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터뷰]
“꽃마다 피는 계절 다르듯 성장 속도 모두가 달라”
단순하고 합리적인 육아 문화 정립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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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 하정훈 원장./사진=​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 제공, 그래픽=김민선
지난 10월 국립중앙도서관은 개관 80주년을 맞아 국가장서 중 시대를 비춘 200여 종의 자료를 선정했다. 그 목록에는 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 하정훈 원장의 '삐뽀삐뽀 119 소아과'도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초보 부모라면 한 번쯤 거쳐 가는 '육아 참조서'다. 아기 성장 과정에서 마주할 상황과 대처법을 쉽고 정확하게 안내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은 전문가 영역의 의학이 부모의 서재로 들어왔다고 평했다.

이 책을 쓴 하정훈 원장은 부모들 사이에서 '언택트 주치의'로 불린다.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꼭 필요한 육아 정보를 꾸준히 전하고 있다. 구독자 수는 무려 49.1만명에 달한다. 수익은 창출하지 않고 있다. 정보의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일반인이 정보를 찾는 곳에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30년째 진료를 이어오고 있는 하정훈 원장을 만났다.

◇육아, 너무 애쓰지 말아라?
-책을 쓰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등 의학 정보를 직접 알리게 된 계기가 있나?
"1990년대 초반 하이텔·천리안 등 초기 통신망이 등장했을 때,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부모가 육아 정보를 찾았다. 불완전한 정보가 주를 이뤘다.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자료를 바탕으로 1999년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유튜브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정확하지 않은 건강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검증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일반인이 의학논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 다양한 연구 변수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왜곡된 정보가 빠르게 퍼져, 육아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은 소아과 영역에서 큰 문제다. 최근 소아과 전문의들이 다양한 컨텐츠로 정보 전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정보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현 시대 가장 필요한 육아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자신의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때, 아이도 자연스럽게 건강한 정서와 삶의 방식을 배우게 된다. 양육의 모든 초점을 아이에게만 맞추고 부모의 삶을 희생하면, 아이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성장할 위험이 있다. 또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과도한 배려를 기대하도록 키워서는 안 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적절한 배려를 제공하되,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어릴 때부터 가정과 사회의 규칙을 알려주고, 이를 지키는 방법을 익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적 관점에서도 과잉보호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가벼운 증상에도 즉시 응급실을 찾거나, 불필요한 검사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병원 쇼핑’, 필요 이상의 영양제 섭취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아이의 건강을 지키는 핵심은 적정 체중 유지,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같은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다. 즉, 아이를 아프지 않게 만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과잉 개입을 줄이고 제대로 된 기초 관리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보 부모가 겪는 불안이 과잉 육아를 불러오나?
"부모가 느끼는 불안의 상당 부분은 인터넷에서 비롯된다. 부모가 미리 자녀의 발달 여부를 확인하려 하기보다는, 소아과 의사의 정기 검진을 받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부모의 스트레스도 줄이는 방법이다. 치료적 관점에서도 자연스러운 양육이 중요하다. 영유아기부터 다양한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이후 발달상의 문제가 나타나더라도 치료를 수월하게 한다. 최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제시되는 육아 담론이 일반적인 육아 지침처럼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주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동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계된 것이다. 일반적인 아동의 일상적 양육에 그대로 적용하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조기 영어 교육과 AI 사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과열되는 영어 조기교육에 대해 우려가 크다. 코로나19 이후 일상 대화 경험이 줄어들면서 한국어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어 능력이 확립되기 전에 영어 노출을 지나치게 늘리면 어휘는 늘 수 있어도 화용언어 능력과 사고력 발달에는 한계가 생긴다. 더욱이 AI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고급 영어 능력’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이미 다양한 언어의 텍스트를 정밀하게 번역하는 도구들이 등장했고, 앞으로 번역 품질은 더욱 향상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어로 정보를 이해하고, 스스로 사고하고,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AI 활용 역시 너무 이른 시기에 가르칠 필요가 없다. 아이는 정보를 직접 찾고, 비교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사고 체계를 확립한다. 그러나 AI로 결론만 빠르게 얻는 경험이 반복되면 이러한 사고 과정이 축소되고 두뇌 발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결국 사회에서 필요한 능력은 단순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이며, 이는 성장 과정 전체를 통해 서서히 형성되는 역량이다."

