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명의 톡톡’ 명의 인터뷰
‘저항성 고혈압’ 명의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신진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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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신진호 교수​/사진=한양대병원 제공
15여년 전, “살면서 내 혈압이 떨어진 걸 본 적이 없다”는 70세 초반의 환자가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신진호 교수를 찾아왔다. 그 환자는 이미 고혈압약을 세 알 복용하고 있었음에도 혈압이 지나치게 높았다. 고혈압약을 3개 이상 써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저항성 고혈압’ 환자였다.

혈압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이에 신진호 교수는 혈압을 어떻게든 낮추려 그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고혈압약을 여섯 알 처방했다. 6~7년간 치료를 이어간 끝에 ‘혈압과의 기 싸움’에서 이겼다. 혈압을 낮추는 데 성공하고 약도 줄인 것이다. 그 환자는 지금도 네 알의 약은 복용하나 용량은 이전의 절반으로 줄었고, 80세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심한 중풍이나 심장마비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고혈압 환자 10명 중 1명가량은 이 환자처럼 저항성 고혈압이다. 처음엔 심하지 않던 고혈압도. 관리에 소홀하다 보면 저항성 고혈압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혈압은 무조건 초장에 잡아야 한다”는 신 교수에게 저항성 고혈압의 치료 방법을 물었다.

-저항성 고혈압은 무엇인가?
“고혈압에는 크게 네 가지 기전이 있다. ▲첫째는 몸으로 들어오는 염분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것 ▲둘째는 조직에 혈액을 공급하는 가느다란 혈관들이 충분히 확장되지 않는 것 ▲셋째는 혈압을 올리는 콩팥의 고유한 기능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것 ▲넷째는 교감 신경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것이다. 첫째에서 셋째까지의 세 가지 기전 중 일부를 약으로 차단하면 보통의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조절된다. 어떤 기전을 얼마나 차단할지는 환자마다 다르다.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은 약이 기대만큼 듣지 않는다. 첫째에서 셋째에 이르는 고혈압 발생 기전을 모두 차단하기 위해 세 가지 약을, 환자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용량까지 썼는데도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을 때 저항성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저항성 고혈압이 아닌데 저항성 고혈압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나?
“통계적으로는 고혈압 환자의 10~15%가 저항성 고혈압이라지만, 병원에서 혈압을 잴 때에는 긴장한 나머지 평소보다 혈압이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이에 환자가 집에서 직접 혈압을 재서 오게 하거나, 병원에서 환자의 몸에 혈압 측정기를 부착하고 하루에 50~60차례 혈압을 잰 다음 평균치를 내면 저항성 고혈압 비율이 8~9% 수준으로 줄어든다. 게다가 환자들이 생각보다 고혈압 약을 잘 복용하지 않는다.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 중 절반가량만이 의사에게 처방받은 고혈압 약을 제대로 복용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를 외래 진료에서 만나면, 의료진이 보는 앞에서 고혈압 약을 복용하게 한 다음 한두 시간 후에 혈압이 떨어지는지를 직접 확인한다.

고혈압 환자라면 자신의 혈압을 집에서도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습관을 들일 것 그리고 약을 충실히 먹은 후에, 혈압이 떨어지는지 직접 확인해 볼 것을 권장한다. ‘약을 제대로 먹었음에도 효과가 충분치 않아서’ 혈압이 잘 조절되지 않는다고 판정되면 복용하는 약물의 가짓수를 늘리고, 양도 대폭 높여야 할 수 있다. ‘진짜 저항성 고혈압’인지 아닌지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하나?
“▲염분 배출 저하 ▲혈관 확장 저하 ▲콩팥의 혈압 상승 기능 과활성화 등 세 가지 기전을 차단하는 약을 작용 시간이 최대한 긴 것들로, 최대 용량으로 쓴다. 여기에다 네 번째 약을 추가한다. 콩팥 옆에서, 콩팥의 혈압 상승 기능을 보조하는 부신이 분비하는 호르몬을 억제하는 약이다. 현재 국제적인 고혈압 치료 지침은 혈압 조절에 관여하는 부신의 알도스테론 호르몬 작동 경로를 차단하는 ‘스피로노락톤’을 4차 치료제로 권고한다. 다만, 알도스테론 호르몬이 성호르몬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이 약을 쓰면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의 작용 경로도 같이 차단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남성은 성 기능 저하, 여성형 유방, 여성은 생리 불순, 부정 출혈 등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스피로노락톤의 대안은 없나?
“대한고혈압학회 연구자 네트워크에서 아밀로라이드라는 약과 스피로노락톤을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에게 무작위로 배정해 12주간 기존 고혈압약에 추가 복용하게 한 결과, 아밀로라이드의 혈압 강하 효과가 스피로노락톤에 뒤지지 않음이 확인됐다. 현재 고혈압 치료 지침은 저항성 고혈압의 네 번째 치료제로 스피로노락톤을 쓰게 하고 있지만, 이 약을 썼을 때 부작용이 생겼거나, 부작용이 생길 것이 우려되는 경우 아밀로라이드를 복용해볼 수 있다. 아밀로라이드는 체내 나트륨 재흡수를 막음으로써 혈압을 떨어뜨린다.

