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 명의 톡톡’ 명의 인터뷰
‘원형탈모 명의’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허창훈 교수

보통 원형탈모라고 하면 머리에 생긴 동전 크기만 한 탈모 증상을 떠올리지만, 실제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 중엔 이보다 심각한 경우가 많다. 이름만 ‘원형’ 탈모지, 실상은 몸에 있는 온갖 털이 다 빠진다. 소아·청소년 원형탈모 환자들은 또래의 시선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고, 성인 환자는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은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탓에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허창훈 교수를 만나 원형탈모 치료법과 국내 환자들의 치료환경 등에 대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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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허창훈 교수 /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국내 원형탈모 환자 수는 얼마나 되나?
“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매년 17만~18만명이 원형탈모 치료를 받는다. 30·40대 환자가 제일 많은데, 대부분 자가면역질환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면역계 이상이 왜 탈모로 이어지는 건가?
“자가면역질환은 우리 몸에 맞지 않는 병원체를 쫓아내야 할 T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우리 몸을 공격하면서 생기는 문제다. 쉽게 말해 T세포가 싸우지 말아야 할 상대와 싸우는 건데, 그 상대가 모낭일 때 원형탈모가 발생하게 된다. 비슷한 원리로, T세포가 비정상적으로 피부를 공격하면 아토피피부염, 색소를 만드는 세포를 공격하면 백반증 등이 발생한다.”

-스트레스나 유전의 영향도 있나?
“전체 원형탈모 환자의 10% 내외가 스트레스의 영향을 받는다. 유전 역시 가능성이 있다. 부모가 원형탈모일 경우 자녀에게 원형탈모가 생길 수 있고, 부모는 다른 자가면역질환인데 자녀만 원형탈모 형태로 자가면역질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코로나19 유행 당시 원형탈모 환자가 늘었다고?
“정확한 통계를 내놓은 건 아니지만, 이미 여러 나라에서 논문을 통해 코로나19 유행 당시 원형탈모 유병률이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유전자가 일부 변형되면서 원형탈모가 발생한 환자들도 있고, 백신 접종 후 면역 체계가 교란돼 원형탈모가 나타난 경우도 있었다. 실제 코로나19 유행 당시 백신을 맞고 원형탈모가 생겨 내원한 환자들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엔 상대적으로 회복이 더뎠다.”

-다른 부위의 털이 빠지기도 하나?
“원형탈모는 머리카락이 아닌 털과 관련된 문제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우가 제일 많을 뿐, 눈썹, 속눈썹, 콧수염, 겨드랑이 털 등 몸에 있는 모든 털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원형’ 탈모가 아니지 않나?
“과거에는 탈모 부위가 조그맣고 동그란 모양이어서 원형탈모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까지도 같은 진단명이 쓰이고 있는데, 현 시점에서 보면 실질적으로 원형탈모라는 단어는 조금 잘못됐다.”

-남성형·여성형 탈모를 원형탈모로 오인하는 경우는 없는지?
“남성형 탈모를 원형탈모로 오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원형탈모 중 미만성 원형탈모일 경우엔 일반적인 원형탈모와 달리 머리카락이 띄엄띄엄 빠져서 남성형 탈모와 감별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여성형 탈모의 경우 앞머리 라인은 유지되면서 정수리 부분만 빠지는 양상을 보여 오자형 탈모라고도 하는데, 이를 원형탈모로 잘못 알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약물 치료는 언제 받아야 할까?
“원형 탈모 중증도를 평가하는 솔트(SALT) 점수를 기준으로 치료 방침을 결정한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50점이 기준이다. 탈모가 전체 두피 면적의 50%를 넘어섰는지 본다는 뜻이다. 50점이 넘어가면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
“그렇다. 솔트 점수 50점을 기준으로 보는 건 오로지 학문적인 입장이지, 실제 환자의 상황은 다르다. 지난해 대한모발학회에서 원형탈모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환자의 약 65%가 솔트 점수가 50점 이하여도 탈모가 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솔트 점수 20점, 즉 탈모 범위가 전체 두피 면적의 20%만 돼도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한모발학회 차원에서 탈모의 심각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제안했고, 국내에서 질병 코드를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원형탈모 치료를 위해 JAK 억제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JAK1·JAK2·JAK3 중 JAK3가 원형탈모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어, JAK3를 억제하면 되겠다고 생각해 만든 약이 리틀레시티닙이다. 원형탈모 치료용으로 처음 나온 약이다. 그런데 실제 약을 써보면 JAK1·JAK2도 원형탈모와 관련이 있다. 또 다른 JAK억제제인 바리시티닙은 JAK1·JAK2를 억제하는 약이다. 이 약은 원형탈모 외에도 아토피피부염, 류마티스관절염 등 여러 질환 치료에 쓰인다.”

