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휘의 근거로 알려주는 의학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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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네요. 식단 관리 좀 하셔야겠어요."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들고 진료실을 나설 때,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기름진 걸 줄여야지'라고 다짐하며 냉장고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밟히는 두 가지 식품이 있습니다. 바로 식탁 위의 완전식품이라 불리는 ‘달걀’과, 감칠맛 넘치는 해산물의 대명사 ‘새우’입니다.

이 두 식품은 맛과 영양이 뛰어나지만, 동시에 '콜레스테롤 폭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실제로 달걀 노른자 하나에는 약 200mg, 새우는 100g(약 5마리)당 약 189mg에 달하는 상당량의 콜레스테롤이 들어있습니다. 과거 보건 당국이 권장했던 하루 콜레스테롤 섭취 제한량이 300mg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달걀 딱 하나만 먹어도 하루 허용량의 3분의 2, 새우 열 마리에 하루 허용량을 넘겨버리는 셈입니다. 수치만 놓고 보면 고지혈증의 주범처럼 보이기 충분하죠.

그렇다면 고지혈증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 식탁에서 달걀과 새우를 추방해야 할까요? 의학적 근거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의 퀴즈: 고지혈증을 예방하려면, 달걀 노른자, 새우를 무조건 안 먹는 게 좋다?
정답은 X입니다.

핵심 근거1.
"달걀, 먹어도 될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규모의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신뢰도 높은 의학 저널 중 하나인 BMJ(British Medical Journal)에 2020년 발표된 하버드 보건대학원 연구팀의 대규모 연구를 소개합니다.

연구팀은 무려 32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모인, 미국인 20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연구의 정확성을 위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진행된 기존의 신뢰할 수 있는 연구들까지 모두 합쳐, 총 170만 명의 데이터를 종합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170만 명의 데이터를 종합했을 때, 하루에 달걀을 1개(약 50g) 정도 매일 섭취하더라도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은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한국인인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더욱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연구팀이 전 세계 데이터를 지역별로 쪼개서 분석해보니, 아시아 코호트(집단)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미국 코호트에서는 달걀 섭취와 질병 위험이 '관련 없음'으로 나온 반면, 아시아인에게서는 달걀 섭취가 오히려 심혈관 질환 위험을 약 8%가량 낮추는 경향이 관찰된 것입니다.


"왜 서양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차이가 있었을까요? "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달걀 자체가 아닌 동반된 식습관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식탁: 달걀을 주로 베이컨, 소시지, 버터와 함께 굽거나 스크램블로 먹습니다. 달걀과 함께 혈관을 막는 포화지방을 잔뜩 섭취하는 셈이죠.
▶​아시아의 식탁: 우리는 어떤가요? 달걀을 주로 포화지방이 많은 베이컨, 소시지, 버터와 함께 먹기보다는, 밥과 채소 위주의 식단에 달걀찜으로 국과 먹는 것을 선호합니다.

핵심 근거2.
과거에는 콜레스테롤 섭취를 제한했으나, 지금의 의학계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여러 실험 연구에서 콜레스테롤 섭취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으나, 개인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임상연구 결과로 콜레스테롤을 먹어서 오르는 수치보다, ‘포화지방산(육류의 기름)과 트랜스지방(가공식품) 섭취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훨씬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콜레스테롤을 피하려다 식사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2015년 미국 식사권고안(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에서는 제한 권고를 제외했습니다.

▶​미국 (AHA/ACC): 2013년과 2018년 진료지침에서 "콜레스테롤 섭취 제한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라고 명시했습니다. 대신 건강한 식품으로 구성된 식사 패턴을 유지하면 콜레스테롤 섭취는 자연스럽게 낮아지므로 이를 더욱 강조했습니다.
▶​유럽 (ESC/EAS): 2019년 유럽 지침에서는 "혈청 콜레스테롤이 높은 고지혈증 환자의 경우에만" 하루 300mg 미만으로 제한하도록 권고했습니다.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 한국 역시 성인에게 하루 300mg 미만 섭취를 권고하긴 하나, 이를 강제적인 '목표 섭취량'으로 설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지질혈증 예방을 위해 모든 사람이 일괄적으로 콜레스테롤을 제한할 필요는 없으나, 이미 콜레스테롤이 높은 분이라면 콜레스테롤의 과다 섭취를 주의해야 합니다. 일반인은 안심해도 좋지만, 콜레스테롤이 높다면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생리학적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간의 자동 조절 능력 : 우리 몸속 콜레스테롤의 대부분은 음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간에서 스스로 합성됩니다. 대부분의 건강한 사람은 달걀과 새우를 먹어 콜레스테롤이 들어오면 간에서 만드는 생산량을 줄여 전체 균형을 맞춥니다. 즉, 달걀과 새우를 많이 먹는다고 혈관 속 기름때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적은 '지방' : 혈관 건강을 해치는 진짜 주범은 콜레스테롤 섭취가 아니라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섭취입니다. 새우의 지방 함량은 매우 낮습니다. 반면 삼겹살이나 꽃등심은 지방이 가득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새우가 높을지 몰라도, 혈관을 막는 위험성은 지방이 많은 육류가 훨씬 높을 수 있습니다.

