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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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화씨의 국가대표 프로필 사진/사진=정숙화씨 제공
정숙화(36)씨는 다섯 번의 도전 끝에 데플림픽(Deaflympics)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데플림픽은 ‘청각장애인의 올림픽’으로, 정씨는 2009년 첫 데플림픽에 출전한 이후 두 번의 동메달과 한 번의 은메달의 아쉬움, 부상까지 겪으며 16년을 버텨왔다. 길고 긴 도전 끝, 30대 중반의 나이에 다섯 번째 데플림픽, ‘2025 도쿄 데플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시 4년 뒤를 바라보며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정숙화씨를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4전 5기 끝에 첫 금메달을 땄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진짜 열심히 했나?’라는 생각이 먼저 스쳤다. 그리고 바로 엄마 얼굴이, 우시는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내가 기분이 너무 좋다기보다는 ‘내가 이걸 꼭 보여드려야 했구나’라는 생각이 더 컸다. 여섯 남매를 정말 힘들게 키우셨는데 그 고생에 대한 답을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항상 있었고, 금메달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크고 기뻤다. 이 자리를 빌려 어머니와 육 남매 모두 사랑하고,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유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부터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은사님이신 황정섭 체육 선생님께서 ‘유도 한 번 해볼래’ 하고 권유하셨다. 사실 큰 동기, 이유 없이 그냥 시작했다. 유도를 하다 보니 재미있었고, 몸에 잘 맞는 느낌이 들었다. 연습 경기를 해보고, 경험 삼아 실전에 나가본 경험은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제대로 대회를 나갔고, 그때부터 선수의 길로 가게 됐다.”

-2009년 첫 데플림픽 출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2009년 대만 타이베이 데플림픽이 첫 출전이었다. 훈련 기간도 짧았고, 성적에 대한 기대나 부담도 없었다. 그냥 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결과가 동메달이라 더 좋았던 것 같다. 다만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실습팀도 없었고, 개인 훈련 비용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하면서 생활비 문제도 같이 고민해야 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정말 힘들었다.”


-연속된 도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17년 국가대표 훈련 중에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부상도 힘들었지만, 심리적 부담이 정말 컸다. 그때는 내가 실업팀에서 혼자 농인이었기 때문에 더 외로웠던 것 같다. 오랫동안 완전히 회복도 하지 못했고, 극복하고 나아가는 데 있어 굉장히 오래 걸렸다. 누군가와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다면, 회복도 더 빨랐을 것 같다. 단절된 환경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농인 선수로서 가장 크게 느낀 어려움과 그로 인한 마음가짐은 어땠나?
“지금까지 훈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분위기다. 마음이 편해야 훈련이 잘 되는거지, 억지로 싫은 분위기에서는 몸도 마음도 따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감독과 선수 사이 분위기,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지도자분들이 수어를 모르다 보니 훈련 과정에서 소통이 너무 힘들었다. 안 들리는 것 자체보다, 전달되는 말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게 더 힘들었다. 훈련 중에도 ‘빨리 해’, ‘열심히 해’ 같은 말만 들을 수 있었고, 그 이상은 알 수가 없었다. 소통이 안 되니 훈련도 마음도 같이 힘들어졌다.

경기에서는 그런 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급박한 상황에서 몸으로 동작과 상황을 설명해주시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내가 해석해야 했고 결국 경기 중 상황도 내가 다 판단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경기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안 그래도 실수 하나 하면 4년 동안 준비한 기회가 날아간다는 생각, 부담이 있는 상태였는데 악조건이 더해지니 경기장에 들어가면 시야가 더 좁아졌고, 풀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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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 올라선 정숙화씨/사진=유튜브 'TOKYO 2025 DEAFLYMPICS' 채널 캡쳐
-금메달이라는 성과를 낸 이번 도쿄 대회는 어땠나?
“이번 대회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처음으로 ‘말하지 않아도 정확히 전달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국가대표팀 원유신 감독님께서 꾸준히 기술 지도와 연습 기회를, 정수덕 코치님께서 부족한 점들을 보완해 추가로 지도해 주셨기 때문에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정수덕 코치님은 원래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합류했다가, 임시로 코치 보직을 맡으셨다. 정수덕 코치님과 함께한 기간은 3~4개월 정도로 짧았지만, 소통도 많았고, 정말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정수덕 코치의 소통은 이전 지도자들과 어떤 점에서 달랐나?
“수어를 완벽하게 하시는 건 아니었지만, 이에 관심이 있으셨고, ‘할 수 있다’, ‘전진하면 된다’, ‘그 기술 한 번만 더 해보자’ 같은 말들은 수화로 정확하게 전달해 주셨다. 처음으로 ‘이게 소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주셨고, 궁금한 걸 계속 물어보셨다. 처음에 수화를 완벽하게 모르더라도, 태도를 보면 그 분이 어떠한 사람인지 보이지 않나. 아직도 코치님은 더 완벽한 소통을 하기 위해 배우고 계신다. 최근 코치님께서 국가대표 트레이너 면접에 합격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도 함께 운동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매우 기쁘다.”

