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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불필요한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TRT)이 불임을 초래하거나 혈전, 심혈관 질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최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일종의 ‘보충제’처럼 포장해 홍보하며, 검사와 치료를 유도하는 허위 정보가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TRT)이 불임을 초래하거나 혈전, 심혈관 질환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혈액 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확인하는 검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서는 쉽게 ‘테스토스테론 수치 확인이 남성 활력의 첫걸음’이라는 문구와 함께 혈액검사를 권유하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가디언은 혈액검사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러한 유행이 ‘검사→치료’로 이어지며 불필요한 처방과 남용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사설 클리닉이 인플루언서와 손잡고 혈액검사 상품을 홍보해, 결과적으로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을 유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TRT는 주사나 패치 등을 통해 호르몬을 직접 보충하는 치료법으로, 피로감·성욕 저하·근육 감소 등 이른바 ‘남성 갱년기 증상’이 명확한 호르몬 결핍으로 확인됐을 때만 의사가 처방할 수 있다. 반복적인 혈액검사와 임상 평가를 거쳐 결핍이 확정돼야 하며, 임의 복용은 매우 위험하다.

SNS에서 TRT가 마치 ‘남성 활력 프로그램’이나 ‘자기관리 수단’인 것처럼 가볍게 홍보하면서,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TRT 상담을 받으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의 내분비학자 찬나 자야세나 교수는 “병원에 SNS 영상을 보고 찾아오는 환자가 매주 있을 정도”라며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보다 사설 혈액검사 결과만 믿고 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 내분비 전문의 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거의 모든 의사들이 매주 이런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영국은 법적으로 처방약 광고가 금지돼 있다. 일부 사설 클리닉은 약 자체를 홍보하기 보다, 혈액검사를 홍보해 TRT 프로그램까지 이어지도록 상품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가디언은 이들 업체가 혈액검사를 ‘입구 상품’으로 내세워 TRT 가입으로 유도하고, 인플루언서들은 할인 코드나 무료 검사 이벤트를 미끼로 팔로워를 유인한다고 보도했다. 대가로 금전적 보상이나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진짜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야세나 교수는 “테스토스테론 결핍에는 명확한 진단 기준이 있다”며 “성기능 장애 등 특정 증상과 연관이 있을 수는 있지만, 단순히 근육량이 적거나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해서 호르몬이 낮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2nmol/L 이상이면 치료 효과가 없다는 근거가 명확함에도, 일부 클리닉에서는 정상 범위(18nmol/L 이하) 남성에게까지 호르몬을 투여하고 있다”며 “이는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했다.

외부에서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면 뇌의 호르몬 조절 신호가 차단돼 고환 기능이 억제되고, 결국 생식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클리닉은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른 약물을 병용하지만, 이 또한 사실상 스테로이드 남용과 다르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밖에도 TRT의 부작용으로는 고혈압, 혈전, 여드름·피부 유분 증가, 발목 부종, 유방 비대증 등이 보고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헬스 커뮤니티나 SNS에는 테스토스테론 검사 후기를 비롯해 근육 증가·성 기능 개선 효과를 강조하는 게시물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대구 코넬비뇨기과 이영진 원장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지 않아도 이를 ‘슈퍼맨 호르몬’처럼 인식해 수치를 높이려는 사람들이 많다”며 “의료진은 그런 환자에게 TRT를 권하지 않지만, 비정상적인 경로로 약을 구해 복용한 뒤 부작용으로 내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환 이상이나 불임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유행을 넘어 젊은 남성들의 건강 인식을 왜곡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자야세나 교수는 “현재의 TRT 열풍은 의학적 근거보다 외모 중심의 자기계발 문화와 맞물려 있다”며 “테스토스테론 치료는 결핍이 명확히 진단된 환자를 위한 의학적 처방일 뿐, SNS에서 떠도는 ‘남성 강화제’나 ‘에너지 부스터’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영진 원장 역시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호르몬을 남용하면 부작용이 심각하고, 치료도 쉽지 않다”며 “애초에 불필요한 복용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