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史] 우루사

<편집자 주>
우리는 일반의약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유명한 약이라면 효능·적응증 정도는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겁니다. 설사 모르더라도 약에 동봉된 사용설명서를 읽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효능·적응증 이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를테면 약 이름에 담긴 뜻이나, 약의 개발 비화, 약을 만든 인물 또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말입니다. [우리 약史]가 이처럼 설명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려드립니다. 약의 역사(史)뿐 아니라, 약을 개발한 회사(社)나 약과 관련된 다소 사(私)적인 이야기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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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환경부와 전남 구례군이 조성한 사육 곰 보호시설 ‘구례 곰 마루쉼터’가 지난 9월 30일부터 운영에 돌입했다. /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내년부터 동물원이나 보호시설을 제외한 곳에서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된다. 우리나라에서 곰 사육이 허용된 지 45년 만이다. 이른바 ‘사육곰 종식법(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시행에 따른 것으로, 곰 사육·증식·도축은 물론, 불법적으로 채취한 웅담의 운반·유통·섭취 또한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사실, 법 시행 이전부터 굳이 곰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웅담을 채취할 필요가 없었다. 웅담의 유효성분인 ‘우루소데옥시콜산(UDCA)’은 화학합성을 통해 만든 약으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UDCA 성분 간장약이 처음 나온 게 60여년 전이니, 그동안 애꿎게 곰들만 착취를 당해온 셈이다.

◇산 채로 곰 쓸개서 담즙 채취… 수천만원에 팔리기도
과거 불법적으로 자행되던 곰 담즙 채취는 알면 알수록 그 과정이 잔혹하게 느껴진다. 마취총을 쏴 곰을 쓰러뜨린 후 쓸개 위치를 찾아 몸에 링거를 연결하고 담즙을 빼내는데, 일련의 작업을 모두 곰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곰이 죽으면 더 이상 담즙 채취가 불가능해서다. 이런 사육곰들은 평생 담즙 채취용으로만 쓰이다 생을 마감했다.

왜 이런 방법까지 써가며 곰 쓸개를 구해야 했을까. 우선 웅담의 효능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예부터 웅담은 귀한 약재로 여겨졌다. 동의보감에도 웅담이 기생충을 죽이고, 눈병·황달 치유와 소아 영양장애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기록돼 있다.


웅담의 유효성분인 UDCA의 효능은 지금도 익히 알려져 있다. UDCA는 수용성 담즙산의 일종으로, 간 기능 활성화를 돕고 간세포를 보호한다. 담즙산은 수용성과 지용성으로 구분되는데, 지용성 담즙산은 간에 축적될 경우 간세포를 손상 시킬 수 있는 반면, 수용성 담즙산은 독성 담즙산 비율을 낮춰 간세포를 보호한다. 이외에도 UDCA는 담즙 분비 촉진을 통해 독소·노폐물을 배출하며 ▲활성산소 제거 ▲담즙 내 콜레스테롤 농도 조절 ▲면역·염증반응 억제 기능을 통한 담석 예방 ▲면역 조절·항염 등의 역할을 한다.

문제는 웅담을 구하기가 워낙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가격이 절로 뛰었다. 1983년 한반도의 마지막 야생 반달가슴곰이 밀렵꾼에게 포획됐는데, 이때 입찰을 통해 판매된 웅담의 가격이 무려 4600만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업적 목적으로 곰 쓸개를 채취하려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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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 '우루사 연질캡슐' / 대웅제약 제공
◇‘우루사’로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UDCA 섭취 가능한데…
가격이 비싸고 윤리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곰에서 웅담을 채취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웅담을 대체할 수 있는 약은 이미 오래 전에 나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루사’가 대표적이다.

대웅제약의 전신인 대한비타민사는 1961년 화학합성을 통해 생산한 UDCA 원료를 해외에서 들여와 우루사를 출시했다. 현재는 전문의약품뿐 아니라 일반의약품으로도 판매돼,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웅담과 비교하면 가격 또한 훨씬 저렴하다.


대웅제약은 1981년 UDCA 자체 합성에 성공해 지금까지 원료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다. 지주사 대웅의 자회사인 대웅바이오를 통해 생산하는 UDCA가 연간 250톤에 달한다. 웅담으로 단순 환산하면 1500만개 분량이다. 현재 전세계 UDCA 생산의 25%를 차지한다. 이 정도면 우루사가 웅담 채취를 줄이는 데 직·간접적으로 일조했다고 할 만하다.

남은 건 인식 변화다. 건강이 목적이라면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웅담을 구할 필요가 없다. 대체제(약)를 먹으면 된다. 오히려 건강을 생각한다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채취한 웅담을 먹는 것보다 안전하고 전문적인 시설에서 생산한 약을 먹는 편이 낫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웅담 없이도 양질의 UDCA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며 “우루사 등을 통해 UDCA가 많이 대중화된 상황인 만큼,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길러 웅담을 채취할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