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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전쟁을 끝내겠다”는 미국 보건수장의 선언에 전문가들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사진=ABC
“단백질 전쟁을 끝내겠다”는 미국 보건수장의 선언에 전문가들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지난 1월 7일(현지시각)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2025~2030 미국인을 위한 식단 지침’을 발표하며 “오늘부로 식탁 위의 거짓말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단백질과 건강한 지방이 필수 영양소임에도 이전 식이 지침에서 잘못된 권고로 섭취가 억제됐다고 주장했다. 새 지침은 기존의 저지방 유제품과 살코기 중심 권고에서 벗어나 전지 우유와 붉은 고기의 비중을 확대하고 지방 섭취 제한을 완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개편은 트럼프 진영이 내세운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HA)’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영양학계의 생각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단백질에 대한 ‘전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미국인은 이미 단백질 필요량을 충족하거나, 초과하는 수준을 섭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4일(현지시각) 외신 ‘USA TODAY’는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지침을 분석했다.

미국 뉴욕대 영양학·식품학·공중보건학 명예교수이자 전 보건복지부 선임 영양 정책 자문관인 매리언 네슬레는 “단백질은 이전 식단 지침에서 결코 부정적으로 간주된 적이 없다”며 “과거 지침은 살코기와 저지방 유제품을 권장했지만, 새 지침은 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식품 섭취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붉은 고기와 포화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심혈관 질환과 일부 암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했다. 내분비학전문의 프리야 자이싱하니 박사 역시 “단백질은 지나치면 좋은 영양소가 아니다”며 “단백질 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폐물을 처리하기 위해 신장에 부담이 커질 수 있고, 특히 만성 신장 질환 환자의 경우 기능 저하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 사회에서는 이미 ‘고단백 열풍’이 확산한 상태다. 스타벅스는 지난 9월 단백질 콜드폼 음료를 출시했고, 치폴레는 단백질 32g이 포함된 신메뉴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식품업계 전반이 단백질 함량을 경쟁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단백질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섭취를 장려하는 정책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과학의 영역이던 식단이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네슬레는 새 식단 지침을 “좌우 논쟁의 문제이자 바이든 행정부를 명확히 거부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지방 유제품을 학교 급식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건강한 아이들을 위한 전지우유 법안’에 서명하며 새 지침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침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 일부가 미국 소고기협회와 낙농 단체 등과 연관돼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해관계 충돌 가능성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육류 소비를 둘러싼 논쟁 뒤에는 미국 특유의 역사와 문화도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뉴욕대 식품학 교수이자 역사학자인 에이미 벤틀리는 “그동안 미국에서 고기는 뒷마당 그릴로 스테이크와 햄버거를 굽는, 풍족한 미국인의 삶의 이미지를 상징해 왔다”며 “이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미국 문화에 대한 공격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역사적으로 육류가 남성성과 연결돼 온 반면 채소는 여성성과 연관 지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근육질 몸매와 고단백 식단을 강조하는, 이른바 ‘헬스 브로(Gym Bros)’ 문화 역시 이러한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건강을 위한 식단이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논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우려 섞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