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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명절이 지나고 나면 집은 다시 조용해진다. 며칠 전까지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거실은 금세 적막해지고, 식탁 위 음식은 정리된다. 그 조용함 속에서, 어떤 어르신의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다.

진료실에서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했다. “명절 때는 애들이 와서 정신이 없었는데, 다 가고 나니 너무 조용해요.” 그 말은 단순한 허탈함이 아니었다. 잠시 연결되었다가 다시 혼자가 된 느낌. 그 단절의 체감이 노년 우울을 자극한다.

노년 우울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 신체 질환도, 경제적 어려움도 중요하다. 그러나 연구와 임상을 종합해 보면 가장 강력한 요인은 ‘사회적 고립’이다. 고립은 혼자 사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나는 더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명절은 그 고립을 잠시 가려준다. 가족이 모이고, 손주가 뛰어다니고, 음식 냄새가 퍼진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여전히 가족 안에 있다”는 감각이 살아난다. 그러나 모두 돌아가고 나면 집은 다시 조용해진다.

고립은 원래 조용하다. 명절은 그 조용함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연결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에 적막이 남는다. 이 적막은 단순한 쓸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년 우울은 젊은 세대의 우울과 다르다. 슬픔보다 무기력이 앞선다. “기운이 없다” “다 귀찮다” “사는 재미가 없다”는 말로 대변된다. 이 우울은 종종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새벽에 일찍 깨고, 입맛이 떨어지고, 통증이 심해진다. 때로는 기억력 저하로 치매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울은 뒤늦게 발견되거나 다른 질환으로 오해되기 쉽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노년층은 충동적 선택보다 계획적이고 치명적인 선택을 하는 비율이 높다. 우울을 방치하면, 고립은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위험의 밑바닥에는 존재가 흔들리는 감각이 자리하고 있다.

노년 우울의 핵심은 존재감의 약화다. “내가 자식들에게 짐이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같은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존재가 흐릿해졌다는 신호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빠르게 무너진다. 그러나 이 무너짐을 개인의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은 연결이 느슨해진 사회가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의 증가, 지역 공동체의 약화 속에서 노년의 고립은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 개인의 존재감이 흔들리는 배경에는, 사회적 연결망의 균열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연결은 가족에만 맡길 수 없다. 지역 사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우연이 아니라 구조가 될 때, 고립은 힘을 잃는다. 일상적인 ‘안부 인프라’가 있어야 연결은 유지된다. 이를 위해 공공의 책임과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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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동국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물론, 제도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명절의 북적임은 짧고, 고립은 길다. 해결은 멀리 있지 않다. 명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연결을 이어가는 것이다. 짧은 전화 한 통. 사진 한 장 공유. 마음을 묻는 한마디. 작은 접촉이 반복될 때, 고립은 설 자리를 잃는다.


(*이 칼럼은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기고입니다.)

사공정규 동국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