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대신 노인 보고, 보톡스 배운다"
저출산은 배경일 뿐… 수가와 사법 리스크가 핵심 원인
무너진 소아 의료 인프라 "'국가 책임제' 시급"
경기도 한 신도시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A씨는 오전 7시 알람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서둘러 준비해 차로 40분 떨어진 소아청소년과의원으로 향한다. 진료는 오전 8시 30분부터지만, 병원 앞에 도착하니 이미 대기 명단에는 30명이 넘는 이름이 올라와 있다. 집 근처 소아청소년과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원정 진료'가 일상이 됐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저출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 문 앞에서 긴 줄을 서는 부모들은 늘고 있다. 아이들이 갑자기 많아져서가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진료하던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폐업률 151%… 병원만 줄어든 게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89곳으로, 신규 개원(59곳)보다 많았다. 신규 대비 폐업률은 150.8%로, 주요 진료과 가운데 가장 높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폐업 이후다.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 '대한의학회지(JKMS)'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20~2022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64명을 추적한 결과,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계속한 경우는 34.9%에 불과했다. 35.4%는 요양병원·일반의원·정신병원 등 비(非)소아 진료 영역으로 이동했고, 29.7%는 휴직·은퇴 상태였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명 중 2명이 사실상 아이 진료 현장을 떠난 셈이다.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저출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 문 앞에서 긴 줄을 서는 부모들은 늘고 있다. 아이들이 갑자기 많아져서가 아니다. 소아청소년과 병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진료하던 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다.
◇폐업률 151%… 병원만 줄어든 게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89곳으로, 신규 개원(59곳)보다 많았다. 신규 대비 폐업률은 150.8%로, 주요 진료과 가운데 가장 높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폐업 이후다. 대한의학회 국제학술지 '대한의학회지(JKMS)'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20~2022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64명을 추적한 결과,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계속한 경우는 34.9%에 불과했다. 35.4%는 요양병원·일반의원·정신병원 등 비(非)소아 진료 영역으로 이동했고, 29.7%는 휴직·은퇴 상태였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명 중 2명이 사실상 아이 진료 현장을 떠난 셈이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최용재 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장)은 "지금은 단순한 감소가 아니라 소아 의료 인프라 붕괴의 초기 단계"라며 "신규 전문의 유입은 거의 멈췄고, 지역별 의료 접근성 격차는 급격히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체감은 통계보다 더 심각하다. 남아 있는 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대기 시간은 길어지고, 야간·휴일 진료 공백은 상시화됐다. 최용재 회장은 "환자가 늘어서가 아니라 공급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양병원·미용으로… '전공 이탈'의 현실
그렇다면 아이를 진료하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폐업 전문의 가운데 24명은 요양병원으로 이동했다. 아이를 돌보던 의사가 80대 노인을 돌보는 장면은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최용재 회장은 "요양병원은 야간 당직이 거의 없고,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리스크가 낮으며, 수입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며 "지금 구조에서는 소아청소년과를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는 일반의원이나 내과로 옮겨 성인 환자의 감기·수액·만성질환 진료에 집중한다. 간판은 소아청소년과를 유지하더라도, 실제 진료 내용은 크게 달라진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과 개원의는 "간판은 소아청소년과지만, 환자의 80% 이상이 성인"이라며 "감기, 수액,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본다"고 말했다. 수익 구조를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피부·미용 분야로의 이동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열린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학술대회에서는 보톡스·필러·레이저 시술 강의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500여 명이 몰렸다. 비급여 중심의 피부·미용 진료는 수익 구조가 안정적이고, 정부의 가격 통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한 개원의는 "대형 병원이 아닌 이상 아이 진료만으로는 병원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살아남기 위해 성인 진료와 미용 진료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급여 진료가 거의 없는 소아청소년과의 특성상, 이는 자발적 선택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출구 전략'에 가깝다는 것이다.
◇"핵심은 '파렴치한 수가'와 '야만적 사법 리스크'"
소아청소년과 위기의 원인으로 흔히 저출산이 지목된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저출산은 배경일 뿐, 핵심 원인은 구조적 붕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횟수당 진료비는 1만9227원으로, 전체 진료과 평균(4만154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의원을 찾는 환자 1인당 연간 진료비도 14만 5534원으로 전체 진료과를 통틀어 최저 수준이다. 비급여 진료 비중이 작아 수익 대부분이 건강보험 수가에 의존하는 구조다. 아이 진료는 성인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호자 설명과 상담이 필수적이지만, 보상은 오히려 적다. 환자를 많이 볼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감정 노동과 민원, 의료 소송 부담이 더해진다. 아이는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의료진은 보호자의 항의와 민원, 형사 책임 위험에 동시에 노출된다. 최용재 회장은 이를 '야만적 사법 리스크'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는 긴 대기시간, 잦은 민원, 급성 악화 위험, 과도한 소송 부담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며 "대기 비용은 전혀 보상하지 않으면서 책임만 지우는 구조"라고 말했다.
