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 누수를 막기 위한, 이른바 '8주 룰'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교통사고 경상 환자의 치료 기간이 8주를 넘길 경우, 보험금 지급을 위해 별도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험업 감독 업무 시행 세칙 개정안을 예고했다. 상해등급 12~14등급에 해당하는 경상 환자의 90% 이상이 사고 후 8주 이내 치료를 마쳤다는 통계를 근거로, 불필요하게 장기화된 치료와 보험금 누수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8주 룰은 오는 3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보험업계는 과잉 진료와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행정 기준과 의학적 회복 시점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상', 가볍다는 뜻 아냐… 보이지 않는 손상의 문제
교통사고에서 흔히 쓰이는 '경상 환자'라는 표현은 의학 용어라기보다 행정적 분류에 가깝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상해를 1급부터 14급까지 나누며, 이 중 12~14급을 통상 경상으로 분류한다. 타박상, 염좌, 찰과상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경상'이 곧 '금방 낫는 가벼운 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염좌나 연부조직 손상은 엑스레이나 MRI(자기공명영상) 같은 영상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통증이나 운동 제한처럼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증상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신경외과 허연 전문의는 "영상 검사는 구조적 이상을 확인하는 도구일 뿐, 근막의 미세 손상이나 신경 과민화까지 모두 포착하지는 못한다"며 "영상은 정상인데 통증이 수주 이상 지속되는 사례는 임상에서 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통사고 이후 흔히 발생하는 편타 손상은 대표적인 예다. 영상 소견이 정상이어도 심한 통증과 신경 기능 이상이 수개월 지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하필 '8주'인가… 의학적 회복과 행정 기준의 간극
의학적으로 손상 회복은 사고 직후의 급성 염증기와 이후 조직 재생·기능 회복기를 거친다. 일반적으로 일상생활 복귀까지는 6~8주가 소요되지만, 손상의 양상에 따라 회복 속도에는 개인차가 크다. 허연 전문의는 "단순 염좌의 경우 3~4주 치료로 일상 복귀가 가능하지만, 연부 조직이 완전히 안정화되기까지는 최대 12주까지 관찰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8주는 의학적 회복의 분기점이라기보다, 아급성기의 마지노선에 가까운 시점"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90%가 8주 이내 치료 종료'라는 국토교통부의 통계 역시 의학적 기준이라기보다 보험·행정 데이터다. 의료계에서는 '많이 끝난 시점'과 '회복이 충분히 이뤄진 시점'은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특별시 서남병원 장영수 공공의료본부장(정형외과 전문의)은 "8주는 참고 기준일 수는 있지만, 환자별 회복 경과와 기능 회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기간만으로 치료 종료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나이롱 환자' 논란과 한방치료… 통증 평가의 사각지대
8주 룰 논의의 배경에는 이른바 '나이롱 환자'를 걸러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보험업계는 경미한 접촉 사고 이후에도 치료가 수개월간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논쟁의 핵심이 환자의 진정성보다는 통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의 부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증은 영상이나 수치로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워 의학적으로도 회색지대가 넓은 증상이다. 장영수 본부장은 "통증 만성화는 염증, 근경직, 중추성 감작, 수면 장애, 사고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과정"이라며 "조직이 회복된 뒤에도 통증이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특성은 8주를 초과한 환자들의 치료 양상에서도 드러난다. 대형 손해보험사 4곳 통계에 따르면 8주 초과 경상 환자의 87.2%가 한방병원 치료를 받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과잉 진료의 증거라기보다, 통증 중심 질환을 다룰 제도적 평가 체계가 부재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의계는 '경상'이라는 행정 분류가 실제 손상 양상과 회복 과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대한한의사협회 김석희 홍보이사는 "상해 12~14급에는 단순 염좌뿐 아니라 신경 손상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포함된다"며 "편타 손상처럼 영상 이상 없이 통증과 기능 장애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침 치료나 추나요법 등 한의치료는 근골격계 손상과 급·만성 통증 관리에 활용돼 왔고, 8주 초과 환자의 한의과 선택은 환자 경험과 치료 만족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손해율 관리와 치료권 보호 사이… 대안은 '기간'이 아닌 '기능'
보험업계가 8주 룰 도입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자동차보험 손해율 악화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형 손해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96%를 넘기며 손익분기점(약 80%)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치료 기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 오히려 치료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8주까지는 치료해도 된다'는 신호로 작용해 치료 기간이 고착화되거나, 행정 절차가 보험사의 조기 합의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생업을 병행하며 치료를 받는 피해자에게 추가 서류 제출이나 심의 절차가 부담으로 작용할 경우, 정당한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보험 사기 차단을 위해 새로운 기간 규제를 도입하기보다, 이미 가동 중인 자동차보험 심사 체계를 정교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현재 진료비 심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문제 사례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등 기존 제도를 통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에서는 치료 '기간'이 아닌 '기능 회복' 중심의 평가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통증 점수 변화뿐 아니라 관절 가동 범위, 일·운전·수면 등 일상 기능 회복 여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할 경우 독립적인 의학적 심사기구를 통해 장기 치료 필요성을 판단하자는 제안이다. 허연 전문의는 "의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기능"이라며 "통증이 일부 남아 있더라도 사고 전과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있다면 치료 목표는 상당 부분 달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본부장도 "기능 중심 평가를 표준화하고 독립적인 의학적 심사 체계를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험업 감독 업무 시행 세칙 개정안을 예고했다. 상해등급 12~14등급에 해당하는 경상 환자의 90% 이상이 사고 후 8주 이내 치료를 마쳤다는 통계를 근거로, 불필요하게 장기화된 치료와 보험금 누수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8주 룰은 오는 3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보험업계는 과잉 진료와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행정 기준과 의학적 회복 시점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상', 가볍다는 뜻 아냐… 보이지 않는 손상의 문제
