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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70대 남성이 저장 강박을 앓으며 고립된 생활을 이어온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로 밝혀졌다./사진=연합뉴스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70대 남성이 저장 강박을 앓으며 고립된 생활을 이어온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로 밝혀졌다.

지난 29일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8일 울산 남구 달동의 10층짜리 아파트 7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70대 남성 A씨가 숨지고 주민 50여 명이 대피했다. 화재 당시 소방대원들이 A씨의 집 현관문을 개방했을 때, 집 내부에는 2m 규모의 쓰레기 더미가 가로막고 있었다고 한다. 옷가지와 폐가전, 생활 폐기물이 뒤섞인 '쓰레기 산'은 소방진입로 확보를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가연물 역할을 해 불길을 키웠다. A씨는 거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A씨는 이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지내며 매달 참전명예수당을 받아 생활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웃들은 그가 외출 후 돌아올 때마다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담아오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관리사무소에서 과거 한 차례 쓰레기를 모두 치워주기도 했으나, 공간은 금세 다시 채워졌다. 이후 정리를 요구하자 A씨는 이를 거부했다고 전해졌다.

저장 강박의 공식 명칭은 '저장 장애'로,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는 질환이다. 이 질환으로 인해 주거 공간이 본래의 용도로 사용되지 못할 만큼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되며, 물건을 버릴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환자는 물건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디지털 파일 등을 과도하게 수집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강박 장애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됐으나 현재는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에 독립적인 질병 코드로 등재돼 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일반적으로 저장 장애는 유전적 요인이나 어린 시절의 상실감, 트라우마 같은 심리적 결핍을 물건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기제에서 비롯된다. 고령 환자는 노화에 의해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UC 샌디에이고대 의과대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노년기 저장 장애는 전두엽의 실행 기능 저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뇌 기능의 변화로 인해 물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저장 장애는 악화하기 전에 초기 단계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물건을 살 때 꼭 필요한 것인지 자문하는 습관을 기르고, 주기적으로 주거 공간의 청결 상태를 점검하며 타인과 소통하는 사회적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특히 고령 환자는 인지 능력 저하로 인해 병식(病識)이 매우 낮아 치료를 위해서는 주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 일부 지자체에서는 주거 환경 정비와 전문 심리 상담을 지원해 환자의 회복을 돕고 있다. 다만 환자 본인이 거부할 경우 강제로 개입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A씨의 사례처럼 관련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지역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