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민의 크리미널 마인드]

이미지
존 웨인 게이시의 모습/사진=BBC,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197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시카고 외곽 마을 경찰서에 한 남성이 체포됐다. 마리화나 소지 혐의였다. 그는 30대 후반의 백인 남성이었고, 나름 인근 지역까지 잘 알려진 사업가였다. 건설 및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정치 활동에도 참여했고, 민주당 지역 조직에서 활동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아동 병원을 찾아 광대 분장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으로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얻은 사람이었다. 체포 당시 그는 억울하다는 듯 경찰에 항의했고, 자신이 지역 유력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이 그랬던 것처럼.

같은 시각 그의 집에서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었다. 별다른 범죄의 흔적이 없이 끝나는가 싶던 와중, 집 바닥 아래 공간을 뜯어보니 부패한 시체들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수사관들은 곧 이 남성이 미국 범죄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 중 한 명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이름은 ‘존 웨인 게이시’.

수사는 1년 전 실종된 15세 소년 사건에서 시작됐다. 소년은 약국에서 일하던 중 게이시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자리를 제안받고 그를 만나러 간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가출로 판단했지만, 게이시의 집에서 발견된 여러 물품이 의심을 키웠다. 수갑, 족쇄, 경찰 배지, 성 관련 도구, 그리고 실종 소년의 소지품으로 확인되는 물건들이 발견됐다. 이후 경찰은 게이시를 미행하며 감시를 이어갔다.

결정적인 단서는 집 내부에서 나는 악취였다. 한 수사관이 화장실을 사용하던 중 환풍구에서 시체 부패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뭔가 있다고 확신했다. 이를 근거로 추가 수색영장을 청구했고, 게이시가 도망칠 걸 우려해 우선 마리화나 소지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그렇게 그의 집 지하의 좁은 공간에서는 총 26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추가로 집 부지와 인근 강에서도 여러 시신이 발견됐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 남성이었다.

게이시는 주로 가출했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접근했다. 일자리를 제안하며 유인하거나,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은 뒤 집으로 데려왔다. 이후 수갑을 이용한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피해자의 손을 묶고,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성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 젊은 남성들을 고용하며 권력관계를 형성했고, 자신을 보호자이자 권위자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의 삶은 극단적인 이중성을 보였다. 어린 시절 그는 폭력적이고 통제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때로는 애정을 보였지만,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고 아들을 무능하고 나약하다고 비난했다. 게이시는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반복적으로 거부당하는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 권력과 통제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사회적으로 그는 성공한 인물처럼 보였다. 사업에 성공했고 정치 활동에도 참여했다. 지역사회에서는 모범적인 시민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젊은 남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했고, 이전에도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는 사회적 인정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분리된 삶을 유지했다.


재판 과정 중 시행된 정신과적 평가에서 그는 반사회성 성격장애로 진단됐다. 이는 타인의 권리를 반복적으로 침해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성격 구조를 의미한다. 그는 타인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인식했다. 피해자들은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통제하고 지배하는 대상이었다.

재판에서 그는 정신질환을 이유로 형사 책임을 면하려 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그가 자신의 범행이 사회적으로 범죄라고 인식할 능력이 충분했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고, 1994년 형이 집행됐다.

게이시는 생전에 광대 분장을 하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광대라는 존재가 무엇이든 숨길 수 있는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사회는 그를 신뢰했고, 그는 그 신뢰를 이용했다. 그의 범죄는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오랜 기간 형성된 성격 구조와 권력에 대한 집착,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됐다.

물론 정신질환이 모든 범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자는 폭력적이지 않다. 그러나 특정 성격 구조와 환경, 그리고 권력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결합될 때,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범죄는 개인의 병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사회적 신뢰와 권력 구조가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게이시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범죄를 후회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여전히 사회를 기만할 수 있다며 비웃었다. 사형 집행 전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걸 알려줄까? 나는 그간 33명을 죽였지만, 당신들은 나밖에 못 죽여, 결국 내가 이긴 거야.”

그의 삶은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왜 가면을 쓰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가면을 쉽게 믿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