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항우울제를 복용하던 환자에게서 “조증(혹은 경조증)이 온 것 같아요”라는 말이 나오면, 환자도 가족도 당황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당사자는 “지금 기분이 너무 좋은데, 이게 병이라고요?”라며 이제야 우울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느낌’든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지점이 바로 우울증과 양극성 장애 치료 과정에서 임상가가 가장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난제 중 하나다.
우울 증상이 매우 심하고 환자가 이를 견디기 어려워한다면, 항우울제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만 한다. 다만 일부 환자에서는 항우울제가 기분을 들뜨게 만들면서 조증 또는 경조증을 촉발한다. 조증 전환(manic switch), 즉 약물에 의해 기분 상태가 반대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항우울제가 조증을 얼마나 자주 일으킬까? 위험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단극성 우울증(조증·경조증 없이 우울 삽화만 있는 경우)으로 보였던 환자에서도 치료 중 조증·경조증이 나타날 수 있다. 보고되는 빈도는 연구와 약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3%, 일부 보고에서는 약 5% 내외까지 제시된다. 빈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니 조증은 안 생길 거야”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항우울제 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초기에 특히 수면, 활동량, 말의 속도, 충동성 같은 변화가 생기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안전하다.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던 중 조증·경조증 전환이 확인되면, 진단과 치료 전략은 달라진다. 이런 경우, 해당 환자는 근원적으로는 양극성 장애의 소인을 품고 있었는데, 항우울제가 이를 드러나게 했을 가능성을 우선 고려한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양극성 장애에 준해 치료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우울증이 재발하더라도 항우울제 치료를 단독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기분안정제(리튬, 발프로산, 라모트리진 등) 또는 비정형 항정신병약을 중심으로 재발을 막는 쪽에 치료의 초점이 옮겨간다.
이미 양극성 장애로 진단된 환자가 우울 삽화에서 항우울제를 사용할 경우엔 더 조심해야 한다. 우울이 너무 고통스러워 항우울제를 쓰는 상황이 생길 수는 있지만, 이때는 조증 전환 위험이 단극성 우울증보다 훨씬 높다. 연구에 따라 다르나 대략 수십 퍼센트 이상 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우울증에서 조증으로 전환되면 이후 경과도 안 좋다. 우울과 조증의 재발이 잦아지고 주기가 빨라지는 현상을 주기 가속화(cycle acceleration)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증상이 더 복잡해지고 약물 반응이 떨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다면 진료실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우울증이 좋아진 것’과 조증·경조증 전환을 구분할까? 핵심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졌느냐”가 아니라, 기분 변화의 양상과 경과다. 다음과 같은 특징이 묶음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한다. ▲수면 시간이 확 줄었는데도 피곤을 거의 느끼지 않음 ▲말이 빨라지고 많아지며, 멈추기 어려움 ▲생각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짐 ▲자신감이 과도하게 팽창하거나 과대 사고가 두드러짐 ▲지출과 소비가 늘고, 충동적 투자나 무리한 일을 벌임 ▲그 결과 직장, 가정,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김 등이다. 이런 양상이 관찰된다면 우울증 치료가 잘 되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활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긴 것이 아니라 병적인 조증·경조증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임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혼재성(mixed) 양상이다. 우울감이 남아 있는데도 동시에 짜증, 초조, 수면 감소, 생각의 가속, 충동성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다. 겉으로는 우울이 심해져서 예민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증에 가까운 상태다. 이때 항우울제로만 밀어붙이면 오히려 악화되거나 충동적 행동 위험이 커진다. 또 급속 순환(rapid cycling)처럼 재발 주기가 매우 빠른 환자군에서는 항우울제 사용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은 이렇다. 환자는 “요즘 머리가 맑고 기분이 좋아요. 우울증이 드디어 나았나 봐요.” 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족은 환자가 “잠을 거의 안 자고도 온종일 움직이고, 말이 멈추질 않으며, 씀씀이가 커졌다”고 걱정한다. 환자는 자신이 좋아졌다고 인식하므로, 이럴 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관찰이 치료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울증 치료 중 위와 같은 변화가 생긴다면, 항우울제를 처방한 주치의를 가능한 한 빨리 만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증의 초기 신호로 판단되면, 의료진은 항우울제를 중단하거나 감량하고 기분안정제나 항정신병약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치료를 지체해선 안 된다. ▲망상이나 환청 ▲통제되지 않는 흥분과 공격성 ▲위험 운전과 폭주 ▲며칠째 거의 자지 못하는데도 멈추지 못함 ▲자해 및 타해 위험이 동반되는 경우다. 이때는 외래 예약을 기다리기보다 즉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방문하는 것이 안전하다.
국제양극성장애학회에서 발간된 진료 지침에서는 양극성 우울증에서 SSRI 또는 부프로피온을 기분안정제와 병용하는 선택을 열어두면서도 과거 항우울제 유발 조증 병력이 있거나, 혼재성 양상 또는 급속 순환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사용을 제한하도록 강조한다. 최신 치료 지침들은 “양극성 장애에서 항우울제는 무조건 금지”라는 식의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제한적으로 사용하되 안전장치를 분명히 하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조증 전환의 신호가 보이면 항우울제는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점이 공통된 원칙이다. 특히 I형 양극성 장애에서 기분안정제 없이 항우울제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기다.
항우울제 치료 중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어딘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직감은 무시할 일이 아니다. 우울증의 회복은 보통 서서히, 그리고 잠과 일상의 리듬이 안정되는 방향으로 찾아온다. 조증·경조증 전환은 대개 수면이 줄고도 멀쩡해지면서, 말과 생각이 빨라지고, 충동이 커지며, 주변 사람들이 먼저 변화를 알아차리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차이를 일찍 잡아내는 것이 치료의 성패를 가른다.
