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정표]
누구나 마음의 병을 겪을 수 있지만 쉽게 털어놓기 힘들고 때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어려움을 겪는다. 헬스조선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준 교수의 칼럼을 연재해 ‘읽으면서 치유되는 마음의 의학’을 독자와 나누려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풀어내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편집자주)
중년 여성 A씨는 몇 년 전부터 어깨가 묵직하고 팔과 등이 아프고 허리가 굳고 손발이 저린 날이 많아졌다. 오래 앉아 있으면 뒷목이 당기고 걸음을 걸어도 팔다리가 콕콕 쑤셨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어 그런가 보다’하며 넘겼다. 통증은 멈추지 않았고 어느 날부 자리와 형태를 바꿔가며 이어졌다. 가슴이 조여 숨을 들이마시기 힘든 날이 있는가 하면, 배가 아픈 날도 있었다. 누군가가 몸 곳곳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이런 증상 때문에 여러 병원의 내과, 신경과, 정형외과를 전전했지만 의사의 답변은 늘 같았다.
“검사 결과는 정상입니다.”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꼈다.
‘정상이라는데, 왜 나는 이렇게 아픈 거지?’
‘난 이렇게 아픈데 아픈 곳이 없다니… 왜 원인을 못 찾지? 난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지?’
‘이 증상이 평생 동안 지속되면 어떻게 살지?’
그러던 중 한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심리적인 요인이 통증을 키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처음에는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통증이 지속되자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두드렸다. A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신체증상장애’를 진단받았다. 정신적 과부하가 통증이라는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는 상태를 말하며 이 현상 뒤에는 흥미로운 과학적 기전이 숨어 있다.
통증은 말초 신경에서 척수 후각을 거쳐 뇌로 전달되지만 단순히 자극의 세기만으로 고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뇌는 심리적 요인에 따라 통증 신호를 열어주기도 걸러내기도 하는 이른바 통증의 ‘게이트 조절’ 작용을 한다. 불안과 우울, 과도한 긴장은 이 문을 열어 작은 자극도 큰 통증처럼 느끼게 하고 반대로 안정과 이완은 문을 닫아 통증 신호를 약화시킨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기 때문에 때로는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결코 가짜가 아니다. 통증을 증폭시키는 신경계의 조절 체계가 실제로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체증상장애나 만성 통증에서 진통제 대신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회복되면 뇌의 하행성 통증 억제 시스템이 강화돼 열려 있던 통증의 문이 닫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항우울제는 기분뿐만 아니라 통증 조절 회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왜 A씨의 뇌가 이렇게 쉽게 통증 게이트를 열어버리는가?’를 이해하려면 조금 더 깊은 심리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임상적으로 신체적 통증은 마음에서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 몸을 통해 표현되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억눌린 분노, 슬픔, 죄책감, 과도한 책임감이 쌓일 때 그 부담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중년은 인생에서 가장 책임이 많아지는 버거운 시기다. 부모 부양, 자녀 문제, 직장 스트레스 등의 무게가 하루하루 어깨에 쌓인다. A씨는 치료 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제 삶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 들고 있었나 봐요. 누군가 한 번쯤 ‘힘들지?’하고 물어봐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가슴 속의 말을 꺼내놓는 정신치료와 항우울제 치료를 시작했다. 몇 주 뒤, A씨는 처음으로 통증이 덜한 날을 맞았다.
“이렇게 편안한 하루가 있다는 걸 잊고 살았어요.”
통증이 가벼워진 만큼 삶의 속도도 느긋해졌다. 치료는 단순한 약물 투여로 끝나지 않는다. 불안과 통증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분산시키고 왜곡된 해석을 교정하여 통증 게이트를 닫는 것이 필요하다. 호흡과 이완을 통해 몸의 긴장을 풀고 운동을 하고 자신을 짓누르던 과도한 역할과 책임을 다시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통증을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통증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이 우선이다.
보통 우리의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 경우도 많다. 건강한 삶은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네덜란드계 미국인 정신과 의사이자 트라우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비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아마 A씨의 통증이 가벼워진 이유는 오랫동안 눌려 있던 그 기억이 이해받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을 온전히 주도할 수 있다.
