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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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결정을 하려면 감정이 격해진 순간을 피하고 차분하게 판단하는 게 좋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자잘한 선택도 있지만 인생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택도 있다. 대학 진학이라든지 직업과 배우자의 선택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은 환자들이 선택에 대한 후회로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생겨 병원을 찾아오곤 한다.

“그 직장을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괜히 돈을 좀 많이 준다는 말에 혹해가지고 이 모양이 되어버렸어요.”
“그 당시에 그 사람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사업에 투자를 안 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망하진 않았을 텐데요. 이제는 재기하기도 어려운 나이인데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르겠어요. 그저 죽고만 싶어요.”   
“그 사람과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요.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불행 속에서 살지는 않았을 거예요.”

면담 중 직장에 대한 원망, 경제적인 결정이나 결혼 생활에 대한 후회가 쏟아진다. 죽고 싶다는 말은 아마도 실제로 죽고 싶다는 뜻이라기보다 더는 감당할 힘이 없다는 호소일 것이다. 이런 상황들이 물론 안타깝고 마음 아프지만 선택에 일정 부분 책임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누구를 탓하는 것은 마음이 너무 아플 때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반응(투사)이기도 하다. 잘못된 선택으로 벌어진 상황이 상대의 책임도 크긴 하겠지만 내 책임도 있다. 한번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을 겪었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객관적인 시각과 정보를 바탕으로 나와 내 주변 환경을 평가해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해야 한다. 매 순간마다 상황이나 조건이 바뀌기 때문에 선택이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판단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순간적인 감정이나 도피의 방법으로 선택을 한 환자들이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를 곁에서 많이 지켜보았다.   

때때로 떠밀리듯이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받거나 압력에 못 이겨 선택해 놓고 후회하는 식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거절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이에 대한 압력을 이겨내야 하는데 쉽지만은 않다. 거절에 대한 불이익은 어떻게 감당하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적당히 타협하는 선택이 나를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뒤따른다.

선택과 의사결정은 주로 전두엽 기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장기적인 결과를 예측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상태에서는 뇌의 조절 기능이 저하되고 감정 처리 영역의 반응성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당장의 불안이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맞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반복된 실패 경험이나 낮아진 자존감, 경제적 압박과 주변의 기대와 같은 여러 요인이 겹치면 선택이 점점 더 왜곡된 방향으로 굳어질 수 있다. 그래서 감정이 가장 격해진 순간에서의 선택은 한 번 더 미루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차분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직이나 이혼처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쪼록 인생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기를 바라며 만약 이미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힘든 고비를 겪고 있다면 감정을 잘 추스르며 극복해나가기를 바란다. 동시에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난 선택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일이 100% 내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남의 탓도 아니다. 나 역시 내 선택이 올바른 판단의 결과이길 늘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고자=이강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정신신체의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