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속에는 수많은 작은 기관들이 정교하게 움직이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골지체(Golgi apparatus)’는 단백질을 분류하고 포장해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세포의 우체국’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가톨릭대의대 약리학교실 김지윤 교수팀은 바로 이 골지체의 구조적 변화가 위암의 악성화를 촉진하는 결정적 요인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김지윤 교수팀은 위암 세포의 악성도가 골지체의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정상 세포에서는 골지체가 비교적 넓게 흩어져 있지만, 위암 세포에서는 오히려 골지체가 ‘응축’된 형태로 뭉쳐있는 현상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이 응축된 골지체가 단순한 구조 변화가 아니라, 암의 성장과 전이를 촉진하는 중요한 기전임을 확인했다. 골지체가 응축되면 세포 내의 도로망 역할을 하는 ‘미세소관’이 더욱 활발히 형성되고, 이 도로를 통해 암을 촉진하는 단백질 ‘YAP1(Yes-associated protein 1)’이 빠르게 세포핵으로 이동한다.
연구 결과, 암세포는 분열과 이동 능력을 높이며 악성화가 촉진된다. 연구팀은 이러한 과정을 ‘골지체 응축 → 미세소관 형성 촉진 → YAP1 핵 이동 증가 → 위암 악성화’라는 새로운 경로로 정리했다. 실제 위암 환자의 조직을 분석한 결과, 골지체가 응축된 형태를 보이는 환자일수록 YAP1 단백질의 활성도가 높고 암의 공격성도 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예후가 좋지 않은 위암의 한 종류인 ‘반지세포암’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골지체의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 위암의 악성도를 예측하고 치료 반응을 가늠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을 열었다.
기존의 항암 치료는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세포 구조의 물리적 형태’ 자체가 암의 생물학적 성질을 바꾼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암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특히, 약물로 골지체의 구조를 조절했을 때 실제 동물에서 종양의 성장이 억제되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단순한 기초 연구에 그치지 않고 임상 적용 가능성을 갖춘 실질적 치료 전략임을 입증했다.
김지윤 교수는 “그동안 암생물학에서 간과되었던 골지체의 새로운 기능을 최초로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연구다”며 “향후 환자 맞춤형 진단과 치료 반응 예측의 중요한 근거를 마련한 선도적인 연구 결과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김 교수 연구팀은 골지체 구조를 보다 안전하고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항암 후보물질 발굴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위암 외에도 간암, 폐암, 대장암 등 다양한 암종에서 ‘골지체-YAP1 축’이 유사한 역할을 하는지를 검증함으로써, 이 치료 전략의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 연구는 미국암학회(AACR)의 대표 학술지인 ‘Cancer Research’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