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테크]
누구나 자신만의 디지털 디바이스를 가지고 다니는 시대다. 헬스테크가 발전하며 이제는 개인용 디지털 기기로 각종 생체 지표를 특정, 지표 변화를 나타낸 그래프를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보며 몸을 관리할 수 있다. 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애플워치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애플의 건강 어플리케이션인 ‘헬스(Health)’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의문이 든다. 기기가 제공하는 건강 관리 기능, 특히 생체 지표 측정 기능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걸까. 병·의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 관리가 가능한 정도일까.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ASEM타워에서 열린 ‘애플 헬스 이벤트’에서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애플은 2014년에 처음으로 건강 어플리케이션 ‘헬스’를 출시하고, 지금까지 심장 건강, 수면, 청력 건강, 생리 주기 추적 등 18개의 영역에 대해 건강 관리 기능을 추가해왔다. 의사와 과학자 그리고 알고리즘 엔지니어로 구성된 팀이 함께 기능을 만들고 검증한다.
이중에서도 애플이 특히 집중하고 있는 영역은 수면, 심장 그리고 청력이다. 이날 애플 헬스 이벤트에서는 수면 무호흡 모니터링 기능, 보청기 기능, 이상 심박수 알림 기능 배후의 과학적 이야기가 소개됐다.
◇신체 움직임 감지로 수면 중 호흡 패턴 분석
수면무호흡증은 밤사이에 정상적인 호흡이 방해받으며 몸에 생리적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질환을 말한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가진 질환이지만, 자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증상이 나타나므로 80%의 환자는 자신이 수면무호흡증인 것을 알지 못한다. 치료하지 않으면 심장 질환이나 고혈압·당뇨병 등 다른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어 조기에 발견해 병·의원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애플은 애플워치를 통해 이용자의 호흡 양상을 측정, 자는 도중 호흡이 고르게 이어지는지 알려준다. 이 기능을 구현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 수면무호흡증 관련 데이터 1만 1000여 개 이상이 이용됐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비롯한 전 세계 보건당국의 인증을 받는 과정에서 별도 임상 시험도 추가로 진행했다. 호흡 패턴은 워치에 내장된 가속도계를 통해 측정된다. 숨을 쉬면서 가슴이 오르내리는 움직임이 팔을 타고 손목까지도 미세하게 전달되는 것에서 착안했다. 연구를 통해 자는 자세가 변하더라도 데이터 측정값이 변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애플워치9·애플워치 울트라2·애플워치SE 3세대와 그 이후 모델에서 수면 무호흡 모니터링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기능 사용 결과 불규칙한 호흡 패턴이 발견됐다면 병·의원에 방문해 확진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중등도 이하 난청 위해 보청기 기능 지원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집에서 5분 내외로 청력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청력 검사 기능도 지원한다. 임상 시험을 통해 검증을 거친 검사이며, ▲청력 손실 없음 ▲경도 손실 ▲중등도 손실 ▲고도 손실로 결괏값이 분류된다. 청력 손실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데다가 정도가 미세해서 초기에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에 집에서도 간편히 청력 상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기능이 개발됐다.
청력 손실이 있는 사람의 75%는 보청기 같은 청력 보조 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이에 에어팟 프로2부터는 청력 테스트 결과에 기반해 에어팟을 보청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주변 소음을 줄이고, 자신이 잘 듣지 못하는 음향을 증폭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애플은 “음향이 거의 실시간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듣기에 이질감이 없다”며 “음악, 영상 등 미디어를 이용할 때에도 검사 결과에 기반한 음향 설정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다만, 경도~중등도 난청 환자를 겨냥한 기능인 만큼 의사 처방 후 자신의 청력에 맞춘 의료용 보청기와 성능을 비교한 실험 결과는 없다. 그러나 경도~중등도 난청 환자에서 의사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소리 증폭기와 에어팟 프로의 청력 향상 정도가 유사했다는 연구 결과는 있다.
◇심방세동 이상 징후 알려… 진단 보조 도구로 활용
애플의 심장 건강 관리 기능은 애플워치의 광학 센서를 통해 측정한 심박수를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기기에서 그래프로 보여준다. 운동 전후의 심박수 변화 양상, 일상 속에서 관찰되는 심박수 이상 징후(고심박, 저심박, 불규칙한 심박수 패턴) 등을 알려준다. 워치에 내장된 자석의 극을 통해 미세 전류를 흘려보내 심전도 측정도 가능하다. ‘애플 심장 연구(Apple Heart Study)’로 불규칙 맥박 알림 기능이 부정맥의 일종인 심방세동을 얼마나 잘 감지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40여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워치에서 맥박 이상 알림을 받은 사람의 34%가 실제로 심방세동을 진단받았다. 심박수 기능은 모든 애플워치 모델에서, 심전도 기능은 애플워치 시리즈 4와 그 이후의 모델에서 지원한다.
심장 박동 측정 기능을 비롯해 애플이 제공하는 건강 관리 기능들은 의사의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할 때를 놓치지 않게 도와주는 보조 도구에 가깝다. 의사의 확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애플은 “애플의 건강 관련 데이터는 몸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데에 집중한다”며 “실제 이상 증상을 자각할 때쯤이면 병이 악화된 상태일 가능성이 크므로, 그 전에 몸에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를 미리 알려주고 의사를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