소아 진료는 1차 의원→2차 병원→3차 전문 센터로 이어지는 연속적 의료망이 필수다. 그러나 지방을 중심으로 이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강원 영동권에서는 유일한 소아 응급실이 의사 부족으로 1년 10개월 넘게 야간·휴일 운영을 중단했다. 주민들이 1억 원을 모아 의료진 유치에 나섰지만, 여전히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아이가 위급하면 2~3시간 거리의 수도권 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마상혁 과장은 "일부 농어촌과 중소 도시는 반경 30km 내 소아청소년과가 없는 '소아과 사막'이 현실화된 상태"라며 "응급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했다.
◇정부 대책의 딜레마… "병원·의사 늘린다고 해결 안 돼"
정부는 야간·휴일 진료 공백 해소를 위해 달빛어린이병원 제도를 확대하고, 장기 대책으로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선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달빛어린이병원은 경증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야간·휴일 외래 진료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러나 대기 비용에 대한 보상 구조가 없어 상당수가 적자 운영에 시달리고 있다. 달빛어린이병원협회에 따르면 병원 1곳을 유지하려면 의사 6명, 간호사 12명, 행정 인력 2명 이상이 필요하며, 연간 운영비는 30억 원 안팎이다. 현행 수가 체계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최용재 회장은 "지정은 행정이지만 운영은 경제"라며 "대기 비용을 공공 재정으로 보전하지 않으면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역시 단기 해법이 되기 어렵다. 마상혁 과장은 "전문의 배출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는데, 지금 당장 파이프라인에 구멍이 났다"며 "보상 체계가 그대로라면 늘어난 의대생들도 결국 소아청소년과를 외면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현재 현장을 지키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대부분이 50~60대인 점을 고려하면, 10년 뒤 '소아과 멸종'은 예견된 미래라는 지적이다.
◇"아이 진료는 사회 인프라… 시장 논리로 접근 말아야"
전문가들은 소아청소년과를 소방서 같은 필수 사회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가 매일 위급한 것은 아니지만, 없으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요구되는 핵심 대책으로는 ▲수가 구조 전면 개편 ▲야간·휴일 대기 비용 공공 보전 ▲지역 소아 응급·중환자 네트워크 구축 ▲소아청소년 주치의 제도 도입 등이 꼽힌다.
최용재 회장은 "불이 매일 나지 않아도 소방서는 유지돼야 하듯, 소아청소년과도 사회가 대기 비용을 보전해야 한다"며 "구조 개혁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소아청소년 건강 기본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해당 법안은 소아 응급의료 체계 구축, 진료권 별 네트워크 강화, 의료 취약지 지원, 적정 수가 체계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
달빛어린이병원은 경증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야간·휴일 외래 진료를 제공하는 제도다. 그러나 대기 비용에 대한 보상 구조가 없어 상당수가 적자 운영에 시달리고 있다. 달빛어린이병원협회에 따르면 병원 1곳을 유지하려면 의사 6명, 간호사 12명, 행정 인력 2명 이상이 필요하며, 연간 운영비는 30억 원 안팎이다. 현행 수가 체계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최용재 회장은 "지정은 행정이지만 운영은 경제"라며 "대기 비용을 공공 재정으로 보전하지 않으면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역시 단기 해법이 되기 어렵다. 마상혁 과장은 "전문의 배출까지 최소 10년이 걸리는데, 지금 당장 파이프라인에 구멍이 났다"며 "보상 체계가 그대로라면 늘어난 의대생들도 결국 소아청소년과를 외면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현재 현장을 지키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대부분이 50~60대인 점을 고려하면, 10년 뒤 '소아과 멸종'은 예견된 미래라는 지적이다.
◇"아이 진료는 사회 인프라… 시장 논리로 접근 말아야"
전문가들은 소아청소년과를 소방서 같은 필수 사회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가 매일 위급한 것은 아니지만, 없으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요구되는 핵심 대책으로는 ▲수가 구조 전면 개편 ▲야간·휴일 대기 비용 공공 보전 ▲지역 소아 응급·중환자 네트워크 구축 ▲소아청소년 주치의 제도 도입 등이 꼽힌다.
최용재 회장은 "불이 매일 나지 않아도 소방서는 유지돼야 하듯, 소아청소년과도 사회가 대기 비용을 보전해야 한다"며 "구조 개혁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소아청소년 건강 기본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해당 법안은 소아 응급의료 체계 구축, 진료권 별 네트워크 강화, 의료 취약지 지원, 적정 수가 체계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