-체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적 흐름을 따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체벌을 허용하는 국가는 드물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체벌은 이미 불법화됐다. 과거에는 특정 집단 내에서 공유된 소속감과 규율을 전제로 한 체벌이 문제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체벌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로 인식된다. 부모는 더 이상 체벌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훈육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는 부모의 권위를 자연스럽게 세워,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고 따르며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 길러야 할 것이다. 최근 부모가 아이에게 '미안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보다는 아이가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가 제공할 것은 적당히 부족한 수준의 지원·보호·배려이며, 아이는 적정한 위험 속에서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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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 제공​
◇아이 건강, 어떻게 챙길까?
-밤에 아이에게 갑자기 열이 나면 응급실에 가야 할지 고민되는데, 기준을 제시한다면?
"연령별, 증상별 기준이 달라 일률적으로 응급실 방문 기준을 정할 수 없으므로, 전문가 서적이나 신뢰할 수 있는 영상 자료를 참고해 지침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응급실에 방문할 정도가 아니라면, 늦은 시간 병원을 방문해 생활리듬이 깨지는 게 오히려 아이의 건강을 더 악화할 수 있다. 가정에서의 기본 처치, 예를 들어 해열제 사용과 충분한 수면 확보가 아이 건강 유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사회적으로도 응급실을 무분별하게 확충하기보다, 불필요한 응급실 이용을 줄이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장 시기 별로 부모가 꼭 챙겨야 할 건강 루틴은?
"부모가 아이의 발달을 위해 과도하게 공부하거나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아이 스스로 발달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 영유아 시기에는 자유로운 놀이와 다양한 경험이 아이의 창의력과 사회적 경쟁력을 키우는 핵심이다. 모든 아동이 동일한 학업 성취를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유형의 성장과 경험이 사회 발전을 촉진한다. 꽃마다 피는 계절이 다른 것처럼, 아이 역시 각자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와 사회가 여유를 가져야 한다."

-감염 질환 위험이 커진 겨울철이다. 지금 시즌에 특히 주의해야 할 영유아·소아 감염 질환이 있다면 무엇인가?
"현재 주목해야 할 호흡기 질환은 세 가지다. 우선, 독감이다. 독감 환자는 작년 같은 시기보다 12배 증가했으며, 영유아와 어린이에게 특히 위험하다. 두 번째는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이고, 세 번째는 코로나바이러스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최근 다소 감소하는 추세지만, 향후 재유행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RSV는 영유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독감이나 코로나와 동시에 감염될 경우 질병의 심각성이 크게 증가한다. 심각도 측면에서 RSV는 독감과 코로나보다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RSV와 독감 예방접종은 필수적이다. RSV 예방접종은 유행 시기에 맞춰 시행할 수 있으며, 특히 8개월 미만인 아동에게 강력히 권장된다."


-최근 국내에 새롭게 RSV 예방 옵션이 도입됐는데, 아직 비급여라 가격이 비싸다. 그래도 맞추는 것을 권장하는가?
"RSV 예방접종은 예방을 통한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길 바란다. 아이가 RSV에 감염되면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육체적·정서적 부담이 크며, 입원까지 이어질 경우 맞벌이 가정에는 특히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번에 새로 도입된 RSV 예방 항체주사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국가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빠르게 승인 및 보급된 것과 마찬가지로, RSV 예방 항체주사도 패스트 트랙을 통한 NIP(국가지원사업) 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육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현 국가적 비상사태인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저출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저출산은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라, 사회적 생명이 충분히 태어나지 못하는 국가적 위기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한 해 40만~60만 명이 출생했지만, 현재는 20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는 ‘피 없는 전쟁’에 비유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육아론이나 공포를 조장하는 육아 담론은 사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육아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출산율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부모가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부담 없이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하고 합리적인 육아 문화가 필요하며, 교육 제도와 정책에서도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