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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는 발작을 목격했을 때의 기본 대응 원칙으로 ‘3S 원칙’을 제시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뇌전증은 뇌졸중, 치매, 편두통과 함께 흔한 4대 만성 뇌질환 가운데 하나로,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고령 인구 증가로 연령대별 발생률이 더 높아지고 있다. 환자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물과 수술 치료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해가 함께 필요하다.”

대한뇌전증학회 서대원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9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세계 뇌전증의 날’ 기념 심포지엄 형식의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세계 뇌전증의 날’은 국제뇌전증협회(IBE)와 국제뇌전증퇴치연맹(ILAE)이 2015년 공동으로 제정한 기념일이다.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에 전 세계 130여 개국이 함께 참여한다. 올해 슬로건은 ‘#뇌전증실천서약 인식에서 실천으로(#Epilepsy Pledge: Moving from Awareness to Action)’로 정해졌다.

뇌전증은 뇌에서 비정상적인 전기 신호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발작이 되풀이되는 만성 신경계 질환이다. 최근에는 고령 인구 증가와 함께 뇌혈관 질환이나 퇴행성 뇌질환과 연관된 뇌전증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의대 신경과 이우진 교수는 “환자 수는 늘고 있지만 치료 접근성과 관리 수준이 향상되면서 사망률과 전반적인 질병 부담은 감소하는 추세”라며 “특히 고령층에서 발생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적 요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함께 짚었다. 고려의대 심영규 교수는 “어릴 때 발병할수록 유전적 비중이 커질 수는 있다"면서도 "대부분 가족에게 유전되지 않아 일반적인 유전병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일부 뇌전증은 유전자 검사로 맞춤 치료할 수 있다.

치료 환경에 대해서는 약물 선택 폭이 넓어진 반면, 응급 대응 체계는 여전히 과제로 지적됐다. 충남대 신경과 김재림 교수는 “3세대 항발작제 도입으로 치료 선택지는 확대됐지만, 갑작스러운 발작에 대비한 응급 약물과 제도적 준비는 충분하지 않다”며 “일부 약제의 생산·공급 중단에 대한 대책과 함께 비강 분무형, 구강 점막 투여 제형 같은 신속 투여 약물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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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뇌전증학회 서대원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뇌전증 환자가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물과 수술 치료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해가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진=유예진 기자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대응 요령도 함께 안내됐다. 학회는 발작을 목격했을 때의 기본 대응 원칙으로 ‘3S 원칙’을 제시했다.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침착하게 지켜보는 ‘Stay’, 주변의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머리 밑에 옷이나 가방 등을 받쳐 다치지 않도록 하는 ‘Safe’,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몸을 옆으로 돌려 눕히는 ‘Side’다. 원광의대 신경과 한선정 교수는 “발작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팔다리를 억지로 붙잡거나 입안에 물건을 넣어서는 안 된다”며 “발작이 5분 이상 지속되거나, 발작이 연이어 반복되거나, 발작 후에도 의식이 회복되지 않으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뇌전증 환자가 일상에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공유됐다. 13세에 뇌전증 진단을 받은 민혜수 씨는 학창 시절과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이어진 일상의 불편과 두려움을 담담하게 전했다. 민 씨는 처음 발작을 겪은 뒤 병원을 찾았고, 만 13세부터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때 체육 입시를 준비하며 운동 중 발작이 반복돼 훈련을 지속하기 어려웠다”며 “학교를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공식적인 진단서 처리가 쉽지 않아 생활기록부에 무단결석이 남았던 점이 부담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 씨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촬영한 영상이 소개됐다. 그는 “해외여행을 하며 혹시 쓰러지지 않을지 늘 불안했고, 한 차례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나 매우 놀라기도 했지만, 여행은 잘 마무리했다”며 “뇌전증이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미루기보다, 두렵더라도 한 걸음씩 해보면서 제 일상을 계속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학회는 ‘뇌전증 발작 시 대처법’과 ‘뇌전증과 유전’을 주제로 한 웹툰을 제작해 대중에게 보다 쉽게 정보를 전달할 계획이다. 이번 웹툰은 ‘유미의 세포들’로 잘 알려진 이동건 작가와 협업해 제작됐으며, 네이버웹툰을 통해 공개된다.

대한뇌전증학회 김지현​ 홍보이사(이대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 발작 상황에서 무리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면 안 된다”며 “심정지 환자에게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하지만, 뇌전증 발작 환자에게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내용을 일반인에게 더욱 친근하고 구체적으로 알리기 위해 웹툰을 기획했다”며 “많은 사람이 올바른 대처법을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