기 검사에서 간농양이 의심됐음에도 충분한 조직검사나 적극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퇴원 후 외래 진료에서도 간농양 가능성을 간과해 별다른 조치 없이 귀가시켰고,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며 의료분쟁 조정을 신청했다.


반면 병원 측은 “폐렴과 뇌수막염, 진균 농양(곰팡이 감염으로 생긴 고름 주머니), 림프종 등 다양한 질환 가능성을 고려해 항생제 치료와 배양 검사, 간 조직검사를 시행했다”며 “검사 결과 감염이 호전되는 양상을 보여 퇴원 조치를 했고, 외래에서도 감염 소견이 없어 경과 관찰을 계획했지만 질환이 갑자기 악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중재원 “외래 경과 관찰 더 적극적이었어야”
의료중재원은 “감정 결과 초기 진단 검사와 치료 과정은 일반적인 의료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다만 간 병변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았던 만큼 외래 경과관찰 과정에서 더욱 적극적인 검사와 진료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일정 기간 뒤 영상 검사를 계획하는 데 그치기보다 간 병변의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추가 검사와 면밀한 추적 관찰이 필요했을 것으로 봤다.

또한 의료중재원은 김씨의 간 병변이 흔히 나타나는 화농성 간농양으로 보이지 않았고 간농양 역시 의증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의료진의 주의 태만으로 치료 시기를 놓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환자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장천공으로 인한 범복막염과 패혈성 쇼크로 보여, 의료진의 조치가 사망 결과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조정위원회는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 병원이 유족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도록 조정했다. 양측이 이에 동의하면서 사건은 합의로 마무리됐다.

◇원인 불명 간 병변, 외래에서도 면밀한 관찰 필요
이번 사례는 간농양이나 악성 종양 등 여러 질환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된 경우, 퇴원 뒤 외래 경과 관찰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상 검사에서 이상 병변이 반복 확인됐다면 일정 기간 뒤 검사를 다시 하는 데 그치기보다,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추가 검사와 진료가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CT나 MRI를 다시 촬영하거나 필요하면 간 조직검사를 시행해 병변의 성격을 평가하는 방법이 있다. 특히 감염과 종양 가능성이 모두 있는 경우에는 증상 변화와 검사 결과를 자세히 살펴 질환 악화 여부를 조기에 확인해야 한다.


유예진 기자 | 자료=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