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민의 인간관계 설명서]
얼마 전 본 영상인데, 골든리트리버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고 키우는 장면이었다. 새끼들은 엄마 리트리버 곁에 찰싹 붙어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서로 뒤엉켜 장난치다 넘어지기도 한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오리 새끼들이 고양이와 함께 몸을 맞댄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종이 달라도, 말이 없어도, 그 장면은 이상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댓글도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고들 자신들의 느낌을 적어두었다.
우리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거나, 우리가 어릴 적 부모님의 품에 안겨 있을 때를 떠올려보면 괴로웠던 마음이 조용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안정감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는 감각만으로도 깊은 상처를 입고,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에서 혼자 소외된다는 느낌 때문에 결국 퇴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 곁에 있을 때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그 온기가 사라질 때 허전함을 넘어 슬픔과 괴로움을 느낀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 인간 역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다만 우리는 복잡한 사회 안에서 훨씬 더 섬세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한다.
왜 우리는 관계에서 가장 크게 흔들릴까
인간관계를 오래 다루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인간관계인가요?” 하지만 오히려 되묻고 싶다. 살면서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인간관계만큼 우리를 크게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이만큼 우리를 깊이 괴롭히는 것이 과연 또 있을까.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관계가 모든 행복의 근원이자 동시에 모든 고민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원만한 관계 속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관계가 틀어질 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경험한다.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유난히 추운 겨울, 난로를 켜 두면 참 따뜻하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지면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자칫 데일 수도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멀면 상대의 온기를 느끼기 어렵고, 너무 가까우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절한 거리’다. 이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이며, 이 균형을 아는 사람이 인간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거리를 만드는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이 ‘적절한 거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첫 번째는 거절하기다. 누군가가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 그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마지못해 들어준 부탁,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삼킨 마음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에서는 점차 상대를 멀어지게 만든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거리 조절은 상대가 아니라 우선은 내가 해야 할 몫이다.
두 번째는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오지랖은 원래 한복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이것이 지나치게 넓으면 옷의 본래 모습을 가리게 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삶에 참견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설명해도 상대에게는 간섭과 훈계로 느껴질 뿐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지?”라는 감정은, 상대가 원한 거리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생긴다. 관계는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이것 역시 관계를 밀어내는 행동이다.
세 번째는, 기대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에서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한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길 바라고, 내가 해 준 만큼 돌려주길 바란다. 하지만 기대는 쉽게 실망으로 바뀐다. 기대가 클수록 관계의 거리는 오히려 더 어긋난다.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은 기대를 완전히 버리기보다는,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한다. 이 사람은 여기까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대를 낮춘다는 것은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내가 기대를 줄이는 만큼, 상대는 숨 쉴 공간을 얻고 관계는 다시 편안해진다.
모든 관계가 깊을 필요는 없다
관계의 기본은 대화다. 그리고 대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통된 관심사가 필요하다. 아무리 친했던 사이도 시간이 지나 관심사가 달라지면 어색해진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취업, 결혼, 육아의 길로 나아갈 때, 그 흐름을 함께 나누지 못하면 대화가 맞지 않아 관계가 자연스레 정리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단순한 열등감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고립이다. 또한,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어떤 관계는 인사만 나누는 거리에서 가장 편안하고, 어떤 관계는 일정한 역할 안에서만 유지될 때 안정적이다. 모든 관계를 ‘가깝게’ 만들려는 노력은 오히려 관계를 소진시킨다.
관계의 성숙함은 친밀함의 크기가 아니라, 각 관계에 맞는 거리를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많은 독자분이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며, 웃는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거나, 우리가 어릴 적 부모님의 품에 안겨 있을 때를 떠올려보면 괴로웠던 마음이 조용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안정감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는 감각만으로도 깊은 상처를 입고,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에서 혼자 소외된다는 느낌 때문에 결국 퇴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 곁에 있을 때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그 온기가 사라질 때 허전함을 넘어 슬픔과 괴로움을 느낀다. 모든 동물이 그렇듯, 인간 역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다만 우리는 복잡한 사회 안에서 훨씬 더 섬세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한다.
왜 우리는 관계에서 가장 크게 흔들릴까
인간관계를 오래 다루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인간관계인가요?” 하지만 오히려 되묻고 싶다. 살면서 인간관계만큼 중요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인간관계만큼 우리를 크게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또 이만큼 우리를 깊이 괴롭히는 것이 과연 또 있을까.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관계가 모든 행복의 근원이자 동시에 모든 고민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원만한 관계 속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관계가 틀어질 때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경험한다.
인간관계는 난로처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유난히 추운 겨울, 난로를 켜 두면 참 따뜻하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지면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자칫 데일 수도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멀면 상대의 온기를 느끼기 어렵고, 너무 가까우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절한 거리’다. 이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이며, 이 균형을 아는 사람이 인간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적절한 거리를 만드는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이 ‘적절한 거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첫 번째는 거절하기다. 누군가가 내게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 그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마지못해 들어준 부탁,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삼킨 마음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에서는 점차 상대를 멀어지게 만든다.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거리 조절은 상대가 아니라 우선은 내가 해야 할 몫이다.
두 번째는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오지랖은 원래 한복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이것이 지나치게 넓으면 옷의 본래 모습을 가리게 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삶에 참견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설명해도 상대에게는 간섭과 훈계로 느껴질 뿐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지?”라는 감정은, 상대가 원한 거리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생긴다. 관계는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이것 역시 관계를 밀어내는 행동이다.
세 번째는, 기대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에서 상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길 기대한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해주길 바라고, 내가 해 준 만큼 돌려주길 바란다. 하지만 기대는 쉽게 실망으로 바뀐다. 기대가 클수록 관계의 거리는 오히려 더 어긋난다.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은 기대를 완전히 버리기보다는,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한다. 이 사람은 여기까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대를 낮춘다는 것은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내가 기대를 줄이는 만큼, 상대는 숨 쉴 공간을 얻고 관계는 다시 편안해진다.
모든 관계가 깊을 필요는 없다
관계의 기본은 대화다. 그리고 대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통된 관심사가 필요하다. 아무리 친했던 사이도 시간이 지나 관심사가 달라지면 어색해진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취업, 결혼, 육아의 길로 나아갈 때, 그 흐름을 함께 나누지 못하면 대화가 맞지 않아 관계가 자연스레 정리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단순한 열등감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대화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고립이다. 또한,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어떤 관계는 인사만 나누는 거리에서 가장 편안하고, 어떤 관계는 일정한 역할 안에서만 유지될 때 안정적이다. 모든 관계를 ‘가깝게’ 만들려는 노력은 오히려 관계를 소진시킨다.
관계의 성숙함은 친밀함의 크기가 아니라, 각 관계에 맞는 거리를 받아들이는 데서 나온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많은 독자분이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며, 웃는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