중년 여성 A씨는 몇 년 전부터 어깨가 묵직하고 팔과 등이 아프고 허리가 굳고 손발이 저린 날이 많아졌다. 오래 앉아 있으면 뒷목이 당기고 걸음을 걸어도 팔다리가 콕콕 쑤셨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어 그런가 보다’하며 넘겼다. 통증은 멈추지 않았고 어느 날부 자리와 형태를 바꿔가며 이어졌다. 가슴이 조여 숨을 들이마시기 힘든 날이 있는가 하면, 배가 아픈 날도 있었다. 누군가가 몸 곳곳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이런 증상 때문에 여러 병원의 내과, 신경과, 정형외과를 전전했지만 의사의 답변은 늘 같았다.
“검사 결과는 정상입니다.”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꼈다.
‘정상이라는데, 왜 나는 이렇게 아픈 거지?’
‘난 이렇게 아픈데 아픈 곳이 없다니… 왜 원인을 못 찾지? 난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지?’
‘이 증상이 평생 동안 지속되면 어떻게 살지?’
그러던 중 한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심리적인 요인이 통증을 키우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처음에는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통증이 지속되자 결국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두드렸다. A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신체증상장애’를 진단받았다. 정신적 과부하가 통증이라는 신체 증상으로 표현되는 상태를 말하며 이 현상 뒤에는 흥미로운 과학적 기전이 숨어 있다.
통증은 말초 신경에서 척수 후각을 거쳐 뇌로 전달되지만 단순히 자극의 세기만으로 고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뇌는 심리적 요인에 따라 통증 신호를 열어주기도 걸러내기도 하는 이른바 통증의 ‘게이트 조절’ 작용을 한다. 불안과 우울, 과도한 긴장은 이 문을 열어 작은 자극도 큰 통증처럼 느끼게 하고 반대로 안정과 이완은 문을 닫아 통증 신호를 약화시킨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기 때문에 때로는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결코 가짜가 아니다. 통증을 증폭시키는 신경계의 조절 체계가 실제로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신체증상장애나 만성 통증에서 진통제 대신 항우울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회복되면 뇌의 하행성 통증 억제 시스템이 강화돼 열려 있던 통증의 문이 닫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항우울제는 기분뿐만 아니라 통증 조절 회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왜 A씨의 뇌가 이렇게 쉽게 통증 게이트를 열어버리는가?’를 이해하려면 조금 더 깊은 심리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임상적으로 신체적 통증은 마음에서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 몸을 통해 표현되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억눌린 분노, 슬픔, 죄책감, 과도한 책임감이 쌓일 때 그 부담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중년은 인생에서 가장 책임이 많아지는 버거운 시기다. 부모 부양, 자녀 문제, 직장 스트레스 등의 무게가 하루하루 어깨에 쌓인다. A씨는 치료 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제 삶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 들고 있었나 봐요. 누군가 한 번쯤 ‘힘들지?’하고 물어봐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동안 억압되어 있던 가슴 속의 말을 꺼내놓는 정신치료와 항우울제 치료를 시작했다. 몇 주 뒤, A씨는 처음으로 통증이 덜한 날을 맞았다.
“이렇게 편안한 하루가 있다는 걸 잊고 살았어요.”
통증이 가벼워진 만큼 삶의 속도도 느긋해졌다. 치료는 단순한 약물 투여로 끝나지 않는다. 불안과 통증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분산시키고 왜곡된 해석을 교정하여 통증 게이트를 닫는 것이 필요하다. 호흡과 이완을 통해 몸의 긴장을 풀고 운동을 하고 자신을 짓누르던 과도한 역할과 책임을 다시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통증을 완전히 없애는 것보다 통증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안정이 우선이다.
보통 우리의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고 말하지만 반대로 몸이 정신을 지배하는 경우도 많다. 건강한 삶은 어느 한쪽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네덜란드계 미국인 정신과 의사이자 트라우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비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아마 A씨의 통증이 가벼워진 이유는 오랫동안 눌려 있던 그 기억이 이해받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몸이 보내는 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삶을 온전히 주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