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보다 뇌 노화 속도가 느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뇌 건강을 지키고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뇌질환 발병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일랜드 글로벌 뇌 건강 연구소(GBHI)를 포함한 국제 연구진은 유럽 27개국 8만6149명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가속 노화’ 가능성이 한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보다 절반 수준으로 낮았다고 1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노화(Nature Aging)에 발표했다. 가속 노화란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동일 연령대 평균보다 빠르게 인지 기능과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 상태를 말한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건강 정보와 생활 습관, 교육 수준, 신체 활동, 사회적 활동, 정치·사회 환경 등 다양한 변수를 통제한 뒤에도, 다국어 사용 자체가 뇌 노화를 늦추는 독립적 요인임을 확인했다. 특히 사용하는 언어 수가 많을수록 보호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나, 세 가지 언어 이상을 사용하는 사람에게서도 뚜렷한 뇌 보호 효과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51~90세 참가자 8만6149명의 건강·생활 습관 정보를 기반으로 예상보다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지, 또는 느린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사람은 노화가 가속될 가능성이 약 두 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가속 노화를 겪을 확률이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번 분석에서는 언어 사용의 ‘용량 효과’도 확인됐다. 사용하는 언어의 수가 늘어날수록 노화가 더 늦춰지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두 개 언어 사용자보다 세 개 언어 사용자에게, 세 개보다 네 개 언어 사용자에게 더 강한 보호 효과가 관찰됐다.
이러한 결과는 나이, 교육 수준, 신체 활동, 사회적 활동, 정치·사회적 환경 등 다양한 변수를 통제한 뒤에도 유지돼 다국어 사용 자체의 영향력이 분명하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연구진은 “다국어 사용은 단순히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뇌 운동’ 효과를 제공한다”며 “성인이나 노년층도 외국어 학습을 통해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의 건강한 노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기억력, 주의력, 문제 해결 능력이 함께 강화되며 뇌의 ‘인지적 여유’와 ‘대체 경로’ 활성화가 가능해진다는 분석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노년층을 포함한 평생 학습 정책과 공공 보건 전략에도 시사점을 준다. 전문가들은 “성인 대상 언어 교육 프로그램 확대, 평생 학습 차원의 외국어 지원 정책이 뇌 건강을 유지하고 퇴행성 뇌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