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준철의 약·잘·알(약 잘 알고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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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겨울에는 낙상(落傷)에 따른 골절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 낙상으로 입원하는 환자의 절반가량이 겨울철 환자(약 51.7%)며, 65세 이상 노인의 낙상 입원율은 다른 계절보다 10% 이상 높다.

낙상의 원인은 다리 힘이 풀리거나 바닥이 미끄럽기 때문일 수 있지만, 매일 챙겨 먹는 ‘약’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만성질환으로 인해 복용하는 약의 개수가 늘어나는데, 약물 자체가 일시적인 부작용으로 ▲진정 ▲어지러움 ▲체위성 교란 ▲자세·균형 교란 ▲인지 저하 ▲기립성 저혈압 ▲뇌순환 부전 등을 일으켜 넘어질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또한 노화로 인해 간과 신장의 대사 능력이 떨어지면서, 같은 약을 먹어도 젊은 사람보다 체내에 약물이 더 오래 머물고 부작용이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매일 먹는 약이 다섯 가지가 넘을 정도로 많다면 낙상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아래 약물들을 복용 중이라면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트라마돌 성분 등의 ‘마약류 진통제’다. 이 약은 관절염이나 척추 질환으로 인한 만성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한다. 통증을 줄여주는 강력한 효과가 있지만,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졸리고 몽롱하게 하거나, 느린 반응, 균형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약을 처음 복용하거나 용량을 늘렸을 때 균형 감각이 무뎌져 걷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치매, 우울증 등에 쓰는 ‘항정신병약’이다. 치매 환자의 행동 조절이나 노년기 우울증 치료를 위해 처방되는 리스페리돈, 쿠에티아핀, 올란자핀 등의 항정신병약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해 초조, 안절부절, 분노 등을 줄여주지만, 부작용으로 진정, 느린 반사, 균형 상실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혈관의 알파수용체 차단 효과가 약간 있어서 기립성 저혈압을 일으켜 낙상으로 이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다음은 불안감이나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복용하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신경안정제’다. 이 약은 뇌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근육을 이완시키는 작용을 한다. 졸음, 느린 반응 시간, 신체 균형 장애를 유발 할 수 있고, 특히 장기간 복용하는 사람일수록 주의가 필요하다. 하체 근력이 약한 노인의 경우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면 걸을 때 다리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며 쉽게 넘어질 수 있다.

불면증 치료를 위한 ‘수면제’ 또한 낙상의 주범 중 하나다. 수면제의 약효가 아침까지 지속되면 몽롱한 상태가 수면제를 복용한 다음날 오전까지 나타날 수 있다. 잠에서 깼다고 생각하고 침대에서 내려오지만, 뇌와 몸은 아직 덜 깬 상태라 발을 헛디디기 십상이다. 약 기운에 취해 밤중에 화장실을 가려다 비몽사몽간에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약물은 고혈압이나 심부전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이뇨제’다. 이뇨제는 소변량을 늘려 혈압을 낮추는데, 이 과정에서 체내 수분이 빠져나가면 혈압이 떨어지는 저혈압이 올 수 있다. 특히 수분섭취가 부족한 탈수 상태의 노인에게 기립성 저혈압이 생길 수 있고, 이뇨제 자체가 저칼륨혈증, 저나트륨혈증 같은 전해질 불균형을 일으키기도 해서 기립성 저혈압 위험이 증가한다.


평소 이들 약을 비롯해 다섯 가지 이상 약물을 매일 복용 중인 노인이라면, 의사나 약사에게 현재 복용 중인 약물 목록을 점검받고, 낙상 위험도가 높은 약물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질병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낙상 위험이 높은 약물을 계속 먹어야 한다면 낙상으로 인한 골절을 예방하기 위해 뼈에 좋은 영양제를 섭취하는 것도 방법인다.

50세 이상 여성과 70세 이상 남성의 칼슘 섭취 권장량은 하루 1000~1200mg, 골다공증이나 골감소증이 있다면 1000~1500mg이다. 노년층의 경우 위산 분비가 줄어들어 칼슘 흡수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되는 탄산칼슘보다는 흡수가 용이하고 위장 장애가 적은 ‘산호 칼슘’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한 한 번에 고용량을 섭취하기보다 아침, 저녁으로 나누어 복용하는 것이 흡수율을 높이는 비결이다.

비타민D도 함께 섭취해야 한다. 칼슘을 많이 먹어도 비타민D가 없으면 체내에 흡수되지 않고 배설될 가능성이 높다. 비타민D 자체만으로도 뼈를 튼튼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혈중 비타민D 농도를 적정 수준(30ng/mL 이상)으로 유지해야 근력 유지에도 도움을 줘서 낙상 위험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루 1000~2000IU씩 꾸준한 섭취를 권장한다.

최근에는 비타민K2와 마그네슘도 주목받고 있다. 비타민K2는 칼슘이 혈관에 쌓여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것을 막고, 칼슘을 뼈로 이동시키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마그네슘 역시 뼈의 구성 성분으로, 근육의 이완을 통해 낙상 예방에 도움을 준다. 칼슘만 단독으로 섭취하기보다 마그네슘과 2:1 비율로 섭취하고, 비타민K2를 곁들이는 것이 현대적인 뼈 건강 관리법이다.

뼈를 보호하는 1차 방어막은 근육이다. 근육량이 줄어드는 ‘근감소증’은 낙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끼니마다 계란, 두부, 살코기 등 단백질을 챙겨 먹고, 소화가 어렵다면 유청 단백질 같은 보충제를 활용해서라도 체중 1kg당 1~1.2g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단백질 보충제가 소화에 부담이 된다면 ‘류신’이라는 보충제나 ‘BCAA(발린·이소류신·류신)’ 보충제를 섭취해도 좋다. 이들 보충제는 근육 생성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노년기 낙상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고관절 골절 등으로 이어질 경우 장기간 와병 생활을 하게 되고, 이는 폐렴이나 욕창 같은 합병증을 유발해 생명까지 위협한다. 때문에 낙상을 ‘노년의 암살자’라 부르기도 한다.

약물 점검을 통한 ‘비움’과 현명한 영양 섭취를 통한 ‘채움’의 균형이 맞춰질 때 우리는 낙상이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튼튼한 뼈와 맑은 정신, 그것이 100세 시대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두 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