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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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공
최근 흥미롭게 본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되나요?'. 통역사인 남자 주인공은 표현하지 못해 속으로만 담아두던 짝사랑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명 배우인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배신하고 양다리를 걸친 남자 친구를 찾아내기 위해 일본 가마쿠라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에 맞게 우여곡절을 겪은 두 사람은 이후 연모의 감정을 스멀스멀 갖게 된다.

이 장면, 뭔가 낯설지 않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연인이 되는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안정적인 관계가 확보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만난 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걸까?

심리학에서 설명하는 ‘흔들다리 효과’가 한 가지 답이 될 수 있다. 흔들다리 효과는 위험하다고 느낄 수 있는 흔들다리를 건널 때 만난 사람을 튼튼하고 안전한 다리를 건널 때 만난 사람에 비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오, 저 사람 매력적이야’라고 먼저 정서를 느낀 후 심장이 빨라지고 땀이 나는 것과 같은 신체 반응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일단 대상을 보면 신체 반응이 먼저 발생하고, 주변 맥락들을 토대로 그 신체 반응의 원인을 고려하고 파악해 정서를 느낀다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심장이 뛰고, 이후에 머릿속에서 ‘왜 심장이 뛰는지’를 파악해서 ‘아, 이 사람 좋아’ 또는 ‘아, 이 사람 무서워’와 같은 정서로 확정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체 반응 변화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귀인(attribution)’이라 하는데, 흔들다리 효과는 이 귀인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서 발생하는 것이다. 흔들다리는 위험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아무리 괜찮은 척해도 심장이 뛰기 마련이다. 이때 이 심장 박동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귀인, 즉 흔들다리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이성 때문에 심장이 뛰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오(誤)귀인’이 발생한 결과, 그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지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경험하는 것 차제가 도파민을 분출시켜, 심장 박동을 증가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갑자기 마주친 이성은 이 심장 박동의 귀인을 오염시켜서, 그 사람의 매력을 과대평가할 수 있다.

'익명성 효과'와 '낯선 사람 효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익명성 효과란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는다고 인식되는 상황이 되면, 사회적 책임과 평가에 대한 압박이 감소하면서 자기 통제와 규범적 억제가 약화되는 경향을 말한다. 여행을 가면 평상시에는 절대 입을 것 같지 않던 옷을 입고, 의외의 행동을 하는 것이 익명성 효과의 예라 할 수 있다.


낯선 사람 효과는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리라 판단되는 상대에게 자신에 대해 더 솔직하게 털어놓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의외로 택시 기사에게 삶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낮고, 또 본인에 대한 사회적 평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인 낮다고 판단되면 자신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었을 때의 위험성 역시 낮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만날 확률이 낮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도 낯선 사람 효과가 작동할 수밖에.

여기에 '희소성 효과'가 마지막 조미료를 뿌린다. 희소성 효과란 어떤 대상·기회가 제한돼 있거나 곧 사라질 것이라고 인식할 때, 그 대상의 주관적 가치와 매력, 그리고 그것을 획득하려는 동기가 과도하게 증가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평상시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도 갑자기 홈쇼핑에서 ‘서두르세요,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더 사고 싶고, ‘올 겨울 마지막 세일’이라는 광고 문구를 봤을 때 뭔가 안 사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것도 희소성의 효과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러니 희소성이 높은 대상일 수밖에 없고, 그 가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

이 세 가지 효과가 만나면, 여행지에서 마주한 사람은 운명처럼 만난 나의 이상형이 된다. 익명성으로 자기 통제력이 낮아지니, 평상시 같으면 '조건이네, 상황이네' 고려하며 다가오는 이성에 대해서 철벽을 치던 사람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낯선 사람 효과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니 뭔가 더 진실 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 같다. 여기에 여행이 끝나면 다시 보지 못할 희소성은 상대에 대한 매력을 솟구치게 한다.

여기에 유사성의 효과가 은근슬쩍 작동할 수 있는데, 유사성의 효과란 서로 유사할수록 매력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의외로 유사성이 높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으로 갈 것이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로 가지 않겠는가? 여행지를 선택하고 그 일정을 짜는 과정에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은 나와 유사성이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속지말자!’로 가야 할 것 같지만, 최근 '연애도 사치'라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연애할 여유조차도 없는 싱글들에게, 그래도 여행지에서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끌리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나쁘다고 말하는 인정머리 없는 심리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서로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며 끝나는 드라마와 달리, 그 이후에도 사랑의 마음이 삶 속에서 어떻게 유지하는 지가 실전 사랑이라고 했던가. 어디서 어떻게 만나던, 서로 끌렸던 솔직했던 마음은 잘 간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