교통사고에서 흔히 쓰이는 '경상 환자'라는 표현은 의학 용어라기보다 행정적 분류에 가깝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은 상해를 1급부터 14급까지 나누며, 이 중 12~14급을 통상 경상으로 분류한다. 타박상, 염좌, 찰과상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경상'이 곧 '금방 낫는 가벼운 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염좌나 연부조직 손상은 엑스레이나 MRI(자기공명영상) 같은 영상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통증이나 운동 제한처럼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증상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신경외과 허연 전문의는 "영상 검사는 구조적 이상을 확인하는 도구일 뿐, 근막의 미세 손상이나 신경 과민화까지 모두 포착하지는 못한다"며 "영상은 정상인데 통증이 수주 이상 지속되는 사례는 임상에서 흔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통사고 이후 흔히 발생하는 편타 손상은 대표적인 예다. 영상 소견이 정상이어도 심한 통증과 신경 기능 이상이 수개월 지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하필 '8주'인가… 의학적 회복과 행정 기준의 간극
의학적으로 손상 회복은 사고 직후의 급성 염증기와 이후 조직 재생·기능 회복기를 거친다. 일반적으로 일상생활 복귀까지는 6~8주가 소요되지만, 손상의 양상에 따라 회복 속도에는 개인차가 크다. 허연 전문의는 "단순 염좌의 경우 3~4주 치료로 일상 복귀가 가능하지만, 연부 조직이 완전히 안정화되기까지는 최대 12주까지 관찰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8주는 의학적 회복의 분기점이라기보다, 아급성기의 마지노선에 가까운 시점"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90%가 8주 이내 치료 종료'라는 국토교통부의 통계 역시 의학적 기준이라기보다 보험·행정 데이터다. 의료계에서는 '많이 끝난 시점'과 '회복이 충분히 이뤄진 시점'은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특별시 서남병원 장영수 공공의료본부장(정형외과 전문의)은 "8주는 참고 기준일 수는 있지만, 환자별 회복 경과와 기능 회복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기간만으로 치료 종료를 판단하는 것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나이롱 환자' 논란과 한방치료… 통증 평가의 사각지대
8주 룰 논의의 배경에는 이른바 '나이롱 환자'를 걸러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보험업계는 경미한 접촉 사고 이후에도 치료가 수개월간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논쟁의 핵심이 환자의 진정성보다는 통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의 부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증은 영상이나 수치로 명확히 확인하기 어려워 의학적으로도 회색지대가 넓은 증상이다. 장영수 본부장은 "통증 만성화는 염증, 근경직, 중추성 감작, 수면 장애, 사고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과정"이라며 "조직이 회복된 뒤에도 통증이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특성은 8주를 초과한 환자들의 치료 양상에서도 드러난다. 대형 손해보험사 4곳 통계에 따르면 8주 초과 경상 환자의 87.2%가 한방병원 치료를 받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과잉 진료의 증거라기보다, 통증 중심 질환을 다룰 제도적 평가 체계가 부재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의계는 '경상'이라는 행정 분류가 실제 손상 양상과 회복 과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대한한의사협회 김석희 홍보이사는 "상해 12~14급에는 단순 염좌뿐 아니라 신경 손상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포함된다"며 "편타 손상처럼 영상 이상 없이 통증과 기능 장애가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침 치료나 추나요법 등 한의치료는 근골격계 손상과 급·만성 통증 관리에 활용돼 왔고, 8주 초과 환자의 한의과 선택은 환자 경험과 치료 만족도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손해율 관리와 치료권 보호 사이… 대안은 '기간'이 아닌 '기능'
보험업계가 8주 룰 도입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자동차보험 손해율 악화가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형 손해보험사들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96%를 넘기며 손익분기점(약 80%)을 크게 웃돌았다. 반면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치료 기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 오히려 치료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8주까지는 치료해도 된다'는 신호로 작용해 치료 기간이 고착화되거나, 행정 절차가 보험사의 조기 합의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생업을 병행하며 치료를 받는 피해자에게 추가 서류 제출이나 심의 절차가 부담으로 작용할 경우, 정당한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보험 사기 차단을 위해 새로운 기간 규제를 도입하기보다, 이미 가동 중인 자동차보험 심사 체계를 정교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현재 진료비 심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문제 사례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등 기존 제도를 통해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료계에서는 치료 '기간'이 아닌 '기능 회복' 중심의 평가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통증 점수 변화뿐 아니라 관절 가동 범위, 일·운전·수면 등 일상 기능 회복 여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할 경우 독립적인 의학적 심사기구를 통해 장기 치료 필요성을 판단하자는 제안이다. 허연 전문의는 "의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준은 기능"이라며 "통증이 일부 남아 있더라도 사고 전과 다름없이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있다면 치료 목표는 상당 부분 달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영수 본부장도 "기능 중심 평가를 표준화하고 독립적인 의학적 심사 체계를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