-약을 얼마나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나?
“약을 먹기 시작하면 보통 75% 정도가 효과를 보는 걸로 알려졌다. 이 중 30%는 약 복용 후 몇 달 안에 효과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나머지 25%는 조금씩 좋아지고, 8~10%는 전혀 효과가 없다가 1년쯤 지나서 효과를 본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비싼 약을 무조건 1년은 써야 효과를 판단할 수 있는 건데, 심지어 1년이 지나서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약을 바꾼다고 해도 또 다시 1년을 써봐야 효과 여부를 알 수 있다.”

-어떤 약이 더 적합할지 미리 알 수 없나?
“약을 써보기 전까지는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이 더 좋을지 알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이 있어 최근 학회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환자에게 적합한 약을 확인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데이터가 많이 쌓이면 약 복용 전에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이 더 적합할지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약을 바꾸지 않고 용량을 늘리는 방법도 있지 않나?
“우리나라에서는 평균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허가된 용량만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리시티닙의 경우 4mg만 쓸 수 있는데, 체중 등의 이유로 환자에게 증량이 필요하다고 판단돼도 용량을 늘릴 수 없다. 반면, 외국의 경우엔 환자에 따라 6mg, 8mg을 처방하기도 한다.”

-약 복용을 중단하면 재발하나?
“평균적으로 약을 끊고 나서 8주 정도 있다가 재발하는 걸로 알려졌다. 탈모가 걱정되면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데, 문제는 보험 적용이 안 돼 약가가 한 달에 수십만원씩 든다는 점이다. 1년이면 수백만원이다.”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보험 적용이 안 되다보니 약가가 비싸다. 똑같은 약을 쓰는데 원형탈모 환자는 아토피피부염이나 건선 환자보다 약재비를 10배 더 내야 한다. 똑같이 보험료를 내는데 누구는 보험이 되고 누구는 안 되니까 원형탈모 환자 입장에선 말이 안 되는 거다. 환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국내 원형탈모 환자 중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30~40% 정도고, 이를 환산하면 7만~8만명이다. 이들만이라도 보험을 적용해줄 필요가 있다. 당장 죽고 사는 병은 아니지만, 원형탈모 때문에 사회활동을 못하면 사회적으로 얼마나 손실이 크겠나.”

-급여 적용 전망은?
“제약사에서 급여를 신청하면 보험 당국에서 ‘이 정도면 급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기준이 필요하다. 지금 그 기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 초쯤 기준이 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모발학회는 탈모가 전체 두피의 20%만 넘어도 ▲삶의 질을 떨어지는 경우 ▲눈썹·속눈썹에 문제가 있는 경우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경우 ▲더 진행될 기미가 보이는 경우 등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공식 의견을 전달한 상태다.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외국과 똑같이 50%가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급여화를 위해선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원형탈모가 심각한 질환이고 약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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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두 약 외에도 연구 결과를 주목할 만한 약이 있을까?
“건선 치료에 쓰는 우파다시티닙의 적응증을 원형탈모까지 확대하기 위해 임상 시험을 진행 중이다.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다른 약제보다 효과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기대가 큰 상황이다. 이르면 내년 중 임상 결과가 나와서 처방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외에도 여러 약이 개발될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 개발·상용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상대적으로 환자 수가 적은 데다, 이미 기존 약제들이 나와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두 약제보다 효과가 훨씬 좋거나 가격이 매우 저렴하지 않은 이상 경쟁력이 떨어진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큰 돈을 투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치료 없이 자연적으로 회복될 수도 있나?
“그런 경우도 있다. 논문마다 비율이 다르긴 한데, 적게는 약 10%, 많게는 20~30%까지 자연적으로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다고 보고된다. 이런 환자들은 굳이 병원을 안 간다. 그래서 정확히 통계를 내기 어렵다.”

-원형탈모는 모발 이식 대상이 아닌가?
“원형탈모는 몸의 면역계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모발 이식 수술을 통해 머리카락의 위치를 옮겨놓는다고 해도, 모낭을 계속 공격해 탈모가 발생한다. 원형탈모 환자의 경우 이식에 필요한 뒷머리까지 빠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발 이식은 시행하지 않는다.”


-환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하다고?
“원형탈모 환자는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자살을 시도할 위험이 4배 이상 높다. 특히 어린 환자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크다.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해하는 환아들이 많고, 학교도 안 가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보호자들도 많이 힘들어한다. ‘차라리 내가 앓는 게 낫지’라고 생각할 정도다. 현재 원형탈모 치료에 쓰는 JAK 억제제 두 가지 중 하나만 12~18세 환자를 대상으로 겨우 허가가 됐는데, 앞으론 사용 가능한 연령이 점점 더 낮아져야 한다고 본다.”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일 중요한 건 견디는 거다. 지금도 약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너무 위축되거나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허창훈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대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에서 원형탈모, 피부암, 피부양성 종양 등을 진료하고 있다. 대한피부외과학회 회장, 대한모발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 활발한 대내외 활동을 통해 원형탈모 질환 인식을 제고하고, 환자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