다만, 콩팥 기능이 떨어진 탓에 나트륨이 체외로 잘 배출되지 않아 혈압이 높은 환자들은, 스피로노락톤이나 아밀로라이드를 쓰면 칼륨 수치가 급상승할 생길 위험이 커진다. 약을 쓰더라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이런 약들까지 썼는데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고혈압 발생의 네 번째 기전(교감 신경 호르몬의 과분비)의 영향을 막기 위해 교감 신경 차단제를 추가로 복용한다.”

-눈여겨보고 있는 신약은 없나?
“이미 생성된 알도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알도스테론 호르몬 분비 자체를 차단하는 신약도 개발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 ‘백스트로스태트(Baxdrostat)’다. 이 약을 쓰면 스피로노락톤으로 성호르몬 작용이 차단돼 생기는 각종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한국의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도 연구가 이뤄졌다.”

-‘신장 신경 차단술’로도 혈압을 낮출 수 있다던데?
“신장 신경 차단술은 혈관 겉면을 감싸 안은 채 신장으로 연결된 교감 신경을 소작해, 신장이 혈압을 올리는 다양한 기전을 차단하는 시술이다. 혈관 안으로 접근해 신경을 소작하는 방식과 혈관 밖에서 소작하는 방식이 있는데, 후자의 효과가 더 뛰어나다. 전자는 혈관 안으로 카테터를 넣어 혈관 내부 몇몇 지점에 고주파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시술하는데, 혈관이 함께 손상될 위험이 있고, 신경이 제대로 다 차단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옆구리에 작은 구멍을 뚫고 가는 복강경 기구를 넣어 혈관 밖으로 접근하면, 의사가 혈관을 덮고 있는 신경을 보면서 혈관 밖에 동그랗게 전극을 감싸 신경만 완전히 소작할 수 있다. 혈관 안에서 접근할 때보다 에너지도 적게 필요하고, 시술 시간도 2시간을 넘지 않는다.”

-신장 신경 차단술을 받은 후에도 고혈압 약을 복용해야 하나?
“현재로서 신장 신경 차단술은 저항성 고혈압 환자들이 약을 완전히 끊게 한다기보다는, 복용하는 약의 개수를 줄여주는 시술이다. 체감하기에는 혈관 외부에서 접근하는 방식으로 신장 신경 차단술을 받은 환자들은 복용하는 약이 두세 개는 줄어든다.”

-고혈압 환자들이 자주 하는 오해가 있다면?
“혈압이 낮아지면 콩팥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콩팥은 심장에서 밀어 보낸 혈액을 ‘거르는’ 역할을 한다. 이에 혈압이 높은 사람은 혈류도 세니 콩팥 검사 결과에서 사구체 여과율이 높게 나온다. 고혈압 환자가 혈압약을 먹어 혈압이 떨어지면 오히려 사구체 여과율이 낮아진다. 이 수치가 나의 원래 콩팥 기능이라고 봐야 한다. ‘고혈압 약을 먹으니 콩팥 기능이 오히려 떨어졌다’며 혈압약을 먹지 않는 사례가 있는데, 이런 기간이 오래되면 거센 혈류에 콩팥 조직이 점점 너덜너덜해지고, 흉터가 남아 딱딱해지면서 기능이 악화된다.”

-고혈압 환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생활요법과 약물치료를 고혈압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병행해, 수축기 혈압은130mmHg, 이완기 혈압은 80mmHg 아래로 낮춰야 한다. 이 선을 넘지 않으면 혈압이 향후에도 잘 관리된다. 관리에 소홀해서 이 선을 자꾸 넘나들다 보면 혈압이 점점 상승세를 타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복용해야 하는 고혈압약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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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병원 심장내과 신진호 교수/사진=한양대병원 제공
신진호 교수는…
한양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내과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로서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을 지내고 있다. 저항성 고혈압을 치료하기 위한 신약과 시술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저항성 고혈압 환자의 4번째 치료 약으로 스피로노락톤 대신 아밀로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에 참여했으며,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개발 중인 신약 후보 물질 ‘백스트로스태트(Baxdrostat)’의 국내 임상 코디테이터로 활약했다.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조정기 교수와 팀을 이뤄, 복강경 신장 신경 차단술 의료기기 ‘하이퍼큐어(HyperQure)’의 임상 환자 대상 수술에도 참여했다.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을 초기에 잡아, 이들이 저항성 고혈압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