우울 증상이 매우 심하고 환자가 이를 견디기 어려워한다면, 항우울제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만 한다. 다만 일부 환자에서는 항우울제가 기분을 들뜨게 만들면서 조증 또는 경조증을 촉발한다. 조증 전환(manic switch), 즉 약물에 의해 기분 상태가 반대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항우울제가 조증을 얼마나 자주 일으킬까? 위험을 과장해서도 안 되지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단극성 우울증(조증·경조증 없이 우울 삽화만 있는 경우)으로 보였던 환자에서도 치료 중 조증·경조증이 나타날 수 있다. 보고되는 빈도는 연구와 약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3%, 일부 보고에서는 약 5% 내외까지 제시된다. 빈도가 높은 편이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니 조증은 안 생길 거야”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항우울제 치료를 시작한 뒤에는 초기에 특히 수면, 활동량, 말의 속도, 충동성 같은 변화가 생기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안전하다.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던 중 조증·경조증 전환이 확인되면, 진단과 치료 전략은 달라진다. 이런 경우, 해당 환자는 근원적으로는 양극성 장애의 소인을 품고 있었는데, 항우울제가 이를 드러나게 했을 가능성을 우선 고려한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양극성 장애에 준해 치료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우울증이 재발하더라도 항우울제 치료를 단독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기분안정제(리튬, 발프로산, 라모트리진 등) 또는 비정형 항정신병약을 중심으로 재발을 막는 쪽에 치료의 초점이 옮겨간다.
이미 양극성 장애로 진단된 환자가 우울 삽화에서 항우울제를 사용할 경우엔 더 조심해야 한다. 우울이 너무 고통스러워 항우울제를 쓰는 상황이 생길 수는 있지만, 이때는 조증 전환 위험이 단극성 우울증보다 훨씬 높다. 연구에 따라 다르나 대략 수십 퍼센트 이상 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우울증에서 조증으로 전환되면 이후 경과도 안 좋다. 우울과 조증의 재발이 잦아지고 주기가 빨라지는 현상을 주기 가속화(cycle acceleration)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증상이 더 복잡해지고 약물 반응이 떨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그렇다면 진료실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우울증이 좋아진 것’과 조증·경조증 전환을 구분할까? 핵심은 단순히 “기분이 좋아졌느냐”가 아니라, 기분 변화의 양상과 경과다. 다음과 같은 특징이 묶음으로 나타나는지 확인한다. ▲수면 시간이 확 줄었는데도 피곤을 거의 느끼지 않음 ▲말이 빨라지고 많아지며, 멈추기 어려움 ▲생각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짐 ▲자신감이 과도하게 팽창하거나 과대 사고가 두드러짐 ▲지출과 소비가 늘고, 충동적 투자나 무리한 일을 벌임 ▲그 결과 직장, 가정,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김 등이다. 이런 양상이 관찰된다면 우울증 치료가 잘 되어서 기분이 좋아지고, 활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생긴 것이 아니라 병적인 조증·경조증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임상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혼재성(mixed) 양상이다. 우울감이 남아 있는데도 동시에 짜증, 초조, 수면 감소, 생각의 가속, 충동성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다. 겉으로는 우울이 심해져서 예민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증에 가까운 상태다. 이때 항우울제로만 밀어붙이면 오히려 악화되거나 충동적 행동 위험이 커진다. 또 급속 순환(rapid cycling)처럼 재발 주기가 매우 빠른 환자군에서는 항우울제 사용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현장에서 자주 보는 장면은 이렇다. 환자는 “요즘 머리가 맑고 기분이 좋아요. 우울증이 드디어 나았나 봐요.” 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족은 환자가 “잠을 거의 안 자고도 온종일 움직이고, 말이 멈추질 않으며, 씀씀이가 커졌다”고 걱정한다. 환자는 자신이 좋아졌다고 인식하므로, 이럴 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관찰이 치료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우울증 치료 중 위와 같은 변화가 생긴다면, 항우울제를 처방한 주치의를 가능한 한 빨리 만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조증의 초기 신호로 판단되면, 의료진은 항우울제를 중단하거나 감량하고 기분안정제나 항정신병약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방향을 바꾼다. 특히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치료를 지체해선 안 된다. ▲망상이나 환청 ▲통제되지 않는 흥분과 공격성 ▲위험 운전과 폭주 ▲며칠째 거의 자지 못하는데도 멈추지 못함 ▲자해 및 타해 위험이 동반되는 경우다. 이때는 외래 예약을 기다리기보다 즉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방문하는 것이 안전하다.
국제양극성장애학회에서 발간된 진료 지침에서는 양극성 우울증에서 SSRI 또는 부프로피온을 기분안정제와 병용하는 선택을 열어두면서도 과거 항우울제 유발 조증 병력이 있거나, 혼재성 양상 또는 급속 순환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사용을 제한하도록 강조한다. 최신 치료 지침들은 “양극성 장애에서 항우울제는 무조건 금지”라는 식의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제한적으로 사용하되 안전장치를 분명히 하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조증 전환의 신호가 보이면 항우울제는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점이 공통된 원칙이다. 특히 I형 양극성 장애에서 기분안정제 없이 항우울제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은 금기다.
항우울제 치료 중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어딘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 직감은 무시할 일이 아니다. 우울증의 회복은 보통 서서히, 그리고 잠과 일상의 리듬이 안정되는 방향으로 찾아온다. 조증·경조증 전환은 대개 수면이 줄고도 멀쩡해지면서, 말과 생각이 빨라지고, 충동이 커지며, 주변 사람들이 먼저 변화를 알아차리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차이를 일찍 잡아내는 것이 치료의 성패를 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