-평소 하루 훈련 루틴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국가대표 훈련은 새벽, 오전, 오후, 야간으로 나뉜다. 비수기에는 오전·오후 훈련을 기본으로 하고 부족하면 보강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동 프로그램이 다소 다르게 구성돼 있다. 새벽에는 달리기, 계단 오르기, 배밀기(푸쉬업과 다운독 자세를 결합한 전신 맨몸 운동)과 같은 유산소 체력 운동을 하고, 오전에는 웨이트 근력 운동, 오후에는 도복을 입고 기술, 외부 실전 훈련을 진행한다. 야간에는 보강 운동과 스트레칭을 신경 써서 운동했다. 유도는 단순히 기술뿐 아니라 근력, 속도, 근지구력, 심폐지구력 모두 필요하다. 하나라도 빠지면 기량을 유지할 수 없다.”


-부상 예방과 몸 관리를 위해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기본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 빠지지 않고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엄마 밥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더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근 회복을 위해 단백질을 열심히 먹는다. 당이 떨어지면 순간적으로 힘을 내기 힘드니, 집중력을 갑자기 끌어올려야 할 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초콜릿을 먹기도 한다. 요새는 회복에 좋은 영양제들이 잘 나와서 잘 챙겨먹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꾸준함’이다. 패턴이 들쑥날쑥하면 리듬이 깨진다. 그래서 최대한 패턴을 유지하려고 한다. 부상당했던 십자인대는 양쪽 두 번씩, 총 네 번 수술했다. 그래서 항상 신경이 쓰인다. 트라우마도 있어서 움찔할 때가 있다. 힘들지만 극복하기 위해 주변 하체 운동과 재활 운동을 더 하고 있으며, 보호대도 꼭 착용한다. 스트레칭도 더 신경 써서 하고 있다.”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클 때, 스스로를 버티게 해준 습관은?
“쉬는 날에는 정신적으로도 푹 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보고, 기분 전환을 위해 가볍게 러닝도 한다. 또 좋은 노래가 있으면 진동을 통해 들어보려고 한다. 이런 사소한 일상 속 행복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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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플림픽 경기를 치르고 있는 정숙화씨/사진=정숙화씨 제공
-데플림픽과 농인 스포츠가 지금 어떤 지점에서 가장 외면받고 있다고 느끼나?
“데플림픽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 대한체육회나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알려줬으면 좋겠다. 정부 관계자 분들도 이 점을 알고 많은 관심을 주면 감사할 것 같다. 사실 홍보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훈련 환경이다. 지금은 대회가 있을 때만 훈련이 지원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1년 내내 훈련을 이어가며 선수를 키우는데, 우리는 데플림픽이나 아시아 선수권처럼 국가대표로 나가는 대회가 있을 때만 나라에서 훈련을 지원해 준다. 이 방식으로는 세계 수준의 기량을 꾸준히 쌓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들의 상황은 더 어렵다. 일부 기업체 팀이나 실업팀이 있긴 하지만 수가 많지 않고, 지역마다 지원 격차도 크다. 전반적으로 훈련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많은 선수들이 운동하면서 생활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선수들을 위해 단 하나만 요청할 수 있다면, 농인 지도자, 의사소통에 진심인 지도자를 배치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농인 선수에게는 기술 지도 이전에 소통이 먼저다. 소통이 된다면 선수는 다른 걱정 없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고, 더 좋은 판단과 역량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나는 2009년부터 2025년까지 긴 시간 동안, 그런 환경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후배들에게 같은 시간을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


-농인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농인 후배 선수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고 들었다. 4~5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도 선배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기회는 많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도 메달을 땄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다음 무대는 어떤 마음, 어떤 건강 목표로 준비하고 싶나? 
“즐겁게 훈련하고 싶다. 웃으면서, 서로 협력하면서 준비하고 싶다. 선수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지도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다 같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그 속에서 메달을 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은퇴 이후를 생각하는 것은 이른 것 같다. 아직은 선수로서 유도에만 집중하고 싶다. 아직 유도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