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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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세상은 참 빠르다. 빠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현대인들은 효율적으로 행동한다. 말을 할 때도 과도하게 줄임말을 쓴다. 드라마나 영화도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보다는 유튜브에서 요약본으로 즐긴다. 공부를 할 때도 교과서를 사서 읽기보다는 PPT 형태의 강의 자료를 이용하며, 동영상 강의도 2배속으로 본다. 가히 ‘효율의 시대’라 할 만하다.

진로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쓸데없이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을 보기만 할 뿐, 섣부르게 달려들지 않는다. 과거 조금만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일단 질러보고 후회하던 불나방 같은 청춘을 보냈던 필자와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양보다 질’이라고, 무턱대고 하기보다는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한 결정을 내리고 시작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양보다 질이라는 주장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도자기 실험 일화가 있다. 학생들에게 도자기를 만들도록 했는데, 한 집단에는 무조건 많이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양 집단), 다른 집단에게는 최상의 작품 하나만을 만들도록(질 집단) 했다. 그랬더니, 역설적으로 정말 좋은 작품은 양 집단에서 나왔다고 한다. 질 집단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어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계획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던 반면, 양 집단의 사람들은 초반에 완성도 높지 않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면서 기술이 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생겨나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왔다는 것. 이 일화는 제프 벤 베이와 테드 올랜드의 저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Art & Fear)>에 소개된 것으로, 실제 수행된 연구는 아니지만 창작 및 학습에서 결국 양(반복적인 실제 행위)이 질을 높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수행된 연구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시몬튼은 베토벤, 피카소 등 714명의 유명 예술가의 생애를 추적하며 작품 수와 걸작 간의 관계를 살펴봤는데, 걸작은 주로 다작의 시기에 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딱’하면 ‘척’하고 걸작을 만들어 낼 것 같은 예술 천재들도 많이 만들어야 걸작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의미다.

도자기 일화와 매우 유사한 연구들이 더 있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라고 한 후 각 참가자들이 제출한 아이디어의 수와 그 중 수준 높은 아이디어의 비율을 확인했더니, 많은 아이디어를 제출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질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뇌를 살펴보니, 많은 양을 만들어 낼 때 사용되는 뇌의 영역과 질을 높이기 위해 작동하는 뇌의 영역이 딱히 구분되지 않았다.


이후 다른 연구에서는 아이디어를 많이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엉뚱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생성하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와 생성된 생각을 논리적으로 다듬고 연결시키는 ‘경험적 조절 네트워크’ 사이의 연결성이 더 강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시몬튼은 주어진 기간 내에 생산된 전체 작품 수가 많을수록 그 중 창의적 결과물이 나올 기대값도 선형적으로 증가한다는 ‘동일확률 규칙’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왜 질보다 양일까? 질을 우선시하게 되면, 결과물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 시야를 좁게 만들고 창의적 사고를 억제할 수 있다. 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양초, 성냥, 압정이 든 상자를 주고 촛농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벽에 양초를 고정하는 방법을 생각하라고 했다. 한 집단에게는 가장 빨리 해결한 상위 25%에게 많은 보상을 주는 경쟁상황을, 다른 집단에게는 아무런 부담 없는 테스트라고 말해 평가와 상관없는 자유로운 상황을 만들었다. 결과는 경쟁상황에서 수행이 더 좋지 않았다. 다른 연구에서도 골프 선수들에게 퍼팅을 할 때 팔 동작과 각도에 집중해서 완벽한 퍼팅을 하라고 지시했을 때 수행이 더 좋지 않았다.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좋은 결과를 가로막는 방해물로 작동한 셈이다.

반면, 양으로 승부하는 방식은 무식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체화(體化)된 인지’의 개념으로 보면 훨씬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체화된 인지는 몸의 감각과 움직임이 사고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면, 현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때, 손을 움직이면 손가락이 알아서 비밀번호의 패턴대로 움직이고 이 과정에서 비밀번호가 생각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텐데, 이렇듯 우리의 사고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전체에 퍼져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체화된 인지다. 이를 앞에서 언급한 도자기 일화에 적용해 보면, 양 집단에서는 흙을 만지다 우연히 만들어낸 형태가 뇌에 새로운 영감을 주고, 이것이 다시 손의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순환적 창의성이 발생하는 반면, 질 집단에서는 머릿속으로만 완벽한 형태를 구상하는 데 한정돼 창의력이 발휘될 공간이 더 좁아진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이 고도화되면서, 무턱대고 양을 늘리는 방식은 구태로 간주되는 것 같다.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더 옳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연구 결과들은 의외로 양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영어, 수학 학원 선생님이 이해하기 쉬운 최고의 방식으로 알려줘도, 결국 영어 단어를 많이 외우고, 수학 문제를 많이 묵묵하게 풀어가는 단순 무식한 방법이 머릿속에 흔적을 많이 남겨, 내 지식, 내 능력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가끔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자. 양을 채우는 당신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