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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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왜 멈추지 못할까요? 대한민국은 어쩌면 지금 ‘도파민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빠르고 강렬한 자극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지루함을 한순간도 견디지 못하며, 불쾌한 감정이 찾아오면 마주하고 싶지 않기에 일단 미뤄두고 즉각적으로 기분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얻는 만족감’과 ‘불편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추구하는 심리는 중독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중독의 가장 끝에는 우울감과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이 있습니다.

중독은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시거나 도박에 빠지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의학적으로 중독(의존)은 ‘조절 능력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없다면, 그것이 스마트폰이든 알코올이든 폭식이든 뇌과학적으로는 중독에 빠진 상태라고 볼 수 있지요. 우리의 뇌는 쾌락과 고통을 같은 영역에서 처리하며 항상 균형을 유지하려 합니다. 강렬한 쾌락이 들어오면 뇌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통의 무게를 더합니다. 술이나 약물, 도박과 같은 강력한 자극은 뇌의 보상회로를 망가뜨리고, 결국은 쾌락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중독 대상을 강박적으로 찾게 합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던 것들이 우리를 배신한 것입니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참을만한 충분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정서나 스트레스를 견디는 대신, 클릭 한 번으로 회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동기 부족, 지루함, 사회적 불안과 같은 감정을 조절하기 위한 전략으로 디지털 미디어나 물질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불편하고도 괴로운 현실을 피하는 현대인의 생존방법이지만, 결국 내성을 부르고,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하며, 마지막엔 심한 무기력과 절망에 빠져버리게 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자살, 약물 과다 복용, 알코올성 간 질환에 의한 죽음을 ‘절망사(Deaths of Despair)’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는 중독과 자살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희망을 잃은 절망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독 물질이나 행위는 뇌의 전두엽 기능을 억제하여 충동성을 높이고, 만성적인 자기 파괴적 행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무디게 만듭니다. 이는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중독은 스트레스 조절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뇌의 보상 결핍을 유발하여 깊은 우울과 무기력에 빠지게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지요. 그리고 이 상황에서 중독에 빠진 사람이 흔히 경험하는 수치심, 죄책감, 그리고 사회적 고립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중독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입니다. 중독은 도덕적 타락이나 의지박약이 아니라, 뇌의 질병이자 삶의 고통에 대한 잘못된 적응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중독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미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부정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아프게 하는 말이 아니라, “괜찮아?”라고 물어봐 주는 다정한 손길입니다. 중독에 빠진 이가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아도 비난받지 않는 안전한 관계, AI나 디지털 미디어가 아닌 사람이 줄 수 따뜻한 연결감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가족과 사회가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고, 친절하게 손을 내밀 때 중독에 빠진 이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 자살을 예방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역설적이게도 ‘천천히, 그리고 불편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뇌는 누구나 가소성(neuroplasticity)을 갖고 있습니다. 중독으로 망가진 뇌도 건강한 불편함을 통해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행위(게임, 숏폼, 폭음) 대신, 느리고 불편한 것들을 선택합시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걷고, 배달 음식 대신 직접 요리를 하고, 메시지를 보내는 대신 만나서 대화하는 ‘​건강한 불편함’은 중독과 자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필수적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중독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중독은 특별히 나약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독을 일으키는 무언가는 한때 우리를 즐겁고 기쁘게 해주었던 것들입니다.

우리는 일부러라도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손쉬운 해결책, 빠른 즐거움을 잠시 내려두고, 느리지만 천천히 가는 길을 걸어봅시다. 나의 뇌가 즉각적인 자극을 원할 때, 잠시 멈춰 서서 심호흡하고 “나는 천천히 가겠다”고 선언합시다.

그 불편한 길이 당신을 중독으로부터 보호하고, 천천히 걸어가며 바라보고 느끼는 기분이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며, 결국 삶을 지켜줄 것입니다. 중독의 반대는 단순히 약물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제, 천천히 그리고 불편하게 살아갈 결심을 할 시간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