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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바이벌'은 K-예능을 대표하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사진=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지난달 공개된 쿠팡플레이의 국내 최초 메이크업 서바이벌 예능 '저스트 메이크업'은 방영 직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5개국 이상에서 인기 콘텐츠 10위권에 진입했다. 넷플릭스에서는 아시아 8개국이 경쟁하는 '피지컬: 아시아'가 공개 직후 글로벌 비영어 TV쇼 부문 3위에 오르며 인기몰이 중이다. 이 외에도 음악·요리·운동·연애까지 최근 인기를 끄는 모든 프로그램에는 ‘경쟁’ 구도가 빠지지 않는다. '서바이벌'이 K-예능을 대표하는 하나의 장르가 됐을 정도.

시청자의 몰입력도 대단하다. 그저 '남의 경쟁'을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출연자의 승리와 탈락에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경쟁 콘텐츠에 매료될까.

◇경쟁을 '이야기'로 만드는 K-서바이벌 예능
최근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단순한 승부나 경쟁을 넘어서 성장 서사를 중심에 둔 포맷으로 진화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미숙한 상태에서 시작해 도전, 실패, 갈등을 거쳐 한 단계씩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인의 데뷔 과정부터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까지, 각자의 이야기가 경쟁과 결합해 하나의 '리얼 드라마'를 구성한다.

실제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1'에 흑수저 출신 셰프로 출연한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 셰프는 매 라운드마다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극복하며 백수저 출신 셰프들을 제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보류 후 합격', '탈락 후 패자부활전 복귀' 등 여러 고비 속에서도 심사평을 반영하며 한 단계씩 성장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그는 우승 이후에도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프랜차이즈와의 협업 메뉴 출시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현대 서바이벌의 핵심은 성장 서사"라며 "시청자는 단순히 누가 이기느냐보다 누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에 더 깊이 몰입한다"고 말했다.


◇성장·경쟁·동일시가 얽힌 흡입력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재미는 단순히 '경쟁 구도' 덕분만은 아니다. 경쟁 상황은 뇌의 보상 체계를 직접 자극한다.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은 "경쟁 상황에 노출되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뇌가 흥분 상태를 경험한다"며 "이 보상 작용이 경쟁 서사를 반복적으로 찾게 만드는 심리적 동력"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시청자는 참가자의 성장을 지켜보며 대리 성취감을 느낀다. 곽금주 교수는 "현실에서 직접 성취를 경험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타인의 성취에 자신을 투사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응원을 넘어, 출연자와 '준사회적 관계'를 맺는 수준의 감정적 유대감으로 확장된다. 정동청 원장은 "감정이입이 강할수록 시청자는 그 출연자를 '알고 지내는 사람'처럼 받아들이고, 그들의 승부를 '내 사람의 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투표나 SNS 활동까지 결합되면서, 프로그램은 단순한 관찰 콘텐츠를 넘어 '참여형 감정 경험'으로 바뀐다. 이런 감정적 몰입은 프로그램의 인기를 더욱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된다.

◇"본능을 자극하는 구조… 서바이벌은 계속된다"
전문가들은 서바이벌 열풍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경쟁, 성장, 동일시라는 핵심 요소들이 인간의 사회적 본능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정동청 원장은 "인간은 본래 타인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생존 단서를 얻으려는 본능이 있다"며 "서바이벌 콘텐츠는 형태만 변할 뿐 계속해서 사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바이벌은 인간이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 온 전통적인 방식과 닮아 있다.

곽금주 교수 역시 "현실의 불확실성과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타인의 성취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며 "앞으로는 더 정교한 서사와 새로운 경쟁 방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