추가정보1.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당뇨병을 앓고 계신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러 코호트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 결과, 제2형 당뇨병 환자가 달걀을 많이 섭취할 경우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살펴본 연구와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죠. (물론 관찰 연구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당뇨병 환자라면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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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m J Clin Nutr. 2013 May 15;98(1):146–159.
"왜 당뇨병 환자에게 해로울까요?"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고장 난 조절 장치: 앞서 우리 몸의 간이 콜레스테롤 생산량을 조절한다고 말씀드렸죠? 안타깝게도 당뇨병 환자는 이 능력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음식을 통해 들어온 콜레스테롤에 맞춰 간이 합성을 줄이는 조절 기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더 나쁜 품질의 LDL: 당뇨병 환자의 혈액 속에 있는 LDL 콜레스테롤은 일반인보다 크기가 작고 단단하여 혈관벽에 더 잘 파고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식이 콜레스테롤이 추가로 들어오면, 혈관 내 산화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동맥경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3. 인슐린 분비 세포 손상 가능성: 혈중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면 췌장의 베타세포(인슐린을 만드는 공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추가정보2.
앞서 살펴본 생리학적 기전, 여러 논문과 지침들을 토대로 제안 드리는 방법으로, 본인의 건강 상태에 맞춰 확인해 보세요.

1. 건강한 성인
▶​고지혈증을 예방하기 위해, 달걀, 새우 등 음식을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침 식사로 달걀을 드실 때 베이컨이나 햄(가공육) 대신, 채소와 함께 드세요.

2. LDL 콜레스테롤이 높은 분(LDL 130 mg/dL 이상)
▶​일주일에 2~4개 이하로 노른자 섭취를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언급한 유럽(ESC/EAS) 지침처럼, 혈청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경우에는 섭취 제한이 권고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전적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민감하게 오르는 '과민 반응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3. 10년 이상 당뇨를 앓고 계신 당뇨 환자
▶​일주일에 2개 이하로 노른자 섭취를 엄격히 제한하거나, 가급적 흰자 위주로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추가 정보 1]에서 다뤘듯, 당뇨병 환자에서 달걀 섭취와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의 연관성이 다수 연구에서 관찰되었습니다. 특히, 10년 이상 당뇨를 앓고 계신 당뇨 환자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LDL 목표치가 70 mg/dL 미만으로 엄격합니다. (참고로 관련된 질병이 없는 일반인 기준으로, LDL 콜레스테롤은 130mg/dL 미만이 정상 범주입니다.) 식이성 콜레스테롤 부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유리합니다.

4. 관상동맥 질환 경험자 (심근경색, 스텐트 시술 등 / 초고위험군)
▶​식이성 콜레스테롤 섭취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계란 노른자는 피하고 흰자만 섭취하거나, 두부 같은 식물성 단백질로 대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관상동맥 질환을 앓았던 분들은 초고위험군으로 분류되며, LDL 목표치는 55 mg/dL 미만이라는 매우 엄격한 기준이 적용됩니다. 이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용량의 스타틴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며, 식단에서도 콜레스테롤 상승 요인을 최대한 배제해야 안전합니다.

5. 65세 이상 노인
▶​콜레스테롤, 혈당이 정상이고, 관상동맥 질환, 뇌혈관 질환이 없으실 경우, 하루 1개 정도의 달걀을 드시면 좋습니다.
▶​노년기에는 콜레스테롤뿐만 아니라, 단백질 부족으로 인한 근감소와 면역력 저하의 위험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달걀은 치아가 약한 분들이 소화하기 쉽고 질 좋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단, 튀기지 않고 삶거나 찜으로 조리하여 소화 흡수를 돕고 산화된 지방 섭취를 줄여주세요.

"달걀과 새우,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제 정답이 보이시나요? 건강한 사람에게 이들은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지만, 당뇨병이 있거나 이미 관상동맥 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은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의 결론
1. 콜레스테롤이 정상인 분 : 고지혈증 예방을 목적으로 달걀 노른자와 새우를 일부러 제한할 필요는 없다.
2.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분, 10년 이상 당뇨를 앓고 계신 당뇨 환자, 관상동맥 질환 환자 : 달걀 노른자를 줄이거나 피하는 것이 좋다.
3. 65세 이상 : 이상지질혈증, 당뇨, 관상동맥 질환, 뇌혈관 질환이 없다면, 소화가 잘 되는 달걀(삶은 달걀, 찜 등)을 하루 1개 정도 드시는 것이 근감소 예방과 면역 유지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