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이미지
SBS '힐링캠프' 방송 화면 캡처
성공한 운동선수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는 서장훈씨는 그동안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말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흔히 재능이 있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데, 본인은 이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최고의 선수가 되듯, 자신의 영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즐기기만 하는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 이 말을 어떤 회사의 CEO나 교수가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현실의 어려움을 모르는 꼰대의 말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서장훈씨의 말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스스로의 삶이 그 말을 증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인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징크스가 있다고 고백했던 그는 강박증으로 보일 만큼 그런 징크스에 집착했다. 그것이 멘탈의 나약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승리에 맞췄던 그의 처절함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결과, 40세의 나이까지 프로선수로써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말이 쉽지, 40세에 운동선수로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상상이상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그래서 정말 ‘즐기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는지’에 관한 것이다. 정말 그럴까?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즐기는 것은 학습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학습에 관한 인간 행동과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의 영역을 학습 심리학이라고 하는데, 학습 심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보상(reward)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특정 행동에 따른 보상이 있을 때 그 행동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보상이라고 하면 상금, 칭찬 등 타인으로부터 주어지는 외적 보상을 주로 생각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보상은 내적 보상이다. 내적 보상은 나의 마음에서부터 만들어지는 보상의 형태로, 스스로 느끼는 심리적 가치가 보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심리적 가치가 그 행동에 대한 즐거움이다.

내적 보상은 외적 보상에 비해 특정 행동을 지속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공부를 한 시간 할 때마다 용돈을 주는 외적 보상과 그냥 스스로 즐거움에 취해서, 즉 내적 보상으로 인해 공부하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외적 보상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그 보상에 적응이 된다. 즉 처음에는 한 시간 공부할 때마다 천원을 받아서 매우 기뻤지만, 매번 천원을 받게 되면 천원이라는 보상은 심리적으로는 적은 양의 보상이 되면서 외적 보상의 효과가 약해진다. 더 나아가 외적 보상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공부에 대한 동기가 급격하게 사라지는데, 이를 과잉 정당화 효과라 한다. 이래서 내적 보상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뇌과학적으로 고려해 봐도 즐거움이 학습에 유리하다. 즐거움이라고 하면 흔히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떠 올릴 것이다. 그런데 도파민의 역할은 단순히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파민은 행동의 결과를 평가하고 무엇을 반복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신경 신호로 뇌가 보상을 학습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학습에 중요한 핵심 물질 중 하나이다. 따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학습을 하면, 실제로도 뇌에서 도파민 관련 회로의 활성도가 더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학습의 효과가 좋아진다.

반대로 억지로 학습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기억력이나 통제력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낮은 수준의 학습 효과를 보이게 된다. 이처럼 다수의 심리학 및 뇌과학 연구에서도 즐기면서 흥미를 가지고 학습했을 때 학습 효과가 더 좋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즐거운 마음으로 학습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즐겁게 학습하는 것이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가능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기타 연주에 관심이 생겼다고 치자. 처음에는 학습의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생각만 하던 기타 소리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사실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이 즐거움에 손가락에 생기는 고통 따위는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실력이 정체되고, 타인에게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여전히 즐거울까? 멋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데, 매일 기초 연습만 하라고 한다면 여전히 즐거움이 있을까?


스스로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별한 강화 없이 내적 동기나 즐거움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어떤 일의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작더라도 꾸준히 가시적인 성공 경험을 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느 정도 외적이든 내적이든 성공 경험을 해야 즐거움도 생기는 법이다.

또한 초보자가 전문가로 발전하면서 학습 시스템에도 조금은 변화가 발생한다. 일단 도파민 보상 회로는 반복적인 보상에 적응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상금으로 항상 천원만 받는다면, 그 보상에 대한 기쁨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처럼, 내면에서 발생하는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한 시간을 제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해서, 또는 기타 연습을 한 시간동안 열심히 해서 얻는 즐거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과 같지 않게 된다.

또한 스포츠와 같은 분야에서 어느 수준 이상의 전문가가 되려면 어려운 동작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정교하게 몸을 통제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 제한된 용량을 가진 인간의 뇌는 효율적인 운영을 해야 한다. 따라서 초기 학습단계에서 보이는 도파민 시스템의 개입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동작의 자동화를 위한 감각운동 루프의 비중이 커진다. 자동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 매우 통제적인 동작이나 처리를 할 수가 있게 된다.

결국 전문가의 수준에서는 보상보다는 통제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되며, 이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즐김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이다. 즉, 현재를 즐기는 능력이 아니라, 즐길 수 없을 때도 버티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셈이다.

아마도 이 점이 정상을 밟아본 사람들이 즐기는 것보다는 버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나도 꼰대여서인지는 모르지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학생들과 면담에서 할 때가 많다. 어떤 일을 목표로 해서 정진하면, 어느 순간은 내가 즐거워할 수 없는 것들을 만날 때가 있고, 그것을 버텨내야 내가 원하는 것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심리학 공부를 하는 것이 즐거웠지만, 이를 위해 문과생으로 코딩과 통계를 공부하고, 영어 단어 외우며, 화창한 날씨에 지하 실험실에서 머리가 아파오는 논문을 읽는 것은 결.코 즐겁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견뎌낸 결과,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서 즐거운 교수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아무리 전문가가 되어도, 그리고 그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견디는 삶을 살아도, 그 자체를 즐기는 힘이 있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이다. 즐기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서장훈씨도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 즐거움에 서장훈 선수는 다른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최고의 농구 선수라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자부심,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의 가치를 깍으려 하지 않았던 자존감, 최고의 선수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려는 자존심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은퇴식에서 흘린 눈물, 은퇴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농구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진지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서 아직까지 농구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닐 듯 싶다.